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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시세대 활력 보고서] 은퇴 후 떠난 여행길…30만명 공감 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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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자 주 = 20대부터 민주화를 이끌었던 '86세대'가 노인 인구에 진입하기 시작했습니다. '난 알아요'를 외치며 서태지와 아이들의 춤을 따라 추던 엑스(X)세대도 오십 줄에 접어들었습니다. 넘쳐나는 활력에 하고 싶은 일도 많고 해야 할 일도 많지만 어쩌다 보니 시니어가 된 세대, 연합뉴스는 86세대 중 처음으로 올해 노인연령(65세 이상)에 편입되는 1960년생부터 올해 50세가 되는 1975년생까지를 액티브한 시니어 세대, 즉 '액시세대'로 보고 이들의 삶을 들여다봤습니다. 액시세대가 어떤 삶을 살고 어떤 도전에 직면해 있으며 어떻게 이를 극복하는지 살펴보고, 지방자치단체들이 액시세대의 고용, 소비, 여가 등을 어떻게 지원하고 있는지 매주 일요일 소개합니다.]

여기 40년을 쉼 없이 일한 뒤 은퇴를 앞둔 공무원이 있다.
인생 3분의 2를 공직에 몸담았다가 새로운 삶을 살아야 할 때 '세계를 향해 떠나고 싶다'는 간절한 바람이 그의 마음을 떨리게 했다.
'가슴 떨릴 때 떠나라, 다리 떨리면 못 간다'는 격언은 요동치는 마음에 용기를 줘 그를 공항 출국장까지 인도했다.
은퇴 후 첫 여행을 떠난 지 4년이 흐른 지금, 최수길(65) 전 강원교육청 행정국장은 국내에서 손꼽히는 여행 유튜버로서 30만 구독자와 함께 가슴 떨리는 여정을 이어가고 있다.

◇ 코로나19가 오히려 기회로…"유튜버 될 줄 몰랐죠"
2021년 6월 30일. 40년간 강원교육에 헌신했던 최씨는 3급 부이사관인 행정국장을 마지막으로 공로 연수까지 마치고 꿈에 그리던 아프리카, 남미 여행을 길게 떠나고 싶었다.
하지만 코로나19로 발이 묶여버리자 그는 몸이 아플 지경에 이르렀다.
답답함을 치료해줄 약은 결국 여행밖에 없었다.
검색창을 열고 여행이 가능한 국가를 검색한 결과 튀르키예는 백신만 맞으면 제약 없이 마음껏 다닐 수 있다는 정보를 얻었다.
지체할 수 없었다. 68만5천원에 왕복 비행기표를 예약한 최씨는 그해 10월 13일 터키로 떠났다.
나이 예순에 혼자 떠난 여행, 현지어는 전혀 모르고 영어도 서툴렀던 그는 36일간 유명 관광지부터 농촌 마을까지 곳곳을 누비며 수많은 사람을 만나고 도움받고 도왔다.
최씨는 튀르키예의 아름다움을 스마트폰에 담으며 혼자 보기 아까워 가족과 친구들에게 공유했다.
유튜버로의 삶을 이끌어준 건 딸이었다.
최씨는 "딸이 '영상들을 유튜브에 올려보라'고 권해 하나씩 업로드한 콘텐츠들이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며 "영상 하나에 구독자가 수백명씩 늘었는데 당시 팬데믹으로 묶은 해외여행에 대한 갈증을 내 영상들로 대리만족한 것 같다"고 평했다.
터키를 시작으로 스페인, 몽골, 카자흐스탄, 아제르바이잔, 조지아, 아르메니아, 라오스, 슬로베니아, 몬테네그로, 보스니아, 스리랑카, 모로코, 튀니지 등 60여개국을 누빈 최씨는 현재 26개 나라의 영상 450여개를 올리며 구독자 30만7천여명의 국내 유명 여행 유튜버로서 새로운 인생을 만끽하고 있다.

◇ 젊어서 걸었던 가시밭길, 여행의 목마름 키우다
"사실 저를 비롯한 4남매는 어릴 적 형편이 어려워 초등학교까지밖에 못 나왔었어요. 젊어서는 삼청교육대에 끌려갈 위기에 처하기도 했죠."
지금은 꿈꾸던 여행길을 걷고 있는 최씨지만, 젊은 시절까지는 가시밭길을 헤치며 살아왔다.
북에서 넘어온 아버지는 나이가 많아 가정을 책임지기 어려웠고, 어머니는 6·25전쟁 때 다리를 다쳐 역시 일을 하기 힘들었다.
자연스레 최씨는 초등학교를 마친 뒤 신문팔이, '아이스 깨끼' 장사, 공사장 인부 등을 하며 일정 부분 생계를 책임져야 했다.
그는 야학을 통해 중졸 검정고시에 붙은 뒤 춘천의 한 명문고에 합격했다.
겨우 학비는 마련했어도 끼니를 때우기 힘들었기에 기숙사 밥을 몰래 훔쳐 먹다 사감에게 걸렸고, 흠씬 두들겨 맞은 뒤 퇴학당했다.
고졸 검정고시에 합격한 최씨는 1980년 지방공무원까지 붙었지만, 그 생활 역시 오래가지 않았다.
선거 사무 업무를 보던 그는 '부정투표를 도울 수 없다'고 항의하다 완전히 찍히게 된 것이다.
최씨는 "삼청교육대와 사표를 두고 선택하라는 얘기에 삼청교육대를 택하려 했다"며 "어머니가 극구 말려서 결국 사표를 낼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1981년 8월, 최씨는 교육행정직 공무원에 다시 합격해 40년간 강원교육의 길을 닦았다.
그는 "젊은 시절 기회를 좇아 해외 밀항까지 생각했었지만, 그 돈조차 마련하지 못했다"며 "해외를 동경하게 된 것은 아마도 그때부터였을 것"이라고 회상했다.

◇ "관광지는 질려도 사람은 늘 새로워…여행의 주제는 휴머니즘"
최씨의 유튜브 콘텐츠를 살펴보면 그 중심에는 늘 사람이 있다.
관광지의 상인은 물론, 골목에서 만난 여행객, 잡다한 소품을 파는 어린아이까지, 그들과의 만남과 대화, 인연은 오롯이 따스함으로 전해진다.
그는 "유럽의 큰 성당은 두세번 보면 질리지만, 사람은 늘 새롭고 또 놀랍다"며 "나의 여행을 관통하는 주제는 휴머니즘'이라고 설명했다.
60개국을 넘나들던 여행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 역시 장소가 아니라 한 아이였다.
최씨는 미얀마를 여행하면서 우연히 꼬마 여자아이 '에디디'를 만났다.
길거리에서 꽃을 팔던 에디디는 맨발에 영양상태도 엉망이었다. 머무는 곳은 집이라고 부르기도 어려웠다.
최씨는 어릴 적 자신을 보는 것 같아 마음이 아팠다. 꼬마에게 먹을 것과 옷을 대접했다.
해당 영상은 미얀마어로 더빙돼 현지에서도 반향을 일으켰고, 많은 이가 후원해 지금 에디디는 건강하게 성장해 학교도 다니고 있다.
최씨는 "그때는 에디디가 아니라 어린 시절 나를 도운 것"이라며 "교복을 입은 사진을 보니 꼭 다시 만나고 싶다"고 말했다.

◇ "은퇴 후는 여행 적기…자신감과 스마트폰 사용 능력 필수"
여행 유튜브 채널은 젊은 층이 주로 구독하지만, '수길따라' 채널은 오히려 시니어 구독자들에게 통하고 있다.
현재 채널 구독자 80% 이상은 45∼65세 층이다.
최씨는 "구독자 댓글을 보면 '이 채널을 보고 용기를 얻는다'는 시니어들의 응원이 많다"며 "이들을 위해서라도 다리 힘이 허락할 때까지 여행을 멈추지 않기로 마음먹는다"고 말했다.
그는 은퇴 후가 여행 떠나기 최적의 때라고 권하며 시니어들에게 은퇴 전까지 하루 1만보 이상 걸을 수 있는 체력과 스마트폰 사용 능력을 키울 것을 당부했다.
아울러 무엇보다 자신감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머뭇거리지 않고 떠나고, 두려움 없이 현지 사람들을 만난다면 반드시 여행에서 큰 의미를 찾을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다만 유튜버를 꿈꾸는 예비 은퇴자들에게는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아무나 할 수는 없다'며 고가의 장비를 미리 준비하기보다는 스마트폰과 무료 앱으로 먼저 자신을 시험해볼 것을 당부했다.
최씨는 "돈을 따라가지 말고 내가 좋아하고 잘 아는 것을 콘텐츠로 삼아야 한다"며 "차곡차곡 쌓은 영상들은 훗날 좋은 추억거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yangdoo@yna.co.kr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