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팩트시트 "韓 우라늄 농축·사용후 핵연료 재처리 위한 절차 지지"
후속 협의서 구체 방안 정해질 듯…美 일각 '핵 비확산' 원칙론이 변수
(서울=연합뉴스) 김지연 기자 = 한국이 핵연료 주기를 완성하는 우라늄 농축과 사용후 연료봉 재처리 권한을 확보하는 숙원을 이루기 위한 첫발을 뗐다.
원전강국 위상을 올리는 농축·재처리 현실화를 위한 토대를 마련했다는 의미가 있지만, 지난한 후속 협의가 예상되고 포괄적 권한 달성을 위해서는 협정 개정까지 담보해야 하는 만큼 쉽지 않은 과제도 남아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14일 직접 한미 정상 합의사항을 담은 팩트시트를 발표한 자리에서 "우라늄 농축과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 권한 확대에 대해서도 미국 정부의 지지를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며 "매우 의미 있는 진전으로 생각된다"고 밝혔다.
한미 정상 간 논의 내용을 담은 팩트시트에는 "미국은 한미 원자력협력협정에 부합하고, 미국의 법적 요건을 준수하는 범위 내에서 한국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민간 우라늄 농축 및 사용후핵연료 재처리로 귀결될 절차를 지지한다"고 돼 있다.
외교부는 배포한 설명자료에서 "우리의 농축·재처리에 대한 미측의 공개적인 협조·지지를 최초로 확보했다"고 평가했다.
2035년까지 적용되는 현행 원자력협력협정은 미국의 동의 하에 20% 미만의 우라늄 농축을 할 수 있고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는 금지돼있다.
정부는 일본 수준의 농축 및 재처리 권한은 확보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일본은 1988년에 체결한 미일 원자력협정을 통해 미측이 이미 농축·재처리에 동의한 것으로 간주하는 '포괄적 사전동의'를 확보했다. 이를 통해 우라늄의 20% 미만 농축이 허용됐고, 당사자 합의 때는 20% 이상의 고농축도 가능하다.
현행 협정을 개정할지 아니면 기존 협정의 틀 내에서 권한을 확보할지는 후속 협의를 통해 결정될 것으로 예상된다.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브리핑에서 "농축·재처리는 개정이 필요하면 개정을 해야 하고, 새로운 해석이 필요하면 해석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방향이 정해졌고 양측 동의가 있었기 때문에 앞으로 후속 협의는 이를 어떻게 이행할지 쪽으로 이뤄질 것"이라며 "많은 협의가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협정 개정에 무게를 두고 있다. 박윤주 외교부 1차관은 이날 열린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에서 향후 논의 방향에 대한 국민의힘 김건 의원 질의에 "저희는 개정을 염두에 두고 미측과 사안을 협의해 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팩트시트에 원자력 협정 개정은 언급되지 않고 '원자력협력협정에 부합한다'는 문구가 있는 점에 비춰 일단은 현행 협정 내에서 한국에 우라늄 농축 및 사용후핵연료 재처리 권한을 주는 방향으로 논의가 진행될 가능성이 있다.
위 실장은 "농축·재처리 문제를 (해결)하려면 미국과 후속 협의해서 기존에 가진 협정을 조정해야 한다"며 "많은 조정이 필요할지 그 안에서 작은 조정할지는 앞으로 협의에 달려있다"고 설명했다.
협정에는 양자 차관급 상설 협의체인 고위급위원회를 통해 한국의 핵연료 주기 논의를 진행하게 돼 있다. 이 고위급위원회는 그간 활발하게 운영되지 않았는데 이번 일을 계기로 회의를 활성화해 관련 사안을 논의할지 주목된다.
농축과 재처리는 원전에서 우라늄으로 전기를 생산하는 데 필요한 전체 공정, 즉 '핵연료주기'에서 각각 선행주기와 후행주기의 한 부분에 해당한다.
우라늄은 천연 상태로는 발전에 쓸 수 없어 일정한 수준으로 농축해야 하고, 발전에 사용하고 남은 사용 후 핵연료는 재처리를 통해 재활용함으로써 운영 효율을 높일 수 있다. 재처리는 고준위 방사성폐기물의 부피를 줄이는 방법이기도 하다.
한미 양국이 농축·재처리 문제에 대해 큰 틀에서만 합의했을 뿐 실제 이행을 위해서는 복잡한 후속 협의가 뒷받침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위 실장이 팩트시트 도출 과정에서 농축·재처리 문제가 마지막까지 많이 논의됐다고 했는데, 이는 미국이 이 사안을 상당히 민감하게 여기고 있다는 방증으로 해석된다.
이재명 대통령이 "우라늄 농축, 핵 재처리 문제, 핵잠 문제에 대해서 미국 정부 내에서 약간의 조정 과정이 필요하지 않았나 생각이 든다"고 말한 대목에서도 농축·재처리 문제에 대해 미국 내 여러 기류가 있음을 짐작게 한다.
위 실장도 농축·재처리 문제와 관련해 "미국 내에도 다양한 의견이 있다"며 "부처 안에서도 상하의 의견이 다르다"고 말했다.
미 정부 내에 핵 비확산 문제에 대해 원칙론을 고수하는 이들이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이를 극복하고 원만하게 후속 협의를 끌어가는 게 과제가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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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