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스포츠조선 김영록 기자] "아 부끄럽습니다. 쑥스럽네요."
상대의 추격에 1실점을 기록한 뒤 인터뷰에 임했다. 프로야구 역대 3번째 900경기 출전, 불혹을 넘긴 41세 노장 우규민의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했다.
KT가 초반 5실점을 뒤집고 13대11로 승리한 3일 수원 한화전. KT는 시리즈 스윕으로 3연승을 내달리며 이날 롯데 자이언츠에 패한 삼성 라이온즈를 제치고 1위 자리까지 되찾았다.
우규민은 8회초 구원등판, 2사 후 2루타를 허용한 뒤 마무리 박영현에게 마운드를 넘겼다. 하지만 박영현이 1타점 2루타를 허용해 1실점이 기록됐다.
우규민은 "사실 이닝을 마무리하고픈 마음이야 컸지만, 팀 승리가 우선 아닌가. 감독님이 직접 올라오시지 않았나. 날 예우해주셔서 감사했고, 또 표정을 보니 바꾸고 싶으신 기색이었다"며 웃었다.
이어 900경기에 대해서는 "신경이 안쓰였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진짜 900경기는 생각도 안하고 준비했다. 팀 승리가 우선이니까"라고 덧붙였다.
정우람(1005경기)-류택현(901경기)에 이어 3번째 900경기 등판, 우완투수로는 최초다. 감회가 남다를 수밖에 없다.
"최초는 항상 뿌듯하다. 하지만 내게 900경기는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매경기 최선을 다해 던지는게 목표다. 한국시리즈 직행에 도움이 되고 싶다. 결국 여기까지 온 비결은 제구력 아닐까. 경기 외적으로는 아프지 않아야한다. 또 그만큼 오랫동안 풀시즌 1군에 있었다는 거니까, 좋은 트레이닝 파트, 좋은 감독님, 좋은 코치님 만나야한다."
시즌 개막 때는 추격조 역할을 수행했는데, 점점 필승조 역할로 이동했다. 이제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으로 박영현이 없을 때는 마무리를 맡길 가능성도 커졌다. 우규민은 "우리팀은 박영현 하나 빼고는 전원 필승, 전원 패전조다. 어느 상황에 누가 올라갈지 모른다. 다들 긴장하고 있다. 박영현 공백이 느껴지지 않게, 마지막 투수가 마무리라는 마음으로 준비하자고 했다"고 했다.
정우람과 류택현은 전문 불펜투수였다. 반면 우규민은 900경기 중 130경기가 선발 등판이다. 우규민은 "확실히 그래서 더 뜻깊다. 선발 중간 마무리 다 해본 선수라고 생각하면 진짜 뿌듯하고 나 자신이 대견하다"고 강조했다.
900경기 중 기억에 남는 경기를 묻자 "연장전 만루 두번 막은 경기가 있었는데, 사실 데뷔전(2004년 8월 24일 SK 와이번스전)이 아무래도 가장 기억에 남는다. 초구에 3점 홈런을 맞았는데, 상대가 이호준(NC) 감독님이었다. 그때 선배들이 위로해준다고 '야 너는 정말 잘 될거야' 이런 얘길 해줬던 기억도 난다. 그게 전화위복이 되서 지금까지 던지고 있는 것 같다"라며 웃었다. 정작 이호준 감독은 기억하지 못한다고.
우규민의 도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제 정우람을 바라본다. 그는 "나는 정말 복받은 선수다. 우리 이강철 감독님, 제춘모 코치님께서 날 정말 잘 관리해주시니, 두분 계신 동안은 계속 던지지 않을까. 들뜨거나 내 할일 다했다 이런 생각은 전혀 없다"라고 강조했다.
프로 23년차 투수인데, 아직도 목마르고 간절하다. 한국시리즈 출전 경험이 단 한번도 없다.
우규민은 "솔직히 창피하기도 하다. 올해가 적기라고 생각해서 우리 선수들을 잘 다독거리고 또 으?X으?X하고 있다. 플레이오프 아닌 한국시리즈 직행을 위해"라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아 진짜 한국시리즈 한경기는 나가봐야지. 이렇게 끝나면 너무 억울할 것 같다. 바짓가랑이 잡고 버틸 거다."
수원=김영록 기자 lunarfly@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