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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격인터뷰] 차세대 에이스 여준석, 한?? 육상 영재였다! 시애틀대 졸업 후 이번 겨울 '해외도전'의 결론은?

[직격인터뷰] 차세대 에이스 여준석, 한?? 육상 영재였다! 시애틀대 졸업 후 이번 겨울 '해외도전'의 결론은?
스포츠조선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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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구 차세대 에이스' 여준석(24·시애틀대)는 신비롭다.

2m3, 100㎏의 신체조건을 지닌 그는 짐승같은 운동능력과 무궁무진한 잠재력을 동시에 지녔다. 성장이 현재진행형이다.

대표팀 에이스 이현중과는 또 다른 유형의 선수다. 재능과 잠재력만큼은 한국 농구 최고다. 유재학 KBL 경기본부장 겸 경기력향상위원장은 "이현중은 지독한 노력파다. 프로페셔널리즘이 몸에 박혀 있다. 처절한 노력으로 클래스를 끌어올린 선수다. 순수 재능으로 따지면 여준석이 국내 선수 중 최고"라고 평가했다.

어린 나이지만, 이미 자신의 가치를 '입증'했다. 프로 최고의 미덕이다.

용산고 시절 고교 무대를 평정했고, 호주 NBA 글로벌 아카데미를 경험했다. 당시 같이 뛰었던 동료가 호주 에이스이자 NBA 정상급 볼 핸들러로 평가받는 조시 기디(시카고 불스)다. 고려대 진학 이후 대학 무대를 1학년 때부터 평정했다. 2021년 FIBA U-19 농구월드컵에서 득점왕에 올랐다. 평균 리바운드 10.6개로 2위. 평균 효율성(EFF)도 24.7을 찍으면 전체 1위를 차지했다.

2021년 KBL 신인드래프트에 참가하면 무조건 1순위라는 평가도 있었다. 당시 2순위가 국가대표 센터 하윤기, 3순위가 리그 최고 메인 볼 핸들러로 성장한 이정현이었다.

그의 재능은 역대급이었다. 이후, 곧바로 해외도전을 선언했다. G리그 진출을 모색하던 여준석은 NCAA 명문 곤자가대학으로 진로를 틀었다. 2년 간 변변한 출전시간을 받지 못하며 시련을 겪은 뒤, 지난해 시애틀대로 편입했다. 지난 시즌 시애틀대의 에이스를 꿰차면서 34경기에 출전, 평균 12.0득점, 4.0리바운드, 1.6어시스트를 기록했다. 대표팀에서는 8월15일 광복절 한일 평가전에서 단 6점에 그쳤지만, 2차전 17득점, 11리바운드로 반등했다. 또 지난달 28일 열린 20207년 카타르 농구월드컵 아시아 예선 2라운드 레바논과의 원정경기에서 32분39초를 뛰면서 팀내 최다인 19득점, 4리바운드를 기록했다. 한국은 패배(74대93)했지만, 여준석은 강력했다.

[직격인터뷰] 차세대 에이스 여준석, 한?? 육상 영재였다! 시애틀대 졸업 후 이번 겨울 '해외도전'의 결론은?
[직격인터뷰] 차세대 에이스 여준석, 한?? 육상 영재였다! 시애틀대 졸업 후 이번 겨울 '해외도전'의 결론은?

그와의 인터뷰가 필요했다. 지난달 30일 수원 KT 아레나에서 열린 대표팀 훈련 도중 여준석을 만날 수 있었다.

농구 시작 계기가 궁금했다. 여준석은 "어릴 때 여러 스포츠를 했다. 초등학교(서울 가주초) 4학년 때 달리기 시합을 했는데, 가장 빨랐다. 항상 100m가 12초 대는 나왔던 것 같다. 한국체대 체육영재 육상프로그램에 참여하기도 했다. 2년 정도 했다. 육상과 농구를 병행했는데, 아버지와 형(서울 삼성 여준형)이 모두 농구를 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농구를 선택했던 것 같다"고 했다.

그는 폭발적 운동능력으로 수많은 앨리웁 덩크를 찍는 하이라이트 필름 제조기다. 서전트 점프는 2018년 이후 역대 2위인 83.7㎝(용산고 2학년 기준) 맥스 버티컬 점프는 96.5㎝다.

그는 "점프력이 원래 그렇게 좋지 않았는데, 중학교 때부터 웨이트 트레이닝을 체계적으로 하면서 점프력이 상승했다"고 했다.

국내 뿐만 아니라 아시아를 평정했던 여준석은 고려대 1학년 때 해외진출을 선언, 곧바로 해외 도전을 시작했다.

여준석은 "사실 고교 졸업 이후에 가려고 했다. (해외진출 도전) 기회를 알아보기 위해 시간이 필요했고 고려대에 진학했다. (해외로) 나가고 싶다는 생각이 계속 머리 속에 맴돌았다. 결심한 뒤 원래 G리그로 가려 했다. 하지만, 몇 차례 연습을 해본 뒤 아직 G리그에 뛸 수준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곤자가 대학으로 선회했다"며 "곤자가 대학에서도 출전시간을 잘 받지 못했다. 2학년 때까지는 뭐가 문제인 지 찾지 못했던 것 같다. 3학년이 되면서 곤자가 대학에서도 뛸 레벨은 아니라고 판단했고 출전시간이 보장된 시애틀대로 편입했다"고 했다.

당시 어린 나이에 많은 고민이 있을 수 있었다. 그는 "최대한 별 생각없이 운동하려고 했다. 기회가 오면 최선을 다하자는 생각을 했는데, 기회가 끝까지 오지 않았다. 시애틀대 편입은 잘한 선택"이라며 "시애틀대가 수비가 매우 타이트한 팀이다. 곤자가대에서 정식 경기를 풀로 뛴 적이 거의 없어서 경기 체력, 농구 흐름, 그리고 시애틀대의 수비 전술을 따라가는 데 좀 힘들었다. 코칭스태프가 많은 미팅을 통해 디테을하게 움직임을 짚어줬고, 팀에 녹아들 수 있었다"고 했다.

이 과정을 통해 기술적, 멘탈적으로 성장을 했다. 여준석은 "미국 진출 초기에는 나보다 사이즈와 운동능력이 좋은 선수들이 많기 때문에 골밑보다는 외곽에서 뭔가 풀려고 했다. 하지만, 시애틀대에들어간 뒤 3점슛이 잘 되지 않을 때 골밑의 플랜 B가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외곽과 골밑 플레이의 조화를 시애틀대에서 많이 느끼고 있다"고 했다.

지난 레바논전에도 여준석은 운동능력을 활용한 저돌적 골밑 돌파와 공격 리바운드가 돋보였다. 플랜 B가 적용된 경기였다. 그는 "시애틀대에서는 수비는 파워포워드까지 맡지만 사실상 공격에서는 슈터 역할을 한다. 대표팀에서는 센터에 가까운 플레이를 한다"고 했다.

그는 이번 겨울 시애틀대를 졸업한다. 그의 차기 행선지가 궁금했다. 여준석은 "미국에서 도전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NBA에 도전하는 것 하나만 생각한다. 어르신들은 금전적 부분, 현실적 부분을 얘기하신다. 개인적 생각인데, 도전하는 사람은 희생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무모하게 끝나지 않아야 하지만, 다음 누군가를 위해 그 길을 열 필요도 있다고 생각한다. 긍정적으로 계속 도전하려 한다"고 했다.

여준석은 인터뷰 내내 거침없이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소위 말하는 '현실적' 머뭇거림은 없었다. 그의 시선은 '도전의지'로 가득찼고, 앞으로 향해 있었다.

인터뷰 다음날, 여준석은 사우디와의 농구월드컵예선에서 18득점, 4리바운드, 3어시스트로 맹활약했다. 3쿼터 인 유어 페이스 속공덩크를 찍으며 이 경기 최고의 하이라이트 필름을 만들어냈다. 그의 인터뷰와 오버랩되는 장면이었다. 류동혁 기자 sfryu@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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