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조지영 기자] 은은한 광기로 장면을 잡아 먹은 미친 존재감, 배우 음문석(44)이 연기를 향한, 작품을 향한 무한 동력을 털어놨다.
SF 스릴러 영화 '호프'(나홍진 감독, 포지드필름스 제작)에서 마을에 벌어진 엄청난 사달의 원인을 제공한 목수 양배를 연기한 음문석. 그가 2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서 스포츠조선과 만나 '호프'의 출연 과정부터 작품에 쏟은 열정을 밝혔다.
올해 한국 영화 최고 기대작 중 하나로 꼽혔던 '호프'는 나홍진 감독이 2016년 개봉한 '곡성' 이후 10년 만에 꺼낸 신작이자, 황정민을 주축으로 조인성, 정호연에 할리우드 배우 테일러 러셀, 카메론 브리튼, 그리고 알리시아 비칸데르와 마이클 패스벤더 부부가 참여한 글로벌 프로젝트로 지난 15일 개봉해 관객을 찾았다. 기대를 입증하듯 '호프'는 올해 개봉작 중 가장 빠른 속도인 3일 만에 100만, 5일 만에 200만 관객을 돌파한 데 이어 11일 만에 300만 기록을 차례로 넘어서며 쾌속 질주 중이다. 개봉 3주 차 누적 350만 고지를 점령한 '호프'는 이번 주말 400만 돌파를 앞두고 있다.
특히 '호프'에서 속을 알 수 없는 기묘한 표정부터 느릿한 충청도 사투리를 쓰는 양배 역으로 단번에 '호프'의 분위기를 반전시킨 신 스틸러 음문석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영화 중반부 등장과 동시에 특유의 음산함과 은은한 광기로 극 전체의 긴장감을 단숨에 끌어올린 음문석은 캐릭터에 완벽히 녹아든 연기로 잊을 수 없는 인상을 남겼다.
이날 음문석은 "나홍진 감독에게 오디션을 보고 '호프'에 참여할 수 있게 됐다. 처음 나홍진 감독과 티타임을 하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많이 했는데, 특히 내 일상 이야기를 많이 나눴던 것 같다. '곡성'도 너무 재미있게 봤고 내가 나홍진 감독에게 궁금했던 점을 계속 질문했던 것 같다. '곡성'을 잘 보면 전라남도 사투리 속에 충청도 사투리가 섞여 있다. 그런 지점에 대해 나홍진 감독에게 물었다가 갑자기 '혹시 충청도 사투리 가능하냐'고 해서 바로 그 앞에서 충청도 사투리 연기를 했다. 조감독이 앞에서 대사를 해주고 나는 연기를 했는데 조감독 뒤에 앉은 나홍진 감독 표정이 좋아보이더라. 양배는 충청도 사투리가 들어가면서 바뀌었다. 나를 보고 나홍진 감독이 느낌을 받은 게 아닌가 싶다"고 오디션 당시 상황을 곱씹었다.
그는 "출연을 결정한 뒤 시나리오를 봤는데 글을 읽으면서 영상화 되는 느낌이 처음이었다. 시나리오대로 영상화 되는 게 너무 신기했다. 양배를 통해 큰 재앙이 닥치는 설정이라 연기할 때 더 신중하고 고민을 많이 했고 이 캐릭터가 잘해주지 못하면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많은 고민을 하면서 촬영을 했다"고 답했다.
첫 호흡을 맞춘 나홍진 감독에 대해서도 남다른 신뢰가 가득했다. 음문석은 "나홍진 감독에 대한 내 마음을 정확하게 말할 수 있다. 지금이라도 나홍진 감독이 촬영하자고 하면 바로 '렛츠 고!'다. 나홍진 감독과 '호프'를 촬영할 때 리허설에서 내가 아이디어를 제안하면 많이 받아줬다. 실제로 나홍진 감독이 위트있다. 현장에서 너무 재미있게 촬영해서 촬영하는 동안 '이런 촬영을 또 할 수 있을까?' 싶었다. 정말 하나하나 밀도 있게 조명부터 디테일하게 촬영하면서 할 수 있는 현장이 또 있을지 생각하긴 했다"고 전했다.
전형적인 악인이 아닌, 사소한 이기심과 거짓말로 평온한 마을에 대재앙을 안기게 한, '평범하지만 섬뜩한 인간의 욕망'을 고스란히 담은 캐릭터 양배에 대해 "처음 양배 이야기를 들었을 때 이상한 아이도, 나쁜 아니도 아니라고 들었다. 그런데 또 악은 악이라는 나홍진 감독의 말이 처음엔 무슨 말인가 싶어서 헷갈렸다. 이때까지 촬영하면서 캐릭터를 제일 많이 고민했던 작품인 거 같다. 충청도 말 중에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여'라는 것이 있다. 딱 그런 느낌이었다. 처음엔 이 캐릭터를 어떻게 하지 싶었고 그러다 양배는 어떤 캐릭터일까 생각을 하다 우연히 조카를 봤다.아이가 위험한 상황인지 모르고 가위를 가지고 노는 모습을 봤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양배와 비슷하다고 느꼈다"고 설명했다.
독특한 양배 비주얼에 대해서도 "모든 콘셉트는 나홍진 감독이 만들었다.예전에 '맨인블랙' 시리즈를 보면 외계인이 사람 몸에 들어가도 콘트롤을 못하지 않나? 그런 느낌처럼 보이지 않을까 싶다. 나홍진 감독이 치아 제작을 했을 때 색깔 디테일까지도 계속 잡으면서 만들어 줬다. 촬영 할 때도 범석(황정민)이랑 양배가 만날 때 하관을 특이하게 썼던 이유가 가짜 치아라 침이 마르더라. 그 모습을 본 나홍진 감독이 조금 더 과장되게 연기 할 수 있냐고 하더라. 실제로 나는 연기할 때는 그렇게 나올지 몰랐는데 영화를 보고 나니 신기하더라. 영화 속 양배 모습이 너무 이상해서 집에 가서 따라 해보기도 했는데 안 나오더라. 나는 특수분장 전문 배우다. 특수분장이 내겐 이질감 없이 다가오고 마치 그저 평범한 하루, 어제와 오늘 같은 느낌이다. 내일은 또 어떤 특수분장이 날 기다리고 있을까 궁금하기도 하다. 특수분장을 했을 때 대중들이 특히 많이 사랑해 주니까 앞으로도 나는 얼마든지 할 수 있다"고 답했다.
'호프'에서 "우리 집에 있대니께유!"라는 명대사를 남긴 음문석은 "유행어처럼 된 것 같다. 그 대사를 요즘 다시 하게 된 계기가 무대인사였다. '호프' 무대인사 초반에 나를 몰라보는 관객이 많더라. 특히 어르신들은 '쟤는 왜 나온 거야?'라는 눈빛으로 보더라. 그래서 나도 모르게 양배 대사를 말하게 됐다. '우리 집에 있대니께유'라고 하니 놀란 표정으로 나를 알아보더라. 요즘엔 관객이 양배 대사를 해달라고 하면 대사를 해주고 있고 나도 그 대사를 할 때마다 너무 재밌더라"고 웃었다.
봉준호 감독은 개봉 당일 열렸던 '호프' GV에서 음문석에 대해 "좋은 의미로 음문석의 얼굴이 외계인보다 더 외계인 같았다"며 "구강과 하관의 움직임이 너무 기묘하고 놀라웠다"라는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에 대해 음문석은 "봉준호 감독의 GV 영상을 몇 번 본 정도가 아니라 몇 십번을 봤다. 봉준호 감독 입에서 내 이름 '음문석' 자체가 나왔다는 것에 너무 신기하고 감사했다. 2017년 내가 연출한 단편영화 '미행'으로 칸국제영화제에 간 적이 있었는데 그때 봉준호 감독도 '옥자'로 칸영화제에 왔을 때였다. 레드카펫에서 봉준호 감독이 걷는 것을 보면서 '내가 너무 함께 하고 싶은 감독인데'라며 부러워하기도 했다. 사실 봉준호 감독은 내가 볼 수 있는 것만으로 영광이다 싶었는데, 내 이름을 언급해준 것만으로도 너무 행복했다. 봉준호 감독이 '외계인보다 더 외계인 같다'라는 말을 해줬는데 그 칭찬을 듣고 일단 내가 그래도 캐릭터를 잘 소화했구나 싶었다. 양배 자체로 봐주신 것 같아서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너무 감사했다. 나홍진 감독과 봉준호 감독으로부터 동시에 러브콜을 받는다면 나는 현재로선 못 고르겠다. 마치 엄마가 좋은지, 아빠가 좋은지 선택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만약 두 감독의 차기작에 참여할 수만 있다면 잠을 안 자고서라도 임하겠다"고 고백해 장내를 웃게 만들었다.
마지막으로 선역에 대한 갈망에 대해 "'열혈사제' '범죄도시' '모범택시', 그리고 '호프'에서도 내가 맡은 캐릭터는 선한 부분이 많다고 느낀다. 나는 항상 캐릭터에 접근할 때 누구에게나 희로애락은 다 있고 다만 어떤 부분이 부각되느냐의 차이일 뿐이다. 나쁜 역이라고 생각하면서 연기 한 적이 단 한번도 없다. 양배도 누구에게 피해를 주고 싶은 게 아니라 그저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었을 것이다"며 "'호프' 개봉 이후 양배에 대한 많은 추측을 해주더라. 양배가 외계인이 아니냐는 말도 들었는데 그렇게 생각했을 때 캐릭터 확장이 많아지는 것 같아 좋더라. 너무 감사한 반응이었다. 양배에 대한 이야기가 많다는 것은 또 후속편에서 볼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진 거라고 생각한다. 사실 내가 연기했지만 나 역시 양배가 의심스럽다. 나홍진 감독이 후속편에 대해 직접적인 이야기는 안 해줬는데, 개인적으로 양배가 꼭 다시 나왔으면 좋겠다. 내가 죽지 않고 영화가 끝났다는 게 감사하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호프'는 비무장지대에 위치한 호포항 출장소장이 동네 청년들로부터 호랑이가 출현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온 마을이 비상이 걸린 가운데 믿기 어려운 현실을 만나며 시작되는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황정민, 조인성, 정호연, 테일러 러셀, 카메론 브리튼, 그리고 알리시아 비칸데르와 마이클 패스벤더 등이 출연했고 '추격자' '황해' '곡성'의 나홍진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조지영 기자 soulhn1220@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