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박찬준 기자]한국 축구에 대한 정치권의 개입을 조사하려는 국제축구연맹(FIFA)의 현장 점검이 미뤄줬다.
대한축구협회는 2일 'FIFA로부터 전날 내부 사정으로 현장점검단의 방한을 연기했다는 안내를 받았다'고 알렸다. 이어 'FIFA가 추후 방한 일정은 내부 일정 검토 및 아시아축구연맹(AFC)과 논의 후 다시 협회에 전달하기로 했다'고 덧붙였다. 내부사정이 무엇인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FIFA와 아시아축구연맹(AFC)은 최근 'Situation of the Korean Football Association(대한축구협회의 상황)'을 표제로 하는 공문을 보내왔다. 엘칸 마마도프 FIFA 회원협회 국장과 바히드 카르다니 AFC 부사무총장 명의였다.
정몽규 전 KFA 회장의 사임 이후 선거 제도 변화 및 선거 진행 상황과 이를 중심으로 한 주요 현안에 대한 보고서를 요청했다. 특히 K-축구혁신위원회의 이름을 콕 집어, 활동 내용과 논의 결과를 포함시키라는 내용을 담은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공문과 현장 조사는 차원이 다른 부분이다. FIFA와 AFC는 2024년 문체부의 KFA 감사, 국회 현안질의 등과 관련해 이미 경고 공문을 발송했다. FIFA 장 마리 케니 최고위원과 AFC 바히드 카르다니 사무총장 명의로 된 공문에선 'KFA는 자율적으로 사무를 관리하고 제3자의 부당한 영향을 받지 않도록 해야 할 법적 의무가 있다'고 지적했다. 또 '회원단체의 의무를 위반할 경우 제3자의 개입이 해당 축구협회의 잘못이 아니더라도 제재를 받을 수 있다는 점을 유념하기 바란다'고 적시했다.
FIFA 정관 14조 1항 '회원단체의 의무' 중 (i), 19조 1항 '회원 협회의 독립성' AFC 정관 15조 4항에 해당하는 '각 협회는 독립적으로 운영되어야 하며 제3자가 지나치게 영향력을 행사하면 안된다'는 조항을 명시했다. '제3자'란 정부, 의회, 정당 등 정치 사회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곳을 통칭하는 것이다.
한국 축구는 2026년 북중미월드컵 실패 후 길을 잃었다. 과도한 정치권의 개입에 '배'가 '산'으로 가고 있다. 정 회장을 비롯해 홍명보 전 월드컵대표팀 감독 등이 증인으로 출석한 국회 청문회가 이미 열린 바 있다.
혁신위도 지난달 6일 한국 축구의 체질을 근본적으로 개선하기 위해 정부 주도로 출범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월드컵 실패 재발 방지와 개선을 위한 대책을 마련하라고 지시했고, 문체부가 KFA를 향한 특별감사를 예고하며 혁신위 출범까지 이어졌다.
지아니 인판티노 FIFA 회장은 2024년 10월 한국을 찾아 "KFA는 FIFA 회원들 중 동아시아, 아시아 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도 모범적이라고 생각한다"며 "KFA는 매우 잘 운영되고 있다. 국가대표팀 감독을 결정하거나 다른 지원을 결정하는 건 KFA의 자율적인 권한이다. 이러한 축구협회의 자율성은 우리에게 매우 중요하다. 그래야 결과도 좋다. KFA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밝혔다. '외부의 간섭'에 선을 그은 것이다.
스포츠의 독립성이 보장되지 않을 경우 FIFA는 거침없이 칼을 꺼냈다. 아프리카, 중동, 동남아시아에서 징계가 나왔다. 2014년 나이지리아, 2015년 쿠웨이트, 2021년 파키스탄, 2022년 케냐, 짐바브웨, 2023년 스리랑카 등이 정부의 과도한 개입으로 회원국 자격정지 징계를 받은 바 있다. 특히 국가대표팀 자격 정지 처분을 받은 쿠웨이트는 2018년 러시아월드컵 예선 잔여 경기를 몰수패 처리된 바 있다.
정치권의 광폭 행보에 이미 축구계에서는 걱정 섞인 반응이 나왔다. 혁신위도 이를 의식해 당초 박지성 FIFA 분과위원과 최휘영 문체부 장관이 공동으로 위원장을 맡을 예정이었지만, 최 장관은 출범 단 8분 만에 유승민 대한체육회장에게 공동위원장 직함을 넘겼다. 박지성 혁신위원장은 "정치적으로 개입해서 무언가를 할 수 있는 단체는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그러나 혁신위는 정부 인사가 위원으로 존재하는 엄연한 정부 주도 기관임을 부인할 수 없다. 혁신위는 선거 인단 확대, 온라인 투표 도입 등 새로운 회장 선거 방식 개편 논의에 이어 국가대표 감독 선임에까지 칼을 댈 준비를 하고 있다.
FIFA는 한걸음 더 나아가 직접 상황을 들여다보기로 했다. '자율성 침해' 등 한국 축구 상황을 점검하기 위해 직접 KFA를 방문해 혁신위 등을 점검하기로 했다. FIFA의 현장 조사는 이례적이다. 최악의 경우 KFA는 자격정지, 대표팀 및 클럽의 국제대회 출전 제한, 타 회원국 협회와 교류 제한, 각종 개발사업 및 교육 프로그램, 지원금 중단 등의 징계를 받을 수 있다. 회원협회 사무국 국장을 포함한 3명이 9월 둘째 주 중에 2박 3일 일정으로 협회를 찾을 예정이었지만, 일정이 미뤄졌다.
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