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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北팀을 이기는걸 원치않는 걸까요" 대한민국 수원FC위민 선수들의 서운함...'15억원' 여축 우승전쟁, 남북 양팀을 응원하는 세계 유일의 나라

2017년 김일성경기장에서 펼쳐진 여자축구 아시안컵 예선전에서 북한 여자축구 대표팀을 열렬히 응원하는 북한 응원단. 사진출처=평양공동취재단
2017년 김일성경기장에서 펼쳐진 여자축구 아시안컵 예선전에서 북한 여자축구 대표팀을 열렬히 응원하는 북한 응원단. 사진출처=평양공동취재단
사진출처=AF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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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조선 전영지 기자]"그분들은 우리가 이기는 걸 원치 않는 걸까요."

20일 북한 '내고향 여자축구단'과의 준결승 맞대결을 앞둔 대한민국의 여자축구 선수들이 꾹 눌러 참아온 한마디를 털어놨다.

수원FC 위민이 20일 오후 7시 북한 내고향여자축구단과 아시아 여자챔피언스리그(AWCL) 4강전을 치른다. 북한 여자축구 클럽 사상 최초의 방한이다. 연령별 대표팀을 포함하면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 이후 12년 만이고, 북한 선수가 한국에서 개최된 스포츠 이벤트에 나서는 건 2018년 12월 인천 국제탁구연맹(ITTF) 월드투어 그랜드파이널스 이후 8년 만이다. 북한은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개회식 공동입장,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 구성, 2018년 9월 창원세계사격선수권 북한대표팀 방한 이후 8년 만의 남북 스포츠 교류에 통일부 등 정부과 남북협력단체들의 관심이 쏟아지고 있다. 이번 대회 관중석은 7000석 규모다. 아시아축구연맹(AFC)가 초대권 등으로 운영하는 2000석을 제외한 동측(EAST ZONE)과 남측(SOUTH ZONE) 좌석, 약 5000석이 판매됐는데 이중 3000석이 통일부에서 지원하는 남북응원단 몫이다. 통일부는 북한 '내고향여자축구단'의 응원단을 조직한 민간단체에 남북협력기금 3억원 규모의 티켓, 응원도구 등 비용을 지원키로 했다.

북한 최강 클럽 내고향 여자축구단 EPA연합뉴스
북한 최강 클럽 내고향 여자축구단 EPA연합뉴스

새 정부 들어 첫 남북 스포츠 교류, 북한 팀의 첫 방남, 통일부의 관심 및 지원은 당연히 반길 일이다. 문제는 스포츠, 특히 여자축구, AWCL 대회에 대한 몰이해와 대한민국 선수들에 대한 존중 결여다. '축구'가 아닌 '남북'이라는 정치적 관점으로 이 대회에 접근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하다. 박길영 감독이 이끄는 수원FC 위민이 '디펜딩 챔프' 중국 우한 장다를 상대로 4대1 대승과 함께 4강행을 일군 덕분에, 또 일찌감치 AWCL 유치 신청을 해둔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과 협회의 계획이 맞아떨어진 덕분에 8년 만에 남북 체육교류가 극적으로 재개됐다. 수원FC 위민 선수들의 투혼과 축구인들의 혜안이 일궈낸 K-스포츠의 성과다.

이 대회는 '경평 친선축구'가 아니다. 올림픽에 함께 출전한 남북 단일팀도 아니다. 이 행사의 주최측은 엄연히 AFC와 대한축구협회다. 명실상부 아시아 여자축구 최강 클럽을 가리는 클럽 대항전이고 우승 상금 100만달러(약 15억원), 준우승 상금은 50만달러(7억5000만원)이다. 이 대회를 위해 수원FC 위민은 지난해 말 '월드클래스' 지소연, 김혜리, 최유리, 하루히 등을 폭풍 영입해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사진 출처=AF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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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수원FC 위민
사진제공=수원FC 위민

수원FC 위민이 속한 WK리그의 우승 상금은 단 2000만원에 불과하다. K리그1 우승 상금은 5억원, 이번 대회 우승상금은 15억원이다. 누구보다 간절하고 누구보다 이기고 싶은 경기다. 화천KSPO, 서울시청 등 WK리그 라이벌팀들도 수원FC의 선전을 위해 대승적 차원에서 경기 일정 변경을 수용했다. 이미 오랫동안 상대적 박탈감이 일상이 된 '마이너리티' 여자축구 선수들에게도 작금의 상황은 생경하다. '디펜딩 챔피언' 중국 챔피언을 이겼을 땐 관심도 없다가 북한 팀이 온다니 갑자기 쏟아지는 통일부의 폭발적 관심, 당초 지정된 호텔을 북한에게 내주고, 단체 티켓값 5000원 경기에 '남북 응원단' 지원 예산 3억원이 뚝 떨어지는 상황을 바라보는 스포츠계의 시선은 싸늘하다.

여자축구계에서 갖는 대회의 의미 역시 되새길 필요가 있다. 아시아 각국이 돌아가면서 개최하는 동아시안컵을 제외하고 클럽 대회이긴 하지만 AFC 성인 레벨에서 여자축구 국제대회 개최 자체가 처음이다. 처음으로 개최국 이점을 노리며 열렬한 안방 응원을 기대했던 선수들 입장에선 북한 팀 응원을 특별 지원하는 정부와 일부 응원단의 정책이 야속할 수밖에 없다. AFC가 지정한 준결승전의 홈팀은 북한 내고향, 원정팀은 대한민국 수원FC 위민이지만, 첫 안방 대회에서 진짜 '원정팀'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900여명의 관중이 역대 최다였던 WK리그에서 처음으로 만원 관중이 들어찬다는데 뒷맛은 씁쓸하기 짝이 없다.

선수단 역시 섭섭함을 감추지 못하는 분위기다. 안방에서 열렬한 응원을 받아도 쉽지 않은 승부, 7000석 중 3000석의 응원단이 상대팀 '내고향'을 함께 응원하겠다는 황당한 상황. "우리의 적은 우리인 것같아요. 그분들은 우리가 이기는 걸 원치 않는 걸까요?" "우리가 결승 올라가는 걸 싫어할 것같아요." "우리가 결승에 올라가면 경기장이 텅텅 비지 않을까요"라는 자조 섞인 반응들도 흘러나왔다.

사진출처=평양공동취재단
사진출처=평양공동취재단

2017년 북한 평양 김일성경기장에서 5만 관중이 운집한 가운데 열린 남북 대표팀의 여자아시안컵 예선, 당시 원정에 나선 국가대표 선수들의 증언에 따르면 북한팀을 향한 북한 관중의 일방적 응원은 소름이 돋을 지경이었다. 후반 30분 장슬기의 동점골이 터지자 숨막힐 듯한 정적이 흘렀다. 골을 넣고 몰려든 선수들은 "엎드려 있어! 엎드려 있어!"하며 세리머니를 자제했다. 세리머니도 못할 만큼 살벌한 분위기, 북한 관중들은 "우리 선수 이겨라!" "단숨에!" "본때를 보여라!"라며 압도적 응원전을 펼쳤다. 1대1로 비긴 후에도 라커룸에 들어갈 때까지 승점 1점의 기쁨을 숨겨야 했다. 이겨야 사는 축구, 스포츠 세계에선 당연한 일이다. 세상의 모든 축구는 전쟁이고, 홈 어드밴티지란 그런 것이다. 수원 캐슬파크를 찾는 남북응원단이 국호 대신 양팀의 명칭과 선수 이름을 부르면서 "잘한다 수원" "힘내라! 내 고향"을 번갈아 외치며 응원하기로 했다는데 양팀을 같이 응원하는 축구가 세상 천지 어디에 있는지. 평창동계올림픽 당시 여자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을 운영하는 과정에서 '정치적 희생양' 논란, '우리 선수 차별론'으로 한바탕 홍역을 치른 과오 또한 잊어선 안된다. 8년 만에 방남한 '손님' 북한 선수단을 '환영'하는 일이 '우리 딸' 대한민국 선수들을 밀어내는 일이 돼서는 안된다.

사진출처=AFC
사진출처=AFC

수원FC 구단은 17일 AWCL 공식 숙소 입소를 앞두고 16일 선수단 사기 진작을 위한 삼계탕 '회식'을 준비중이다. 수원FC 위민 '캡틴'이자 대한민국 여자축구의 리빙 레전드인 지소연은 "안방에서 북한 내고향 축구단과 경기를 하는 것에 정부와 국민들이 많은 관심을 가져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우리는 늘 그래왔듯 그냥 우리가 할일을 하면 된다"며 결연한 각오를 내비쳤다. 여자축구 팬들과 대한민국 축구 팬들을 향해 열렬한 응원도 당부했다. "수원FC 포트리스 팬들을 비롯해 남녀 축구 팬들이 경기장을 많이 찾아주셨으면 한다. 그 어느 때보다 저희들을 위한 응원이 절실하다. 저희의 12번째 선수가 돼주시면 최선을 다해서 좋은 결과로 보답하겠다. 쉽지 않은 경기지만 반드시 이기고 싶다는 마음이 더 강해지고 있다. 수원FC와 여자축구 팬들을 위해 우리는 끝까지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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