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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에게는 아직 2개월의 시간이 남아있습니다.'
8일 울산전을 비롯해 상주가 최근 내놓고 있는 스쿼드를 보면 비정상임을 알 수 있다. 수비수 이광선이 최전방 공격수로 나선 것부터 그렇다.
이유는 명백하다. 주민규 윤주태 여 름 등 공격자원들이 모두 부상 중이라 기용할 선수가 없다. 설상가상으로 이광선을 비롯해 김호남 김도형 신세계 홍 철 김남춘 임채민 김태환 유상훈 주민규 윤주태 여 름 김진환 등 입대 동기 17명이 한꺼번에 제대할 말년 병장이다.
하지만 이런 현실에 대한 김태완 감독의 자세는 다르다. 2002년 트레이너로 시작해 16년간 장기복무하며 산전수전 다 겪은 관록이 그대로 묻어난다. 긍정 마인드로 무장된 듯 비범하다.
8일 울산전 시작 직전 김건희 권완규 윤보상 박대한 송시우 등 신병 17명의 입대 신고식이 있었다. 이들은 4주 훈련소 생활을 마친 뒤 지난 5일 팀에 합류했다. 김 감독은 이들을 가리키며 "전역 예정자들이 나갈 때까지 2개월의 시간이 주어졌잖아요. 괜찮아요. 그 기간을 잘 활용해서 다시 만들면 됩니다"라고 말했다. 예전에는 제대와 동시에 신병이 들어와서 애를 먹었는데 2개월 빨리 신병을 받은 게 오히려 다행이란다. "신에게는 아직 열두 척의 배가 남아있습니다"라는 이순신 장군의 가르침을 연상케 하는 마인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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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감독의 이런 마인드는 2대3으로 석패한 울산전에서도 잘 나타났다. 이날 경기는 이른바 '졌잘싸(졌지만 잘 싸웠다)'였다. 경기 종료 직전 극장골을 허용했지만 상주팬들을 흥분케 한 장면들을 무수히 연출했다. 재미로만 따지면 만점 짜리였다. 김 감독도 "오늘 누가 이겨도 좋은 경기였다"고 자평했다. 0-2로 몰린 뒤 하프타임을 맞았을 때 김 감독은 선수들을 닦달하지 않았다. 그저 "울산 양 측면의 황일수 김인성을 너무 자유롭게 해주는 것 같으니 전방 압박부터 우리가 잘 할 수 있는 걸 해보자"고 했단다. 그랬더니 후반 시작부터 달라진 병사들은 '군인정신'을 제대로 보여주며 관중의 탄성을 자아냈다.
러시아월드컵에 차출됐다가 아쉬움을 가득 안고 복귀한 김민우 홍 철을 대하는 자세에서도 특유의 스타일이 묻어났다. 스웨덴과의 1차전에서 박주호(울산)가 조기 부상 아웃된 이후 기회를 얻은 김민우는 팬들로부터 칭찬보다 비난을 많이 받았던 게 사실이다. 홍 철은 멕시코와의 2차전에 교체 투입돼 4분 정도 뛴 데 이어 마지막 독일전에서 사실상 1경기만 출전했다.
의기소침해져 돌아왔을 김민우를 향해 김 감독은 따로 면담을 갖고 위로해준다거나 하지 않았다. "지금은 군인이다. 군인정신이 뭔가. 스스로 이겨내야 한다." 김 감독은 "김민우는 자신이 갖고 있는 능력의 60%밖에 보여주지 못한 것 같다. 만약 민우가 2골 정도 넣었다면 욕을 먹었겠나"라며 "결국 좋은 경험을 바탕으로 스스로 성장하는 계기로 발전시켜야 한다"고 덧붙였다.
누군가 힘들어 할 때 옆에서 어깨 다독여주는 방법을 생각하면 야속할 법도 하다. 그러나 김 감독은 군인팀의 수장답게 '강한 군인'을 만드는 용병술을 선택했다.
상주가 탄탄한 기업 구단들과의 틈바구니에서 상위그룹을 유지하고 '졌잘싸'를 선사하는 비결이기도 하다.
최만식 기자 cms@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