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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엔트리에만 포함돼도 좋을 것 같았다.
늦깎이 발탁이었지만 대표팀 적응은 빠르게 했다. "어린 나이에 갔더라면 주눅이 들 수도 있었을텐데, 또래도 있고, 친구도 많아서 적응은 어렵지 않았다. 수비수들끼리 자주 모여서 대화도 나눴다. 하지만 조금만 더 대표팀에 빨리 왔으면 하는 아쉬움은 있더라. 물론 내가 부족한 탓이었지만." 태극마크의 무게감에 주눅들지 않은 이유가 있었다. "출국하기 전에 감독님이 인터뷰를 하셨더라. 거기서 '오반석은 늘 그랬듯이 실력으로 증명할 것'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이 말이 그렇게 가슴에 남고 힘이 되더라. 캡처를 해놓고 여러번 읽었다."
당초 대표팀은 스리백을 염두에 두는 듯 했다. 오반석이 발탁된 이유도 이때문이었다. 하지만 막상 대회를 앞두고 포백이 메인으로 자리 잡았다. 그래도 마지막까지 끈을 놓지 않았다. "단 한순간도 '경기에 나설 수 있다'는 생각을 놓지 않았다. 놓으면 안되는 부분이었고, 끝까지 준비하는게 선수의 자세다." 하지만 끝내 기회는 없었다. "경기에 나서고 싶은 것이 내 개인적인 욕심인지, 아니면 팀을 위한 욕심인지 판단이 되지 않더라. 이 부분이 가장 힘들었다. 나 대신 출전한 선수들에 대한 미련 혹은 원망은 전혀 없었다. 독일을 꺾고 유종의 미를 거뒀지만, 들어와서도 여러가지 생각이 들어 편하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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얻은 것도 많았다. "제주에서 항상 경기에 뛰면서 뛰지 못하는 선수들에 대해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됐다. 멘탈적으로도 언제 어디서든 흔들리지 않게 준비를 해야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하나, 배운 것은 '원팀'의 중요성이다. "팀이 성적이 나기 위해서는 뒤에서 준비하는 사람이 더 중요하다. 큰 무대일수록 원팀이 중요하다. 크로아티아가 결승까지 올라간 것은 베스트11 외에 다른 선수들이 다 잘해줬기 때문이다. 독일전에서도 골이 터진 후 모두 함께 웃지 않았나. 주변 사람들이 그러더라. '네가 골 넣어도 덤덤하던 애가 진짜 좋아하더라'고. 그만큼 한마음이 됐고, 그래서 결과도 얻었다."
아쉬운 첫 월드컵, 하지만 오반석은 좌절하지 않았다. 지금처럼 묵묵히 또 한번 도전할 생각이다. "물론 월드컵 무대를 또 밟으면 좋을 것 같다. 하지만 다시 월드컵을 목표로 하기는 힘들 수도 있다. 일단 지금껏 해왔던 것처럼 단계단계를 차근차근 밟는게 목표다. 나이가 차면서 큰 틀 보다는 단계를 밟는게 더 중요하다. 가능하면 계속해서 대표팀에 차출되고 싶다. 그래서 아시안컵도 바라보고 싶다."
오반석은 인터뷰 말미 의미 있는 말을 전했다. "(조)현우나 (문)선민이처럼 월드컵을 통해 스타가 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월드컵을 통해 얻은 경험을 바탕으로 좋은 축구를 하고 싶다. 월드컵에서 보듯 우리 국민들은 분명 축구를 좋아한다. 선수들과 구단이 잘 합치면, 축구장으로 팬들을 모을 수 있다. 이번 월드컵이 분명 도움이 될 것이라 믿는다. 성적도 중요하지만, 재미있는 스토리나 좋은 플레이로 팬들에게 다가가고 싶다."
제주=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