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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축구 잘하는 선수는 많다. 지난 10년간 '반짝' 명멸해간 선수 역시 셀 수 없이 많다. 대부분의 스포츠가 그렇지만 발로 하는 축구는 특히 변수가 많다. 공이 어디로 튈지 모른다. 전쟁같은 그라운드엔 부상 위험이 상존한다. 나를 믿고 썼던 감독이 하루아침에 사라지기도 하고, 갑자기 툭 튀어나온 어린 경쟁자들은 호시탐탐 내 자리를 노린다. 밀리는 순간 끝장이다. 초등학교 축구선수가 중고, 대학교를 거쳐 K리거가 될 확률은 불과 0.8%. 동양의 작은 나라에서 온 20대 선수가 낯선 독일의 '1부' 그라운드에서 10년 붙박이 주전으로 뛸 확률은 얼마나 될까.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통산 200경기를 뛴 구자철(30·아우크스부르크)의 위대한 가치는 이 지점에서 평가받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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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서울 보인고를 졸업해 드래프트 3순위로 제주 유나이티드에 입단한 구자철은 일견 평범하지만 결코 평범하지 않은 미드필더다. 스무 살이 넘은 나이에 도전한 독일 생활에 폭풍적응했다. 이젠 후배들의 통역을 자청할 만큼 막힘없는 독일어를 구사한다. 어린 시절 호주에서 유학한 기성용, 독일 함부르크 유스로 출발한 손흥민과는 시작점이 다르다. 프로 첫 스승인 박경훈 전 제주 감독은 "(구)자철이는 처음 언뜻 보면 평범하다. 뭘 잘하는지 딱 꼬집어 말하기 힘들다. 그런데 보면 볼수록 대단하다"고 했었다. "(자철이는) 데리고 있지 않으면 얼마나 좋은 선수인지 모른다. 패스, 시야, 슈팅 등 기술적으로 빼놓을 것이 없다. 무엇보다 큰 장점은 탁월한 인성"이라고 칭찬한 바 있다. 구자철은 끊임없이 노력하는 선수다. 스프린트 훈련을 위해 육상선수에게 개인 과외도 불사했다. 20대 중후반, 혹사한 무릎에 수차례 부상이 찾아왔지만, 치열한 재활로 이겨냈다. 독일 현지로 급파돼 구자철의 재활과정을 지켜봤던 허 강 동의과학대 (DIT) 스포츠재활센터 팀장은 "스스로 몸을 관리할 줄 아는 진짜 프로다. 셀프 마사지로 자신의 근육을 혼자 풀어낼 줄 안다. 지난해 호주전 직후 독일에 갔을 때는 뭉친 근육을 절반 이상 손으로 풀어놨더라"며 혀를 내둘렀다.
지난 9시즌 동안 오늘이 마지막처럼 달려왔다. 누구보다 많이 뛰는 팀플레이어이자, 위기의 순간, 팀을 구하는 천금같은 골을 넣는 선수다. 스트라이커 포지션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는 2011~2012시즌, 2015~2016시즌 팀내 최다골을 기록했다. 아우크스부르크 팬들이 그를 사랑하는 이유다. 구자철은 2011년 이후 코리안 분데스리거들의 길이 됐다. 감독, 동료들과 스스럼없이 대화를 나눈다. 지동원, 홍정호의 아우크스부르크행에도 구자철의 한마디는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한 경기에 일희일비하고, 원색적인 비난을 쏟아내기엔 그가 독일에서 꿋꿋이 버텨낸 지난 9시즌이 참으로 위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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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안컵이 갑자기 분위기 '싸'하게 종료된 후 SNS로 전해진 국대 은퇴, 그리고 사흘만에 들려온 분데스리가 200경기 뉴스…. 구자철의 진가는 함께 뛰어본 선수들만이 안다. 허정무, 조광래, 홍명보, 최강희, 슈틸리케, 신태용, 벤투… 국대 감독들이 지난 11년간 구자철을 선택한 이유, 분데스리가 1부리그 볼프스부르크, 마인츠, 아우크스부르크에서 팀이 바뀌고, 감독이 바뀌고, 나이를 먹어도 변함없이 중용된 이유는 분명하다.
지난 1일 구자철의 SNS에 남긴 국가대표 은퇴 글 아래 아우크스부르크 동료 핀보가손이 한글로 쓴 '전설'이라는 두 글자는 그가 우리에게, 함께 뛰는 동료들에게 어떤 선수인지를 새삼 깨닫게 한다.
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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