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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자철 분데스리가 200G가 위대한 이유,국대은퇴가 아쉬운 이유

전영지 기자

기사입력 2019-02-07 05:25


그래픽=문성원 기자 moon@sportschosun.com

세상에 축구 잘하는 선수는 많다. 지난 10년간 '반짝' 명멸해간 선수 역시 셀 수 없이 많다. 대부분의 스포츠가 그렇지만 발로 하는 축구는 특히 변수가 많다. 공이 어디로 튈지 모른다. 전쟁같은 그라운드엔 부상 위험이 상존한다. 나를 믿고 썼던 감독이 하루아침에 사라지기도 하고, 갑자기 툭 튀어나온 어린 경쟁자들은 호시탐탐 내 자리를 노린다. 밀리는 순간 끝장이다. 초등학교 축구선수가 중고, 대학교를 거쳐 K리거가 될 확률은 불과 0.8%. 동양의 작은 나라에서 온 20대 선수가 낯선 독일의 '1부' 그라운드에서 10년 붙박이 주전으로 뛸 확률은 얼마나 될까.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통산 200경기를 뛴 구자철(30·아우크스부르크)의 위대한 가치는 이 지점에서 평가받아야 한다.

구자철은 4일(한국시각) 2018~2019시즌 독일 분데스리가 20라운드 후반 23분 교체출전해 팀의 3대0 승리에 기여했다. 2011년 1월 독일 볼프스부르크 유니폼을 입은 후 마인츠, 아우크스부르크를 거쳐 9시즌만에 200경기 대기록을 세웠다. '차붐' 차범근(308경기)에 이어 한국 선수로는 두 번째로 분데스리가 200경기 그라운드를 밟았다.


2011년 2월 볼프스부르크행을 확정지은 후 스물한살의 구자철.  사진=스포츠조선 DB

사진출처=아우크스부르크 공식 SNS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축구청춘'에게 시련은 보약이 됐다. 스물한 살 때인 2010년 남아공월드컵 최종 엔트리에서 탈락한 후 이를 악물었다. 구자철은 2011년 카타르아시안컵에서 득점왕에 오른 직후 독일 분데스리가 볼프스부르크로 이적했다. 이후 9시즌을 꼬박 독일에서 뛰었다. 중국리그에서 천문학적인 오퍼도 있었지만 선택의 기준은 언제나 돈이 아닌 도전과 성장이었다.

2007년 서울 보인고를 졸업해 드래프트 3순위로 제주 유나이티드에 입단한 구자철은 일견 평범하지만 결코 평범하지 않은 미드필더다. 스무 살이 넘은 나이에 도전한 독일 생활에 폭풍적응했다. 이젠 후배들의 통역을 자청할 만큼 막힘없는 독일어를 구사한다. 어린 시절 호주에서 유학한 기성용, 독일 함부르크 유스로 출발한 손흥민과는 시작점이 다르다. 프로 첫 스승인 박경훈 전 제주 감독은 "(구)자철이는 처음 언뜻 보면 평범하다. 뭘 잘하는지 딱 꼬집어 말하기 힘들다. 그런데 보면 볼수록 대단하다"고 했었다. "(자철이는) 데리고 있지 않으면 얼마나 좋은 선수인지 모른다. 패스, 시야, 슈팅 등 기술적으로 빼놓을 것이 없다. 무엇보다 큰 장점은 탁월한 인성"이라고 칭찬한 바 있다. 구자철은 끊임없이 노력하는 선수다. 스프린트 훈련을 위해 육상선수에게 개인 과외도 불사했다. 20대 중후반, 혹사한 무릎에 수차례 부상이 찾아왔지만, 치열한 재활로 이겨냈다. 독일 현지로 급파돼 구자철의 재활과정을 지켜봤던 허 강 동의과학대 (DIT) 스포츠재활센터 팀장은 "스스로 몸을 관리할 줄 아는 진짜 프로다. 셀프 마사지로 자신의 근육을 혼자 풀어낼 줄 안다. 지난해 호주전 직후 독일에 갔을 때는 뭉친 근육을 절반 이상 손으로 풀어놨더라"며 혀를 내둘렀다.

지난 9시즌 동안 오늘이 마지막처럼 달려왔다. 누구보다 많이 뛰는 팀플레이어이자, 위기의 순간, 팀을 구하는 천금같은 골을 넣는 선수다. 스트라이커 포지션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는 2011~2012시즌, 2015~2016시즌 팀내 최다골을 기록했다. 아우크스부르크 팬들이 그를 사랑하는 이유다. 구자철은 2011년 이후 코리안 분데스리거들의 길이 됐다. 감독, 동료들과 스스럼없이 대화를 나눈다. 지동원, 홍정호의 아우크스부르크행에도 구자철의 한마디는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한 경기에 일희일비하고, 원색적인 비난을 쏟아내기엔 그가 독일에서 꿋꿋이 버텨낸 지난 9시즌이 참으로 위대했다.





"목표를 정하고 꿈을 좇아 최선을 다한 시간들이었습니다. 앞으로 보다 주위를 살피고 주변을 배려할 줄 아는 자신이 되도록 더욱 노력하겠습니다. 대표팀 유니폼은 내려놓았지만, 한국 축구를 위해서 이곳 독일에서 계속해서 노력할 것이고 함께 하겠습니다." 1989년생, 한국나이로 이제 서른인 구자철의 국가대표 은퇴 선언이 유독 아쉬운 이유이기도 하다. 2011년 카타르아시안컵에서 5골3도움으로 득점왕에 올랐고, 2012년 런던올림픽 동메달 역사를 썼고, 브라질, 러시아월드컵을 경험했다. 축구선수로서 시야가 활짝 열린 '베테랑 미드필더'를 이렇게 보내기 아쉽다. 지난해 러시아월드컵 직후 국가대표 은퇴를 고민하던 그를 벤투 감독이 직접 찾아가 설득한 이유도 이 때문이었을 것이다. 지난 11년의 헌신이 부족했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매경기 태극기가 새겨진 축구화를 신고 독일 그라운드에 섰던 그의 진심을 안다. 다만 국가대표란 '개인의 선택'이 아니라는 믿음, 무엇보다 선수로서 그의 활약, 멘토로서 그의 역할에 대한 기대감이 여전히 남아서다.

아시안컵이 갑자기 분위기 '싸'하게 종료된 후 SNS로 전해진 국대 은퇴, 그리고 사흘만에 들려온 분데스리가 200경기 뉴스…. 구자철의 진가는 함께 뛰어본 선수들만이 안다. 허정무, 조광래, 홍명보, 최강희, 슈틸리케, 신태용, 벤투… 국대 감독들이 지난 11년간 구자철을 선택한 이유, 분데스리가 1부리그 볼프스부르크, 마인츠, 아우크스부르크에서 팀이 바뀌고, 감독이 바뀌고, 나이를 먹어도 변함없이 중용된 이유는 분명하다.

지난 1일 구자철의 SNS에 남긴 국가대표 은퇴 글 아래 아우크스부르크 동료 핀보가손이 한글로 쓴 '전설'이라는 두 글자는 그가 우리에게, 함께 뛰는 동료들에게 어떤 선수인지를 새삼 깨닫게 한다.
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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