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잘키운 시도민구단, 열 기업구단 안부럽다

박찬준 기자

기사입력 2019-03-07 06:00



2019년 3월5일은 K리그에 새로운 역사가 쓰여진 날이다.

경남과 대구, 두 시도민구단이 나란히 아시아 축구의 최정상을 가리는 아시아챔피언스리그(ACL)에 출격했다. 경남은 홈에서 산둥 루넝(중국)과, 대구는 원정에서 멜버른(호주)과 맞붙었다. K리그 역사에서 복수의 시도민구단이 ACL에 나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간 시도민구단 중에는 대전(2002년), 성남(2015년)만이 ACL을 경험했다. 지난 시즌 경남은 리그 준우승, 대구는 FA컵 우승의 대업을 이루며 구단 사상 처음으로 ACL 출전권을 거머쥐었다.

그간 외면당했던 시도민구단의 놀라운 성과에 박수가 쏟아졌지만, 한켠에서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었다. K리그를 대표해 나서는 ACL에서 '자칫 망신이라도 당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이어졌다. ACL은 K리그와 완전히 다른 무대다. 기업구단조차도 조금만 잘 못 준비하면 바로 추락할 수 있는, 쉽지 않은 대회다. 천문학적인 투자에 나선 중국과 일본의 세력이 커지며, ACL은 더욱 어려워졌다.

하지만 데뷔전에 나선 경남과 대구는 세간의 우려를 날려버렸다. 경남은 마루앙 펠라이니, 그라치아노 펠레 등 유럽 빅리그를 누빈 슈퍼스타들이 즐비한 산둥을 상대로 2대2로 비겼다. 전반에는 첫 아시아 나들이에 따른 긴장감으로 실수를 연발했다. 하지만 후반 확달라진 경기력으로 단숨에 경기를 뒤집었다. 비록 마지막 동점골을 허용하며 승리를 놓쳤지만, 팬들을 열광시키기에 충분한 경기였다. 김종부 감독은 "경남이 아시아에서 통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며 만족감을 표시했다.


대구는 데뷔전에서 역사적인 승리를 챙겼다. 호주 원정은 ACL 일정에서도 가장 까다로운 축에 속한다. 장기간 비행, 달라진 기후, 시차 등 극복해야 할 것이 한두개가 아니다. 기업구단 역시 호주 원정이라면 고개를 젓는다. 멜버른을 만난 대구는 탄탄한 조직력을 과시하며 아시아 무대에 자신의 이름을 확실히 각인시켰다. 전반 토이보넨에게 선제골을 내줬지만, 대구는 세징야, 황순민, 에드가의 환상적인 골로 3대1 역전승에 성공했다. 내용과 결과, 모두 만점짜리 승리였다.

경남과 대구는 아시아에서 K리그표 시도민구단의 가능성을 확실히 보여줬다. 시도민구단은 기업구단과 함께 K리그의 중요한 축이다. 시도민구단의 탄생과 함께 K리그는 외향적 성장을 이뤘다. 하지만 늘 천덕꾸러기 대우를 받았다. 항상 정치적 외풍에 시달렸고, 열악한 재정으로 흔들렸다. 긍정적인 이슈보다 부정적인 뉴스가 더 많았다. 시도민구단의 추락과 함께 K리그도 질적 하락을 피하지 못했다.


그런 의미에서 시도민구단을 넘어 기업구단, 나아가 아시아 무대와 경쟁하고 있는 경남과 대구의 행보는 반갑다. 두 팀은 시도민구단의 롤모델로 손색이 없다. 경남과 대구는 '키워 쓴다'는 공통된 전략을 내세우고 있지만, 그 내용은 조금 다르다.

경남은 미완의 대기를 영입해 키운 뒤, 비싼 값에 다시 판다. 올 시즌이 대표적이다. 경남은 올 겨울 최영준(전북) 박지수(광저우 헝다), 말컹(허베이 화샤)을 팔아 무려 90억원을 벌었다. 이들 셋을 데려오는데 쓴 비용은 5억원 남짓이다. 무려 85억원의 수익을 올린 셈이다. 경남은 이 돈으로 빚도 갚고, 구단 전체적인 살림도 손을 봤다. 눈여겨 볼 것은 수익 대부분을 선수단 정비에 투자했다는 점이다.


경남은 올 겨울 폭풍영입에 나섰다. 기본 전략은 비슷하다. 저렴하면서도, 더 성장할 수 있는 선수 위주로 찾았다. 포지션은 수비쪽에 집중됐다. 비교적 자원이 한정된 수비수가 향후 이적시장에서 이득을 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적료가 발생될 수 있는 선수는 일찌감치 장기계약을 묶어뒀다. 물론 당장의 성적도 놓치지 않았다. 바로 활용해야 하는 외인은 비싸더라도, 확실한 선수를 데려왔다. 조던과 룩이 그렇게 영입됐다. 경남은 안목이 좋은 지원팀과 이 선택을 전폭적으로 믿어주는 수뇌부, 영입한 선수를 어떻게든 활용하는 김종부 감독이 환상의 시너지를 내고 있다.


대구는 유망주 육성 전략을 내세웠다. 조광래 사장의 장기를 적극 활용했다. 유망주 보는 눈이 탁월한 조 사장은 넓은 스카우트망을 이용해, 일찌감치 좋은 유망주를 선점했다. 필요하면 직접 부모들을 만나 대구행을 설득했다. 구단 내부적으로 육성 시스템을 만들고, 이들을 적극적으로 인큐베이팅했다. 그 결실이 바로 지난 시즌 FA컵 우승이었다. 김대원 정승원 장성원 김우석 정치인 등은 대구의 미래가 아닌 현재로 자리잡았다. 젊은 선수들이 대거 포진한 대구는 리그에서 가장 많이 뛰고, 역동적인 팀으로 자리매김했다. 기업구단의 오퍼에도 불구하고, 대구는 이들 유망주들을 지켜내며 더 나은 미래를 예고했다.

선수단이 안정되자, 시도 지원에 나섰다. 한때 홍준표 전 지사로부터 '해체' 언급까지 들었던 경남은 이제 도청에서 가장 신경쓰는 파트다. 예산부터 경기장 정비까지 적극적인 지원에 나섰다. 대구는 구단의 미래를 좌우할 새 구장을 지었다. 좋은 입지에, 적당한 사이즈을 갖춘 'DGB대구은행파크'는 네이밍 마케팅까지 성공하며, 향후 대구의 성장 가능성을 더욱 높였다.

잘 키운 시도민구단은 열 기업구단 부럽지 않다. 경남과 대구가 증명하고 있다. 다른 시도민구단도 할 수 있다. 제2, 제3의 경남, 대구가 나타나면 K리그는 더욱 발전할 수 있다.


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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