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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조선 최만식 기자] "배드민턴에도 '쌀딩크'가 있어요."
2023년 세계선수권대회 한국 역대 최고 성적(금메달 3, 동메달 1), 항저우아시안게임 21년 만의 최고 성적(금 2, 은 2, 동 3), 2024년 파리올림픽 16년 만의 최고 성적(금 1, 은 1), 안세영의 세계랭킹 1위 등극. 김 전 감독이 2022년 11월부터 2024년까지 부임하는 동안 한국 대표팀이 내놓은 주요 성과들이다. 감독 재임 기간 성적으로 보면 역대 최고다.
한국 셔틀콕의 눈부신 중흥을 지휘했지만 파리올림픽 이후 '대한배드민턴협회 행정부실 사태'의 소용돌이 속에서 계약 만료 후 재임용을 받지 못했다. 이후 그의 이름 석 자는 배드민턴계에서 홀연히 자취를 감췄다.
그는 자취를 감춘 게 아니라 '아픔'을 '나눔'으로 이겨내며 '인생 2막'을 열어가고 있다. 불모지 베트남에 배드민턴을 보급하기 위해 '재능기부 전도사'로 변신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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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그를 '음지'에서 '양지'로 꺼내 준 구원의 손길이 있었다. 지난 4월쯤 베트남에서 배드민턴 용품(미라셀 스포츠) 사업을 하는 지인에게서 연락이 왔다. "그렇게 처박혀 있지만 말고, 바람이나 쐬고 가세요."
베트남 휴양지에서 머리나 식히고 오자는 생각에 무작정 호찌민으로 날아갔던 김 전 감독은 뜻밖의 제안을 받았다. 호찌민의 SIKS 국제학교(Starlight International kindergarten & School)에서 재능기부 봉사를 하면서 마음을 다스리면 어떻겠느냐는 것이었다.
휴식 차 방문한 김에 잠깐 봉사를 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다는 생각에 제안을 수락했다. 이는 새로운 깨우침, 인생 2막의 시작이었다. 김 전 감독은 전혀 생각지 못한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배드민턴 변방국 베트남에서 셔틀콕의 묘미를 체험할 기회가 없었기 때문일까. 김 전 감독의 가르침에 어린 학생들의 눈빛은 전에 없이 초롱초롱해졌다. 김 전 감독은 그 눈빛이 계속 눈에 밟혔다고 했다.
현역 은퇴 직후 대표팀 코치(2001년)로 시작해 주니어대표팀 감독, 소속팀(김천시청) 코치-감독, 대표팀 감독에 이르기까지 엘리트 무대에서 40여 년간 앞만 보고 달려왔던 그에게 봉사는 뒤를 돌아보게 하는, 다시 일어설 힘을 준 활력소였다. 학생들의 반응이 폭발적이자 학교 측에서도 김 전 감독을 설득하며 강력히 붙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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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SIKS 국제학교에 체육수업 배드민턴 강좌가 개설됐다. 초등 5~6학년, 중등 7~8학년을 대상으로 정규-방과후 수업을 통해 매일 1~2시간 배드민턴을 가르치는 과정이다. 김 전 감독은 "일종의 '시범사업'으로 시작한 1학기 수업이 오는 26일 끝나고 여름방학에 들어가면 잠깐 귀국할 예정이다"면서 "학교 측이 2학기부터 수업 시간을 더 확대할 계획이어서 다시 바빠질 것 같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무보수 재능기부지만 학생·학부모들이 환호하는 모습에서 오히려 내가 치유받는 느낌이다.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보상을 받는 셈"이라며 웃었다.
이번 재능기부를 발판으로 전문 아카데미로 발전시킬 구상도 하게 됐다는 김 전 감독은 '셔틀콕 쌀딩크'란 별명에 대해 "제가 감히 박항서 감독님과 비견될 수 있느냐"며 손사래를 쳤다.
최만식 기자 cms@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