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승투수의 마무리 전환, 어떻게 봐야 하나?

기사입력 2013-10-01 11:52



삐딱하게 볼 일만은 아니다. 봉중근처럼 팀과 개인 모두 웃을 수도 있는 일이다.

SK 에이스 김광현의 마무리 전환설을 두고 우려 섞인 시선이 많다. 올시즌 3년만에 10승을 거두며 화려하게 귀환한 김광현을 마무리로 돌리는 게 '모험'이라는 것이다. 단순히 10승을 잃는데 그치는 게 아니라, 이제 갓 어깨 부상을 털어낸 김광현에게 가혹한 보직변경이라는 것이다.

과연 김광현의 마무리 전환은 어떤 결과를 초래할까. 아직 확정이 아닌, '구상 단계'라고 하지만 충분히 고민해볼 만한 문제다. 이미 LG가 봉중근을 마무리로 돌려 가을야구에 대한 한을 풀었고, 확실한 마무리가 없는 KIA 같은 팀도 또다시 선발의 마무리 전환 카드를 만지작 거리고 있다.

선발에 익숙한 슬로스타터 김광현, 코칭스태프 시각은?

일단 투수에게 보직변경은 쉬운 일이 아니다. 비시즌 열심히 준비해도 실패하는 사례가 많다. 그동안 해온 패턴을 완전히 뒤집는 것이기에 선수 본인의 노력이 필요하다. 또한 노력 외에도 타고난 체질이 뒷받침돼야 한다. 괜히 '선발 체질', '불펜 체질'이란 말이 나오는 게 아니다. 선수 개개인에겐 그에게 적합한 보직이 있기 마련이다.

현장 코칭스태프가 보직전환을 고민할 땐, 대개는 신중한 검토 후에 나오는 게 맞다. 이번 사례는 코칭스태프가 구단이나 선수 본인과 상의하기 보다 다소 앞서간 경향이 있지만, 가까이서 보는 이들의 관점은 다를 수 있다. 김광현을 바로 옆에서 패턴을 관찰한 결과, 마무리 전환에 따른 불안요소가 크지 않다는 판단이 들었을 수 있다.

실제로 조웅천 불펜코치의 말에 따르면 김광현은 SK 투수들 중 몸이 가장 빨리 풀리는 스타일이다. 선발 등판 전에 적게는 18~20개 정도만 던지고도 마운드에 설 수 있는 수준이라고 한다.

경기 도중 수시로 몸을 풀어야 하고, 갑작스런 등판 상황에 적응해야 하는 게 구원투수다. 조 코치의 말로만 보면, 일단 몸을 풀고 등판할 준비하는 데는 큰 문제가 없는 상황이다. 마무리로서 최소한의 조건은 갖췄다고 보면 된다.


물론, 몸이 빨리 푸는 게 전부는 아니다. 김광현은 1회 고전하는 '슬로스타터' 기질이 있다. 실제로 올시즌 김광현은 1회 볼넷을 18개 내줬다. 총 68개의 볼넷 가운데 26.5%에 해당하는 수치다. 소위 말해 '영점'을 잡는데 시간이 다소 걸렸다고 볼 수 있다. 김광현 외에도 상당히 많은 선발투수들이 겪는 문제다.

이런 기질을 지적하면서 1이닝 정도를 소화하는 마무리에 적합하지 않다는 시선도 있다. 타이트한 상황에서 내주는 볼넷을 치명적일 수 있다. 제구 문제로 고전한다면, 마무리로서 합격점을 받을 수 없다.


경기 도중 선발 김광현의 교체를 위해 마운드에 올라온 SK 이만수 감독. 허상욱 기자 wook@sportschosun.com/2013.09.12/
주무기 갖춘 좌완 파이어볼러, 마무리로서 치명적인 매력 있다

그럼에도 김광현은 마무리투수로 매력적이다. 빠른 공을 던지는 왼손투수, 지옥에서도 데려온다는 좌완 파이어볼러다. 올시즌 선발로 평균 145㎞ 정도의 공을 던졌는데 만약 짧은 이닝에 집중한다면 구속은 더 올라갈 수 있다. 전성기 시절 보여준 150㎞에 육박하는 강속구를 재현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빠른 공은 마무리투수에게 가장 강력한 무기다. 삼성 오승환이나 넥센 손승락의 경우, 송곳 같은 제구력으로 승부하지 않는다. 스트라이크존 언저리로 강속구를 던질 수 있기에 정상급 클로저로 자리 잡았다. 제구력이 다소 무뎌도 빠른 공이 그 단점을 커버하고도 남는 것이다.

게다가 마무리에겐 많은 공이 필요하지 않다. 힘 있는 직구에 이를 뒷받침할 변화구 하나 정도면 된다. 오승환이 직구-슬라이더 투피치로 9회를 지배했음을 봐도 알 수 있다. 김광현에게도 리그 최정상급의 슬라이더가 있다. 빠르고 날카로운 슬라이더가 직구의 위력을 더 배가시켜줄 수 있다.

오히려 선발로 던질 때보다 편할 수 있다. 실제로 김광현은 데뷔 후 점차 다른 변화구 레퍼토리를 추가하려 애썼다. 하지만 무딘 변화구를 실전에서 통할 만큼 만드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김광현의 직구 위력을 반감시킨 이유기도 하다. 마무리라면, 다른 고민 없이 본인의 장점인 직구, 슬라이더로도 성공할 수 있다.

물론 김광현의 마무리 안착까지 산적한 과제는 많다. 선발로 던지면서 휴식과 등판일 사이에 확실한 루틴이 있던 그에게 새로운 도전이다. 마무리는 항시 불펜에 대기해야 한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급히 마운드에 올라야 할 때도 있다. 많게는 사흘 정도 연투해야 할 상황도 있다. 공을 던진 뒤 회복하는 데 시간이 많았던 선발과는 다르다.


3년 연속 10승을 올렸던 LG 봉중근은 마무리투수 변신에 성공하면서 팀과 개인 모두가 웃을 수 있었다. 팀은 11년만의 가을야구를, 봉중근은 선수로서 롱런할 기반을 다졌다. 조병관기자 rainmaker@sportschosun.com/2013.08.04/
LG 봉중근의 사례, 팀과 개인 모두 Win-Win 가능하다

김광현이 팀과 상의 끝에 이런 과제들을 하나씩 풀어간다면, 정상급 클로저가 탄생할 지도 모르는 일이다. 실제로 LG 봉중근이 이와 같은 변신에 성공한 사례가 있다.

봉중근은 2007년 LG 입단 후 이듬해부터 3년 연속 두자릿수 승리를 따내며 팀의 에이스 역할을 했다. LG의 암흑기 시절, 고독한 에이스였다. 하지만 LG는 이 기간 소방수 부재에 시달렸다. 확실한 마무리투수가 없으니, 봉중근이 아무리 잘 던져도 끝에 가서 경기를 망치는 경우가 있었다.

김재박 감독 시절부터 봉중근의 마무리 전환 가능성은 꾸준히 흘러 나왔다. 하지만 그때마다 여론의 역풍을 맞았다. 당장 10승이 검증된 에이스를 포기하냐는 것이다. 하지만 확실한 마무리는 팀에 필수조건과도 같다. 사령탑들이 고민할 만한 문제일 수밖에 없다.

2011년 팔꿈치 수술을 받은 봉중근은 지난해 마무리로 변신했다. 김기태 감독은 시즌 초반 강속구투수 리즈를 마무리로 돌렸다 실패를 인정하고, 재활등판중이던 봉중근을 자연스레 마무리로 적응시켰다. 재활 막바지 과정에서 1이닝씩 짧게 던져야 했던 봉중근은 마무리로 던지는 방법을 점차 터득해갔고, 26세이브를 올리며 정상급 클로저가 됐다. 올시즌에도 9월까지 37세이브를 올리며 손승락(44세이브)에 이어 세이브 2위를 달리고 있다.

과거 봉중근 역시 김광현과 마찬가지로 우려를 샀다. 전형적인 슬로스타터에 오히려 전성기에 비해 구위는 상당히 떨어져있는 상태였다. 하지만 스스로 불펜투수에 맞는 몸을 만들었다. 경기 도중 짧게 몸을 풀면서 마지막에 마운드에 오르기 적합한 상태를 찾았고, 연투가 가능한 체력을 만들었다. 오히려 선수로서 '롱런'할 길을 찾은 셈이 됐다.

봉중근의 마무리 전환은 LG가 11년만에 포스트시즌에 진출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지난해 김 감독의 결정이 '신의 한 수'였다고 볼 수도 있다. 김용수 이상훈 이후 제대로 된 마무리투수가 없었던 LG에게 큰 힘이 됐다. 외국인선수에 선발 유망주들을 키워내면서 선발진에 생긴 공백도 최소화했다.

아직 확정된 건 아니지만, 김광현 역시 봉중근에 이어 변신에 성공할 지 두고 볼 일이다. SK엔 외국인선수 2명에 윤희상 백인식까지 최소 4명의 선발투수가 있다. 한 자리만 채우면 된다. 과부하를 견디지 못한 박희수가 지난해 위력을 잃은 상황에서, 김광현이 마무리로 안착하면 팀엔 큰 힘이 된다. 김광현 본인에게도 봉중근처럼 선수생활의 '전환점'이 될 수도 있다.


이명노 기자 nirvana@sportschosun.com

Copyright (c) 스포츠조선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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