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감한 삼성과 망설이는 한화, 외인교체의 차이

최종수정 2016-05-19 12:49

삼성 라이온즈는 발빠르게 움직였고, 한화 이글스는 기다리기로 했다. 부진에 빠진 외국인 투수를 대하는 두 구단의 명백한 입장 차이는 순위 차이 만큼이나 벌어졌다.

왜 이러한 차이가 생기게 된 것일까. 삼성은 조금 더 기다릴 수 없었을까. 또는 한화는 더 빨리 결단을 내려야 하는 게 아닐까. 대단히 신속하게 시즌 1호 교체카드를 꺼내든 삼성의 결단에 놀라면서도, 한편으로는 한화의 기다림이 답답해보이기도 한다. 어쨌든 '경쟁력 강화'라는 측면에서는 삼성의 빠른 결단이 더 낫기 때문이다. 두 구단의 외국인 교체 프로세스가 다르게 진행된 이유를 알아봤다.

[포토] 벨레스터
5일 수원 케이티위즈파크에서 KBO리그 kt 위즈와 삼성 라이온즈의 경기가 열렸다. 삼성 선발 벨레스터가 1회 제구력 난조를 보이며 3실점 했다. 아쉬운 표정을 짓고 있는 벨레스터.
수원=송정헌 기자 songs@sportschosun.com/2016.04.05

명가 삼성의 빠른 결단

삼성은 지난 17일 포항 한화전을 앞두고 류중일 감독의 입을 통해 외국인 투수 벨레스터의 퇴출을 간접적으로 알렸다. 공식 보도자료를 낸 건 아니자만, 류 감독은 취재진과 만나 "아예 공도 못 잡는다는데 더 기다릴 수 없다"고 벨레스터를 퇴출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이 발언이 나온 뒤 딱 하루만에 삼성 구단이 결과물을 냈다. 멕시코 출신 아놀드 레온의 영입을 이날 오후 공식 발표했다. 계약 총액은 50만달러(계약금 5만달러, 연봉 45만달러)였다.

벨레스터의 퇴출은 사실상 이미 기정사실처럼 굳어져 있었다. 시범경기 때부터 신통치 않은 실력으로 류 감독의 마음을 무겁게 했던 벨레스터는 정규시즌 개막 후에는 더 처참한 민낯을 드러냈다. 3경기에 나와 모두 졌다. 단 1승도 거두지 못한 채 평균자책점은 8.03에 으로 치솟았다.

게다가 4월15일 두산전 패배(4⅔이닝 7안타 6실점 4자책) 이후 벨레스터는 팔꿈치 통증으로 인해 한 달 넘게 경기에 나오지 못했다. 가뜩이나 선수들의 줄부상으로 신음하던 류 감독에게 벨레스터는 '기대와 희망의 대상'이 아닌 '스트레스 유발자'였던 것. 결국 이것이 빠른 퇴출의 가장 큰 원인이다. 잘하든 못하든 로테이션이라도 꾸준히 이어갈 수 있아면 그걸로라도 위안을 삼을 텐데 벨레스터는 그러지 못했다. 공을 아예 던지지 못하는 외국인투수를 굳이 데리고 있을 필요는 없다. 게다가 삼성은 올시즌에도 상위권, 나아가 우승에도 도전할 수 있는 팀이다. 마냥 외국인 투수 슬롯을 비워놓을 순 없다.

그런 차원에서 보면 류 감독이 내부적으로 벨레스터의 퇴출을 일찍부터 결정하고, 스카우트팀을 풀가동한 것으로 생각해볼 수 있다. 아무리 삼성 구단의 외국인 스카우트들의 역량이 뛰어나다고 해도 기본적으로 소요되는 시간이 있다. 결국 이미 벨레스터가 부상으로 2군에 내려가는 시점에서 삼성 외인교체 프로세스는 작동한 셈이다. 그리고 신속 정확하게 결과물을 냈다.

[포토] 마에스트리
2016 프로야구 KBO리그 한화이글스와 LG트윈스의 경기가 15일 대전 한화생명이글스파크에서 열렸다. 한화 선발투수 마에스트리가 LG타선을 상대로 역투하고 있다.
대전=최문영 기자 deer@sportschosun.com /2016.04.15/

한화 '감독부재'의 여파


비슷한 입장에 놓여있지만, 한화는 삼성과는 조금 다른 과정에 있다. 시간이 갈수록 구위와 자신감이 저하된 알렉스 마에스트리를 일단 2군에 보낸 뒤 아예 선수가 스스로 일어나기를 기다리는 방법이다.

마에스트리는 한화가 시즌 개막에 임박해 급히 영입한 선수다. 그래서 연봉도 2000만엔(미화 약 18만달러)에 불과하다. 당초 한화의 계획은 마에스트리를 일단 써본 뒤 기대 이하의 실력이면 빠르게 교체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마에스트리가 처음에 꽤 괜찮은 모습을 보였다. 4월 한달간 5번의 선발 로테이션을 꾸준히 지키며 무려 2승(2패)을 따낸 것. 팀에서 가장 먼저 선발승과 함께 퀄리티스타트를 기록하기도 했다. 4월의 마에스트리는 몸값 이상의 성적을 낸 꽤 매력적인 외인 선발투수였다.

하지만 5월들어 흔한 말로 '폭망'했다. 3번의 등판에서 모두 3이닝 이전에 대량실점하며 강판되고 말았다. 4월 한달간 평균자책점은 5.48이었는데, 5월에는 무려 25.20으로 치솟았다. 다른 팀의 분석에 완전히 노출된 것인지 변화구들이 전혀 타자들에게 먹혀들지 않았다. 그러면서 자신감마저 바닥으로 떨어졌다. 투수 스스로가 타자와의 승부를 두려워하는 상태까지 됐다.

원래 계획이라면 이 시점에서 '교체카드'를 꺼내들어야 한다. 그러나 한화는 마에스트리를 2군으로 보내 몸과 마음을 추스르도록 배려했다. 지난 13일에 1군 엔트리에서 제외된 마에스트리는 이번주초부터 2군에 합류했다. 조심스레 퓨처스리그 등판을 한 뒤 1군에 돌아올 예정이다.

이런 결정의 가장 큰 배경. 역시 김성근 감독이 허리 디스크 수술로 자택 요양중이라서다. 외국인 교체에 관해서는 감독이 OK를 내야 한다. 그래야 미리 다져놓은 데이터 베이스를 근거로 영입 대상을 찾을 수 있다. 그리고 그 대상역시 감독의 OK 사인이 나야만 계약할 수 있다.

그러나 김 감독이 지금 이런 부분을 챙길 수 없다. 지금 팀을 이끌고 있는 김광수 감독대행에게 외인 선수 교체 결정에 관한 권한이 없다. 그래서 일단은 마에스트리에게 시간을 주기로 한 것이다. 게다가 벨레스터와는 달리 마에스트리는 아픈 상태는 아니다. 2군에서 자신감과 구위를 함께 회복한다면 다시 경쟁력을 찾을 수도 있다. 그래서 한화는 기다리기로 했다. 하지만 만약 김 감독이 현장에 있었다면 이야기는 달라질 수도 있었을 것이다. 결국 김 감독의 자택 요양 여파로 한화 외인 교체 프로세스는 일시 제동이 걸린 것이나 다름없다. 그 사이 한화는 계속 지고 있다.


포항=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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