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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조선 이원만 기자] "아드리안 모레혼의 구속이 빨라 김혜성이 상대하기 어려울 것 같았다."
LA 다저스는 지난 10일(이하 한국시각)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 펫코파크에서 홈팀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와 원정 3연전의 첫 경기를 치렀다. 이날 김혜성은 9번 중견수로 선발라인업에 이름을 올렸다. 최근 팀내에서 가장 뜨거운 타격감을 유지하고 있는 김혜성의 3연속 선발 출전경기였다.
비록 표본이 적긴 해도, 김혜성은 이날 경기 전까지 타율이 무려 0.414(58타수 24안타)에 달했다. 마침 샌디에이고의 선발은 우완투수 닉 피베타였기 때문에 김혜성의 선발 출전은 거의 예정된 수순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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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로버트 감독은 철저한 플래툰 시스템의 신봉자다. 그래서 김혜성이 빅리그 콜업 후 4할대 맹타를 휘두르고 있음에도 왼손투수와의 승부를 거르게 했다. 상대 선발이 왼손이면 아예 벤치에 대기시키거나 왼손 투수가 나왔을 때 대타로 바꾸는 식이다. 때문에 5회초 김혜성 타석 때 대타 투입 가능성이 있었다.
그러나 로버츠 감독은 움직이지 않았고, 김혜성이 마쓰이와 승부하게 놔뒀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김혜성은 실력으로 '왼손투수에게도 약하지 않다'는 걸 로버츠 감독에게 보여줬다. 로버츠 감독이 '김혜성 활용법'을 드디어 깨닫게 되는 듯 했다.
하지만 로버츠 감독의 고집은 전혀 바뀌지 않았다. 8회초에 논란의 장면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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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성은 입을 꽉 다물고 더그아웃으로 돌아갔다. 대기 타석에 있던 오타니 쇼헤이는 그런 김혜성의 엉덩이를 두드리며 위로해줬다. 보기 드문 장면이었다. 그리고 대타로 나온 에르난데스는 4구 만에 헛스윙 삼진으로 허무하게 물러났다. 로버츠 감독의 대타 작전은 실패했다.
이날 연장 끝에 8대7로 승리한 로버츠 감독은 8회 김혜성의 교체에 관해 "모레혼의 구속이 빨라서"라고 답했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정확한 답변이 될 순 없다. 두 가지 이유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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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어 김혜성의 대타로 나온 에르난데스에게는 4개의 공 중에 3개를 88~90마일의 변화구(슬라이더 1개, 체인지업 2개)로 던졌다. 빠른 공은 2구째 96.4마일(시속 약 155㎞)짜리 싱커 1개 뿐이었다.
이런 투구패턴은 다음 타자들에게도 비슷하게 이어졌다. 오타니와 5구 승부 중 빠른 공은 2개였다. 3개는 80마일 후반대 슬라이더를 던졌다. 게다가 빠른 공은 모두 스트라이크존에서 벗어났다. 무키 베츠를 고의4구로 내보낸 뒤 프레디 프리먼과는 6구 승부를 펼쳤는데, 변화구(슬라이더)와 빠른 공을 절반씩 섞어 던졌다. 빠른 공 3개 중 2개는 스트라이크 존 밖으로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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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츠 감독의 변명을 무력화시킬 수 있는 두 번째 이유는 바로 기록이 말하고 있다.
스탯캐스트에 나온 김혜성의 올 시즌 패스트볼 계열 상대 타율은 무려 0.414(29타수 12안타)다. 특히 이 중에서 95마일 이상의 패스트볼에 대한 타율 0.273(11타수 3안타)이었고, 97마일을 넘는 패스트볼에 대해서는 무려 5할(2타수 1안타)을 찍었다.
표본이 적긴 하지만, 일단 현재까지는 김혜성이 빅리그 투수들의 강속구도 제법 잘 쳐내고 있다는 뜻이다. 로버츠 감독이 괜한 우려를 하고 있었다는 게 수치로 입증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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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김혜성 교체 이유에 대한 로버츠 감독의 설명은 경기 내용과 부합하지도 않고, 통계수치와도 일치하지 않는다.
오히려 로버츠 감독 본인이 지독한 편견에 사로잡혀 선수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 고백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김혜성이 실력으로 로버츠 감독의 편견을 깨트리지 못한다면, 앞으로도 계속 희생양이 될 수 밖에 없을 듯 하다.
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