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현진의 표정'이 말하는 현실, 17년만에 나가본 '우물밖'은 더 거칠고 위험했다

기사입력 2026-03-14 12:16


'류현진의 표정'이 말하는 현실, 17년만에 나가본 '우물밖'은 더 거칠…
선발 류현진이 2회말 투구 때 위기를 맞자 김광삼 투구코치가 올라가 진정시키고 있다. AP연합뉴스

'류현진의 표정'이 말하는 현실, 17년만에 나가본 '우물밖'은 더 거칠…
도미니카공화국 오스틴 웰스가 7회말 경기를 끝내는 3점포를 터뜨리고 들어와 동료들의 환영을 받고 있다. AFP연합뉴스

[스포츠조선 노재형 기자]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한국 대표팀의 여정은 8강에서 멈춰섰다.

메이저리그 최고의 선수들로 구성된 도미니카공화국(DR)은 그 뒤를 볼 수 없는 거대한 암벽과도 같았다. 한국은 투타에 걸쳐 세계적인 수준의 실력을 확인하고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한국 선수들은 기본기, 집중력, 임기응변 등 경기에 필요한 모든 요소에서 최악의 수준으로 일관했다. 투수와 야수를 가릴 게 없었다.


'류현진의 표정'이 말하는 현실, 17년만에 나가본 '우물밖'은 더 거칠…
류현진이 2회 투구 도중 위기를 맞자 상기된 표정으로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다. AFP연합뉴스
류현진을 선발로 내보낸 건 아무래도 풍부한 메이저리그 경력을 지닌 만큼 큰 무대에서 안정적으로 경기를 끌고 갈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는 사이영상 2위 시절인 2019년의 류현진이 아니었다. 스피드와 제구 모두 '빈티지 류'와 거리가 멀었다. 40개 중 18개를 던진 직구 스피드는 최고 90.6마일, 평균 89.0마일이었다. 2019년 평균 스피드는 90.7마일이나 됐었다. 마지막 메이저리그 시즌인 2023년 그의 직구 평균 스피드는 88.7마일로 이미 유통기한이 마감된 상태였다.

실망스러운 결과도 아니다. DR 타자들이 류현진의 공에 내민 15번의 스윙 중 허공을 가른 건 2개 뿐이었다.

1회를 15개의 공으로 삼자범퇴로 막은 류현진은 2회 급격히 흔들렸다. 선두 거포 블라디미르 게레로 주니어를 볼넷으로 내보낸 뒤 3안타와 1볼넷을 추가적으로 허용하며 0-3으로 기울어진 상황에서 교체됐다.


'류현진의 표정'이 말하는 현실, 17년만에 나가본 '우물밖'은 더 거칠…
후안 소토가 3회말 블라디미르 게레로 주니어의 우중간 2루타 때 1루에서 홈까지 파고들어 포수 박동원의 태그를 재치있게 피하며 세이프되고 있다. AFP연합뉴스
야수들의 수비도 아쉬웠다. 2회말 1사 1루서 주니어 카미네로의 좌측 2루타 때 중계를 한 유격수 김주원으로 홈 송구가 옆으로 쏠리면서 무리하게 뛰어들던 게레로 주니어를 살려줬다.


3회말에는 포수 박동원의 태그가 아쉬웠다. 후안 소토의 중전안타 후 게레로 주니어가 우중간 2루타를 쳤다. 중견수 이정후의 송구를 받은 김주원이 홈으로 태그하기 좋게 정확하게 던졌다. 그러나 3루 슬라이딩을 한 소토가 박동원의 미트에 닿기 직전 왼손을 멈추더니 오른손으로 홈을 찍었다.

한국 타자들은 한 번도 상대한 적이 없는 DR 선발 크리스토퍼 산체스에 연신 삼진을 당했다. 그는 5이닝 동안 2안타와 1볼넷을 내주고 삼진 8개를 잡아냈다. 주무기인 싱커는 최고 96.9마일이었고, 공끝의 움직임이 현란했다. 한국은 산체스의 싱커에 24번 방망이를 내밀어 11번 헛스윙했다. 슬라이더와 체인지업에 7번 내민 배트도 모두 허공을 갈랐다.

이어 등판한 알버트 아브레이유도 최고 98마일 싱커를 앞세워 한국 타자들을 농락했다. 그의 싱커에 7번 휘두른 방망이는 3번이 헛스윙.


'류현진의 표정'이 말하는 현실, 17년만에 나가본 '우물밖'은 더 거칠…
도미니카공화국 선발 크리스토퍼 산체스는 현란하고 빠른 싱커를 앞세워 5이닝 동안 8명의 한국 타자들을 삼진으로 잡아냈다. Imagn Images연합뉴스
애초 DR과 싸운다는 건 '계란으로 바위치기'였다. 소토 한 명의 연봉이 한국 선수단 30명 전체를 합친 것보다 많다. DR 선발라인업 타자 9명은 작년에 모두 20개 이상의 홈런을 때린 거포들이다. 물론 선발 산체스가 NL 사이영상 투표에서 2위를 한 에이스라는 것도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잔뜩 주눅이 든 타격과 피칭, 수비는 어쩌면 당연해 보였다. 심지어 수 억달러의 몸값을 자랑하는 소토와 게레로 주니어, 페르난도 타티스 주니어 등 DR 선수들은 흥에 겨운 듯 허슬플레이를 즐겼다. 양 팀 더그아웃 풍경 자체가 대조적이었다.

한국은 C조 라운드에서 2승2패의 성적을 거두고도 '실점률'이라는 복잡한 장치 덕분에 8강에 진출했다. 일본은 그렇다 쳐도 대만에 패했다는 자체가 아시아에서의 경쟁력을 말해준다. 현대야구는 스피드가 생명이다. 빠른 공, 빠른 타구속도, 빠른 판단이 승부를 가른다.


'류현진의 표정'이 말하는 현실, 17년만에 나가본 '우물밖'은 더 거칠…
블라디미르 게레로 주니어. AFP연합뉴스
스탯캐스트에 따르면 조별 라운드 4경기에서 한국 타자들의 평균 타구속도는 89.5마일로 참가 20국 중 5위다. 하지만 이날 DR의 톱클래스 투수 두 명에게는 7이닝 동안 삼진을 11번이나 당했고, 11개 타구의 평균 스피드는 88.1마일에 불과했다. 가장 빠른 안현민의 4회 2루타 108.7마일을 빼면 86.0마일이다.

그래도 타자들은 상대적으로 발전적인 측면이 엿보인다. 하지만 투수들의 직구 스피드는 3년 전과 다를 바 없었다. 평균 91.3마일은 참가 20개팀 중 18위다. 그렇다고 제구가 좋은 것도 아니다. 한국 투수들은 5경기에서 22볼넷을 허용했다. 8강팀들 중 가장 많다.

2009년 2회 대회에서 준우승을 차지했던 한국은 이번에 모처럼 조별 라운드를 통과했지만, 17년 만에 나가 본 '우물 밖'은 더욱 거칠고 위험한 세상이었다.
노재형 기자 jhno@sportschosun.com

Copyright (c) 스포츠조선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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