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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조선 최만식 기자] "세상에서 받은 것, 조금이나마 돌려드려야지요."
김 고문이 변화무쌍한 인생역정으로 화제를 모으고 있다. '농구광'에서 홍보·대외협력 전문가로 변신하더니 이제는 어르신 봉사 활동가의 길을 걷고 있다. 그러잖아도 그는 과거 농구판에서 '남 좋은 일만 하는 사나이'로 유명했다.
청년 시절 청소년 보호 시민운동가로 활동하면서 '레드존(청소년보호법에 따라 청소년 출입을 금지하는 구역)' 창설을 주도했다. 과거 여수 코리아텐더(수원 KT의 전신) 사무국장으로 일할 때는 팀 해체 위기 속에 구단 운영비가 끊기자 개인 통장을 털어가며 그 유명한 '헝그리 4강 신화'를 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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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김 고문은 KGC(인삼공사) 본사 대외협력실 부장으로 인사 이동한 상태였는데, 직전 농구단 사무국장으로 재직하는 동안 선수단 전력 개편 등 이른바 '밥상'을 차려준 게 우승의 원동력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KGC 대외협력실장(상무)으로 현업 은퇴하기 전에는 인삼공사-대한적십자사 공동으로 '효(孝) 배달' 캠페인을 전개해 홀로 어르신들을 보살피기도 했다.
'나'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는 그의 '삶'은 직장 은퇴 후 여유롭기는 커녕, 시간 많아졌다고 더 바빠졌다. 김 고문은 아내와 함께 매주 화요일이면 캠핑카를 몰고 전국 각지의 경로당, 요양원 등 노인 복지시설을 찾아 나선다. 목요일 서울로 귀가하는 2박3일 동안 2곳을 반드시 방문하고 돌아온다. 1개월에 8곳을 찾는 셈이다.
김 고문이 평소 갈고닦은 실력으로 색소폰을 연주하며 어르신들께 즐거움을 선사한다. 연주 레퍼토리는 '안동역에서', '아모르파티' 등 어르신들이 가장 선호하는 트로트가 주를 이루지만 동요 연주와 함께 신청곡을 받기도 한다. 아내 임씨는 스피커, 반주기 설치 등 소박한 '공연무대' 세팅을 돕고 어르신들의 이·미용 서비스를 담당한다.
그렇게 지난 3월부터 한 주도 빠지지 않고 충남, 충북, 경기 남부, 경기 북부 등지로 지금까지 찾아다닌 마을의 노인시설이 38곳에 이른다. 유랑악단은 오는 12월까지 강원, 제주, 경남·북, 전남·북 등 광역시·도를 제외한 9개 권역을 모두 유랑하는 게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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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팬데믹'이 덮쳤을 때 1년 중단한 것을 제외하고 12년간 실시했던 음악 봉사가 120회에 달했다. 그랬던 김 고문은 지난 2023년 은퇴하기 2년여 전부터 '유랑악단'을 준비했다. "이왕 하는 거 제대로 해보자"라는 다짐에 중식·양식 조리기능사는 물론 운전 대형면허와 견인면허, 드론 조종 자격증을 땄다. 아내는 미용사 자격증과 함께 실버인지놀이지도사 1급과 동화구연 아카데미 과정을 밟았다.
스스로 준비 했지만, 시작은 순탄하지 않았다. 캠핑카를 마련하는 것만으로도 만만치 않아서 기업체 등 40여곳에 후원을 문의했지만 아무런 답변을 받지 못했다. 노인시설에 방문 봉사 의사를 타진하면 '장사꾼'으로 오해한 듯 냉랭한 응대를 받기도 했다. 그렇다고 2년 넘게 준비하며 다져온 '초심'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결국 자비를 들여가며 '유랑악단' 캠핑카에 시동을 걸었다.
주변으로부터 "은퇴 후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지. 내돈 써가며 왜 그런 고생을 하느냐"는 질문도 자주 받는다. 그럴 때마다 김 고문은 "내가 세상에서 받은 것 조금이라도 돌려드리려는 생각"이라고 말한다. 그는 "12년간 어르신 상대로 봉사를 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그런 마음이 생겼다"면서 "자식 얼굴 보기도 힘든 요즘 세상, '정'이 그리운 어르신들 아닌가. 공연을 마친 뒤 일일이 손을 잡아 드리며 인사를 전하는데 '고맙다', '이런 연주 처음 들었다'며 좋아하는 모습을 보는 게 좋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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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고문은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이 늘 앞선다고도 했다. 업무 특성상 휴일 반납은 일상이었고, 출장도 잦았다. 남편 얼굴 보기 힘든 결혼생활을 한 임씨는 김 고문이 은퇴하면 둘이서 오순도순 전국 일주 여행을 하는 게 소원이었다. 여기에 김 고문은 슬쩍 '숟가락'을 얹었다. "팔도 유람 가는 길에 음악봉사도 하면 더 좋겠지?" 결국 여행은 맞는데, 왠지 고행길의 광야로 꾀어낸 셈이 됐다.
그래도 부창부수다. 말이 캠핑카지 추위·더위와 싸워가며 노숙이나 다름없는 유랑이지만 김 고문과 아내 임씨는 "행복하다"고 입을 모은다.
김 고문은 "좁은 캠핑카 안에서 피로에 지쳐 잠든 아내를 볼 때마다 울컥한다. 그럼에도 '내가 좋아서 하는 건데'라며 믿고 따라 준 아내가 가장 큰 힘이 된다"라고 했다.
임씨는 "휠체어를 탄 어르신을 만난 적이 있었는데, 그분이 '시설 입소 5년 동안 오늘처럼 즐거운 날이 없었다. 너무 행복하다'고 말씀해 주신 걸 잊을 수 없다. 그런 보람으로 남편 따라 떠돌이 생활을 한다"라며 웃었다.
최만식 기자 cms@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