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조지영 기자] '좀비의 왕' 연상호 감독이 한층 정교해진 세계관으로 돌아왔다.
지난 2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촌동 CGV 용산아이파크몰에서 좀비 액션 영화 '군체'(연상호 감독, 와우포인트·스마일게이트 제작) 언론·배급 시사회가 열렸다. 이날 시사회는 지난 15일(현지 시각) 열린 제79회 칸국제영화제 미드나잇 스크리닝 월드 프리미어 상영 이후 국내에서 최초로 공개되는 자리로 일찍이 뜨거운 관심을 모았다. 이미 칸영화제를 통해 "좀비에게 새로운 신체적 문법을 도입했다" "잘 짜인 설정, 때로는 비디오게임 세계를 연상시킨다" "처음부터 끝까지 쉴 틈 없는 스릴의 향연, 대단한 장르적 쾌감" 등 호평을 얻은 '군체'는 칸의 여운을 그대로 이어받아 국내 스크린에 등판, 이제 한국 관객을 사로잡을 준비를 마쳤다.
'군체'의 이야기는 이렇다. 정체불명의 감염 사태로 봉쇄된 건물 안, 고립된 생존자들이 예측할 수 없는 형태로 진화하는 감염자들에 맞서 벌이는 사투를 그린 작품이다. 악의 축 서영철(구교환)의 뒤틀린 신념으로 시작된 이 좀비 재난 극은 예측할 수 없는 반전의 반전을 더하며 122분을 밀도 있게 채웠다.
2016년 개봉한 '부산행'과 2020년 개봉한 '반도' 등 한국 좀비 영화의 바이블이 된 K-좀비버스터 장인 연상호 감독은 이번 '군체'에서 생물학적 진화에 집중했다. 기존의 맹목적인 식인 좀비 감염자들과 달리, '군체'의 감염자들은 학습을 통해 정보를 습득하고 이를 실시간으로 공유하는 '집단지성'을 발휘한다. 네발로 기어다니던 좀비들이 두 발로 직립 보행하며 하나의 기형적인 사회를 이루는 모습은 시각적 충격을 넘어 섬뜩한 공포를 안긴다.
'군체'의 제3의 주인공들인 좀비 감염자들의 움직임과 비주얼도 전작에 비해 완전히 진화했다. 사람의 관절이 맞는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온몸을 뒤트는 것은 물론 끈적한 점액질로 범벅이 돼 서로 뭉쳐있는 비주얼부터가 압도적이다. 깨끗하고 쾌적했던 대형 쇼핑몰이 감염자들이 내뿜은 점액질로 뒤덮여 초토화가 된 공간마저 스산함을 자아낸다. 여기에 정보를 공유할 때 보이는 감염자들의 특정 포즈까지 기괴한 모습으로 긴장감을 극한으로 끌어모은다. '부산행' 반도'의 좀비 감염자들과 차원이 다른 업그레이드다.
이러한 기형적인 좀비 감염자들의 생태계와 서사에 부스터를 달아주는 것은 연상호 감독 특유의 속도감 있는 연출이다. 관객에게 숨 고를 틈조차 허용하지 않고 오직 파국을 향해 전속력으로 폭주하는 전개는, 역동적인 좀비 시퀀스들과 완벽한 시너지를 이루며 러닝타임 내내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하게 한다. 기존의 좀비 공식을 비틀고 또 비틀어 전혀 다른 방식으로 풀어낸 연상호 감독의 '군체'는 새로운 종의 신기원 그 자체다.
연니버스의 새로운 뮤즈가 전지현도 기존의 모습과 전혀 다른 새로운 얼굴로 신선함을 안긴다. 좀비 군체의 행동과 진화 패턴을 읽고 생존자들을 이끄는 생존자 그룹의 리더 권세정을 연기한 전지현은 백신이라 믿는 서영철을 둘러싼 여러 인간 군상 속에서 냉철한 이성과 정의로운 신념으로 '군체'의 중심을 잡는다. 가공되지 않은 날것의 인간적 고뇌를 현실적으로 풀어낸 전지현은 피가 튀고 얼굴에 상처가 내려앉아도 '역시 전지현'임을 완벽히 보여준다. 원조 '액션 여제'다운 시원시원한 피지컬 액션과 처절한 사투 속에서도 빛나는 스크린 장악력은 역시 전지현이라는 찬사를 끌어내기 충분하다.
후진 없는 스트레이트 빌런 구교환도 폼 오른 광기의 열연으로 '군체' 속 존재감을 드러냈다. 영화의 오프닝부터 잘못된 신념으로 폭주를 시작하는 서영철 역의 구교환은 브레이크 고장 난 악인으로서 '군체'를 멱살 잡고 이끈다. 눈이 가려지고 손이 묶인 극한의 신체적 제약 속에서도 구교환은 특유의 서늘한 마스크와 존재감만으로 화면의 공기를 단숨에 지배하며 '광기의 빌런'으로서 대체 불가능한 아우라를 뿜어낸다. 악의 끝을 보인 구교환은 악의 축을 넘어 악의 꽃으로 '교환 불가'한 매력을 선사한다.
'군체'에서 가장 신선한 궤적을 그린 지창욱도 눈길을 끈다. 하반신 장애를 가진 누나 최현희(김신록)와 함께 고립되는 보안팀 직원 최현석을 연기한 지창욱은 평범하고 선한 인물로 출발해 어떤 극적인 사건을 계기로 악인으로 변주하는 인물의 심리 변화를 정교하게 묘사했다. 기존 상업 영화에서 쉽게 볼 수 없었던 이 충격적인 변주는 극의 몰입도를 반전시키는 훌륭한 기폭제가 된다. 신체적 한계 속에서도 밀도 높은 감정 연기를 펼친 김신록과 고립된 빌딩 밖에서 감염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공설희 역의 신현빈도 '군체' 전반의 균형을 맞춘다.
이렇듯 '군체'는 연상호 감독의 장르적 세계관에 한계가 없음을 다시 한번 증명해 낸 이정표 같은 작품이다. 스크린을 압도하는 비주얼과 배우들의 열연, 그리고 숨 막히는 장르적 쾌감이 선사하는 '오락적 재미' 하나만으로도 극장에서 관람할 가치가 있는 웰메이드 좀비물인 것. 장르 영화가 줄 수 있는 시각적·감각적 유희를 극대화한, 꺼지지 않는 연상호 감독의 연니버스가 생기를 찾은 극장가에 제대로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모된다.
'군체' 전지현, 구교환, 지창욱, 신현빈, 김신록, 그리고 고수가 출연했고 '부산행' '반도' '얼굴'의 연상호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21일 개봉한다.
조지영 기자 soulhn1220@sportschosu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