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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명보 감독,절절한 추모사 "유상철,코뼈 부러진채 헤딩골 넣던 대단한 내후배"

전영지 기자

기사입력 2021-06-08 07:00




"컨페더레이션스컵에서 코뼈가 부러진 채 헤딩골을 넣던 기억이 제일 많이 난다. '후배지만 대단하다 진짜!'라고 생각했다. "

홍명보 울산 현대 감독의 기억에 가장 또렷하게 남은 후배 '유비' 고 유상철 감독의 모습은 어떤 순간에도 결코 포기하지 않는 한국 축구의 정신을 온몸으로 보여주는 '투사'였다.

1994년 히로시마아시안게임 한일전 동점골, 1998년 프랑스월드컵 벨기에전 동점골 등 유상철은 모두가 '이제 끝났다' 낙담할 때 보란 듯이 기적을 써내려간 선수였다. 특히 2001년 컨페더레이션스컵 첫 경기 프랑스에 0대5로 완패하고 '히딩크 경질론'이 파다하던 멕시코전에서 코뼈가 부러진 채 필사적인 헤딩골로 2대1 승리를 이끌던 장면은 한국 축구사에 잊지 못할 명장면이다. 2002년 한일월드컵 4강 신화는 이 지점에서 시작됐다.


2001년 컨페더레이션스컵 멕시코전 결승골
홍 감독은 7일 저녁, 울산 전지훈련을 위해 거제에 도착해 여장을 풀던 중 가장 먼저 유 감독의 부음을 접했다. "팀2002 멤버들이 매년 연말 모였지만 작년엔 코로나19로 인해 모이지 못했다. 개인적으론 작년 대표팀 A매치 때 운동장에서 본 게 마지막"이라고 떠올렸다. "그때만 해도 건강하게 다닐 때였다. 최근에 좀 안좋아졌다는 사실을 병원을 통해 조금은 알고 있었지만… 이제 오십인데, 앞으로 함께 해야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라며 갑작스러운 부음에 황망함을 감추지 못했다.

홍 감독은 1998년 프랑스월드컵,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 유상철 감독과 함께 했고, 일본 가시와 레이솔에서도 황선홍 감독과 함께 코리안 삼총사로 한솥밥을 먹었다. 유상철은 어떤 축구인이었느냐는 질문에 홍 감독은 한치의 망설임 없이 답했다. "대한민국 축구선수로서 아주 강한 신체와 강한 정신력을 갖춘, 모든 지도자들이 좋아할 만한 선수였다."



가장 기억에 남는 모습은 "2001년 컨페더레이션스컵에서 코뼈가 부러진 채 헤딩 결승골을 넣던 장면"이다. "후배지만 진짜 대단하다, 대단한 선수라고 느꼈다"고 돌아봤다. "우리 둘다 내성적인 스타일이라 말도 별로 없고 살갑게 이야기를 나누고 그러진 않았지만 마음으로 통하는 게 있었다"며 후배 유상철과의 나날을 추억했다.

일본 J리그에서 서로를 의지하며 지냈던 추억도 털어놨다. "상철이가 우리 중 마지막으로 가시와 레이솔로 오면서 가시와가 큰 목표를 세웠는데 중요한 경기에서 퇴장을 받고 4경기를 못뛰게 됐던 기억도 난다. 외국인선수니까, 우리끼리 위로하고 더 잘해보자 했었다. 상철이는 이후 요코하마 마리노스에서 정말 좋은 활약을 펼쳤고, '레전드'란 수식어가 충분할 만큼, 훌륭한 능력을 보여줬다"고 했다.

유 감독은 전남, 대전, 인천 등 프로구단은 물론, 울산 레전드답게 2014~2017년 울산대 사령탑으로 일하며 재능 있는 후배들의 성장을 이끄는 일에도 열정을 다했다. '슛돌이' 이강인의 재능을 한눈에 알아봤듯이 '울산 유스' 설영우의 멀티플레이 능력을 발견, 윙어에서 윙백으로 보직 변경을 이끈 일화로도 잘 알려져 있다. 홍 감독은 "유 감독은 대학축구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기 때문에 한국 축구의 현실과 현장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는 지도자였다. 한국 축구에 대한 사명감도 남달랐다"고 평가했다.



권오갑 총재와 유상철 연합뉴스

연합뉴스

한국 축구가 힘들 때마다 불사조처럼 살아나 한국 축구의 힘을 보여줬던 유상철. 그렇게 강한 사람이라서 반드시 이겨낼 것이라 믿었다는 말에 홍 감독 역시 "우리도 모두 그랬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상철이가 투병중일 때 2002년 멤버들끼리 모임도 했는데 어느 순간 보니 정말 건강해졌더라. 몸이 나아지자마자 현장에 복귀하겠다는 의지도 강했다"고 했다. 울산에서 9시즌을 뛰며 142경기 37골 6도움, 2번의 리그 우승컵을 들어올린 유 감독은 울산을 향한 '수구초심'도 가슴에 품고 있었다. 홍 감독은 "내가 울산에 오게 됐을 때, 상철이가 '울산을 위해 조금이라도 도울 수 있는 일이 있다면 하겠다'고 제안한 기억이 난다. 나는 '알았다. 일단 지금은 몸이 최우선이니 건강 잘 챙기자'고 했었다"고 돌아봤다. 현실이 됐다면 참 좋았을 두 레전드의 약속은 끝내 지켜지지 못했다.

홍 감독은 유 감독을 향한 절절한 추모사, 가족들을 향한 심심한 위로를 전했다. "이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을 만큼 안타까움이 클 것이다. 유 감독의 아이들이 부디 '아버지가 대한민국 축구를 위해 아주 훌륭한 일을 해낸 사람'이란 걸 꼭 기억했으면 좋겠다. 상철아, 그동안 고통도 심했고, 항암치료도 정말 힘들었을 텐데, 이젠 편히 쉬면서 하늘나라에서 우리 한국축구 잘될 수 있도록 지켜봐줬으면 좋겠다."

홍 감독은 8일 19년 전 함께 월드컵 4강 신화를 썼던 '팀2002' 동료들과 함께 서울 아산병원 빈소를 찾을 예정이다. 한일월드컵 4강, 대한민국을 붉은 함성을 물들였던 그 뜨거웠던 6월에 우리가 사랑해마지 않았던 불사조, 6번 '유비'가 하늘로 떠났다.
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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