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박찬준 기자]트리니다드토바고전 최대 수확은 역시 '깜짝 발탁' 이기혁(강원)의 맹활약이다.
홍명보 감독이 이끄는 대한민국 축구 대표팀은 31일 오전 10시(이하 한국시각) 미국 유타주 솔트레이크시티 브리검영대 사우스필드에서 열린 트리니다드토바고와의 친선경기에서 손흥민(LA FC) 조규성(미트윌란) 황희찬(울버햄턴)의 연속골을 앞세워 5대0으로 이겼다. 비록 상대가 약하긴 했지만, 고지대에 적응하고 분위기를 올렸다는 점에서 의미있는 승리였다. 손흥민이 골침묵에서 벗어났다는 점도 호재였다.
또 하나 얻은 것은 이기혁의 존재감이었다. 이기혁은 이날 스리백의 왼쪽 스토퍼로 선발 출전했다. 경기 전날 홍 감독은 일찌감치 이기혁의 출전을 예고했다. 홍 감독은 "이기혁은 중앙 수비수 쪽으로 한번 스타트(선발 투입) 할 생각이다. 현재 좋은 컨디션을 유지하고 있다. 물론 몇 가지 좀 고쳐야 될 부분도 좀 있다. 그런 부분들을 계속 선수한테 이야기해주고 있다. 일단은 중앙 수비수로 먼저 스타트 할 생각"이라고 했다.
조유민(샤르자) 이한범(미트윌란)과 함께 호흡을 맞춘 이기혁은 강원에서 보여준 활약을 대표팀에서도 이어갔다. 이기혁의 가세로 홍명보호의 스리백은 확 달라졌다. 홍 감독의 스리백이 높은 점수를 받지 못한 이유는 경직성에 있었다. 홍 감독은 사실상 형태를 고정시킨 스리백을 주로 구사했다.
하지만 이날 홍명보호는 포백을 오가는 유연한 모습을 보였다. 중심에 이기혁이 있었다. 이기혁은 빌드업 시 왼쪽 측면으로 넓게 벌리며 포백 형태를 만들었다. 사실상 풀백에 가깝게 섰다. 이로 인해 왼쪽 윙백에 자리한 옌스 카스트로프(묀헨글라트바흐)는 윙어처럼 높은 위치로 올라설 수 있었다. 비록 카스트로프가 분데스리가에서 보여준 공격력을 펼치지는 못했지만, 박스 안쪽을 파고들고 배준호가 빈 측면을 메우는 형태 자체는 상대를 괴롭히기에 충분했다. 특히 카스트로프의 위치가 올라가자 전방 압박은 큰 위력을 발휘했다.
이기혁은 빌드업의 핵심 축이었다. 이기혁은 왼쪽에서 정확한 킥을 바탕으로 안정되게 경기를 풀어갔다. 필요하면 직접 중원까지 올라갔다. 소위 말하는 인버티드 형태로 움직이며 중원 숫자를 늘렸다. 3-4-2-1 포메이션에서는 중앙에 두 명의 미드필더 밖에 없는데, 이기혁이 그 약점을 메웠다. 배준호, 카스트로프에 이기혁까지 가세한 왼쪽은 한국의 주 공격 루트였다.
왼쪽에서 볼이 잘 돌자 반대에 공간이 났고, 이기혁은 이때마다 정교한 롱패스로 기회를 만들어냈다. K리그 최고라 불린 이기혁의 롱패스는 국제 레벨에서도 통했다. 서너 차례의 환상적인 패스로 흐름을 바꿨다. 이기혁은 이날 95% 패스 성공률을 기록했다. 롱패스 성공률도 70%에 달했다. 수비 시에도 흔들림 없는 모습을 보였다. 상대 공격이 다소 아쉬웠지만, 이렇다할 약점을 보이지 않았다. 이기혁은 오랜만의 A매치를 풀타임으로 마무리했다.
이기혁은 만점 플레이로 스리백 주전 구도를 흔들었다. 왼쪽 스토퍼 경쟁에서 김태현(가시마)이 한발 앞서는 모습이었지만, 이기혁이 도전장을 던졌다. 홍 감독도 생각을 바꿀만큼의 맹활약이었다.
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