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바람이 부드럽다. 훌쩍 바람 쐬러 나서기 좋은 무렵. 어디를 찾아야 흡족한 봄나들이가 될까. 꽃구경도 좋다지만 미각으로 만나는 봄기운이 더 실감난다. 요즘 충남 서해안을 찾으면 기대한 만큼의 봄미각에 흠뻑 젖어들 수가 있다.
글·사진 김형우 관광전문 기자 hwkim@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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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충남 태안반도를 찾으면 기대한 만큼의 봄기운에 흠뻑 젖어들 수가 있다. 올망졸망 해수욕장과 송림, 사구를 품고 굽이치는 태안반도는 하나의 거대한 산소탱크에 다름없다. 바닷가 솔 숲길에 나서면 부드럽고 시원한 갯바람이 몸과 마음의 묵은 때까지 다 씻어주는 듯 하다. 이처럼 상큼한 태안의 봄맞이 테마 중 빼놓을 수 없는 게 있다. 바로 '실치회'다. 부드러운 실치회 한 젓가락과 구수한 실치국 한 그릇이면 서해의 봄미각을 통째로 맛보는 듯하다.
갯내음이 듬뿍 담긴 실치는 말 그대로 실처럼 가늘고 작은 물고기이다. 봄철 실치는 길이가 2~3cm 남짓, 혀에 닿자마자 특별한 질감 없이 그냥 스르르 녹아내린다. 실치는 이처럼 크기는 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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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혹독한 겨울 추위 탓에 예년에 비해 조업이 4~5일 가량 늦어졌다.
실치회는 두어 달 동안 맛볼 수 있지만 요즘부터 4월중에 잡히는 것이라야 횟감으로 적당하다. 3월말 처음 것은 육질이 아주 연하다. 반면 5월 하순 이후에는 뼈가 굵고 억세져 뱅어포감으로 쓴다. 마검포항 횟집에서는 올해의 경우 4월 첫째, 둘째 주가 맛이 가장 좋은 때라고 귀띔해준다.
흔히 실치회는 야채와 실치를 양념고추장에 비벼 무침으로 즐긴다. 오이, 깻잎, 쑥갓, 양배추, 당근 등 야채, 그리고 갖은 양념을 섞어 만든 초고추장을 실치와 한데 버무린다.
부드러운 실치와 아삭한 야채의 질감, 매콤새콤한 초고추장이 어우러져 입맛 돋우는 별미가 된다. 특히 배를 채 썰어 올린 고명은 시원함을 더하고, 국수사리를 곁들이면 훌륭한 식사대용이 된다.
그러나 실치 본연의 맛을 느끼고자 한다면 다른 소스 곁들이지 말고 먼저 한 젓가락 오물거려 볼 것을 권한다. 특유의 은은한 갯내음과 부드럽고도 독특한 질감이 과연 그 맛을 실감케 한다.
실치요리의 또 다른 진수는 '실치 시금치국'이다. 국물 맛이 시원한 게 뒷맛이 깔끔하다. 국속의 실치도 마치 게살이나 생선살을 곱게 갈아놓은 듯 부드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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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실치가 나는 태안반도는 쾌적한 봄나들이 코스로 그만이다. 한적한 태안반도 포구에 깃들어 있자면 마음이 한없이 평화롭고 넉넉해짐을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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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산 '우럭젓국'
갯벌이 잘 발달된 서해안 천수만 일원은 대한민국 최고의 어장으로 꼽힌다. 따라서 사철 다양한 미식거리가 풍성하다. 이맘때부터는 우럭이 좋다. 서산 사람들은 살이 통통하게 오른 봄우럭을 햇살에 꾸들꾸들하게 말렸다가 토막 내 끓인 우럭젓국을 즐겨 먹는다. 시원 칼칼한 국물맛에 적당히 간이 밴 부드러운 우럭 육질이 혀에 감기는 듯 풍미가 있다.
봄은 우럭이 살찌는 시절로 3월부터 보리가 누릇누릇 익어가는 오뉴월 즈음까지가 맛이 가장 좋다. 그중에서도 서산-태안 등 천수만의 것을 알아준다. 이 지역 바닷속은 모래와 뻘로 돼 있는 데다 조수간만의 차가 커서 살이 유독 탄력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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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럭젓국을 끓이기 위해서는 우선 우럭을 잘 말려야 한다. 우럭은 큼직한 데다 살이 통통하게 올라 반으로 갈라서 말린다. 가른 우럭을 소금에 절였다가 씻어서 물기를 뺀 후, 바람이 잘 통하는 곳에서 사흘 정도 꾸덕 하게 말린다. 대체로 살짝 말린 생선은 발효가 진행되는 과정에 그 맛이 더해진다. 따라서 마른 우럭으로 끓여낸 국물 맛은 북엇국 이상으로 시원하고 감칠맛이 있다. 특히 우럭은 북어보다 살이 많고 부드러워 해장은 물론, 식사, 술안주로도 좋다.
우럭젓국은 쌀뜨물에 소금 간이 밴 우럭 토막을 넣고, 볶은 무, 새우젓, 파, 양파, 매운고추, 마늘다짐, 두부 등을 함께 넣어 맛깔스럽게 끓여낸다. 우럭젓국은 우선 쌀뜨물이 주는 토속미가 구미를 당긴다. 자칫 텁텁할 수도 있을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가 않다.
우럭찜도 맛있다. 별다른 양념 없이 말린 우럭을 그냥 쪄내는데도 말린 생선 특유의 미각이 곁들여지니 짭짤 쫄깃한 식감에 이만한 밥반찬이 또없다.
서산지역에서는 삼길포항 등 여러 포구에서 우럭젓국 집을 만날 수 있다. 특히 삼길포항 선상횟집촌에서는 싱싱한 해산물로 봄미각을 즐길 수 있어 인기다. 바다 위에 30여 척의 배를 정박시키고 배 위에서 즉석 활어회를 떠서 판다. 봄이면 광어, 놀래미, 도다리, 우럭 등 싱싱한 횟감을 값싸게 만날 수 있으니 발품이 아깝지 않다. 우럭젓국 4만 원 선(2~3인 기준).
서산지역에도 연계관광지가 쏠쏠하다. 가벼운 봄산행을 겸한 여행지로는 백제 고찰 개심사가 괜찮다. 고적미를 갖춘 곳으로 호젓한 산사기행에 제격이다. 낙락장송이 어우러져 있는 진입로와 돌계단을 지나며 절집 이름처럼 마음의 때를 다 씻어내는 느낌도 받는다. 심검당의 휘어진 나무를 그대로 살린 기둥이 시원한 파격미를 안겨 준다. 서산 간월암의 낙조도 볼만하다.
▶서천 주꾸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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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꾸미가 봄 별미로 통하는 것은 생장습성 때문이다. 주꾸미는 본래 춥고 밝은 것을 싫어한다. 따라서 한겨울에는 바다 밑에서 지내다가 봄볕이 따뜻해지면 연안으로 올라와 산란을 한다. 3월 산란을 앞둔 주꾸미는 살이 통통하고 육질이 쫄깃한 데다 알이 꽉 차있어서 더 고소하다. 그 알 모양이 마치 잘 익은 밥알을 닮아 산지 어민들은 이를 '주꾸미 쌀밥', 일본에서는 찐 밥과 같다고 해서 '반초'라고도 부른다.
주꾸미는 산란기 때 더 맛있다. 산란기에 필요한 필수아미노산과 불포화 지방산은 물론 다량의 무기질이 생성되어서 주꾸미 특유의 풍미를 맛볼 수가 있다. 주꾸미를 '바다의 봄나물'이라 부르는 것도 이 때문이다. 특히 주꾸미는 원기회복에 좋은 타우린이 낙지의 2배, 문어의 4배, 오징어의 5배나 들어 있어서 피로해소에 좋은 별식이다.
주꾸미는 정약전의 자산어보에도 등장할만큼 꽤 내력 있는 생선이다. 정약전은 책에 주꾸미를 '죽금어(竹今魚)'로 적고 있다.
한편 주꾸미와 궁합이 잘 맞는 식재료로는 돼지고기를 꼽을 수 있다. 돼지고기는 지방과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다. 반면 주꾸미는 체내 콜레스테롤 수치를 내려주는 타우린을 많이 함유하고 있어서 돼지고기의 단점을 보완해 준다.
주꾸미는 주로 오이, 양파, 당근, 미나리 등 싱싱한 야채와 함께 매콤새콤 무쳐 먹거나 데침으로도 맛보게 된다. 산지 포구에서는 산 채로 요리하는 전골과 샤브샤브가 인기다. 뱃사람들은 참기름이나 초장에 찍어먹는 산주꾸미를 최고로 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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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주꾸미의 고장 충남 서천에는 연계관광코스가 다양하다. 영화 'JSA' 촬영지 신성리 갈대밭, 한산모시 전수관, 마량리 동백숲 등이 대표적이다. 이맘때면 천연기념물 제169호로 지정된 500년 수령의 동백나무숲이 압권이다. 마량동백은 세찬 겨울 풍파를 견디며 3월부터 4월까지 유난히 붉은 꽃을 피운다. 숲 정상에는 동백정이 세워져 있는데, 일대의 전망 포인트 격으로 낙조가 일품이다. 동백정에서 바라보는 서해바다와 오력도, 그 앞을 오가는 주꾸미잡이배가 어우러져 한 폭의 수채화를 그려낸다. 특히 마량포구는 일출 감상도 가능해 해돋이와 해넘이를 함께 볼 수 있는 드문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