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에서 현재 폭발적 인기를 끌고 있는 모바일 경마 게임이 있다. 실제 경주마들을 모델로 해서 그들의 부상경력이나 성적, 상대전적 등을 그대로 가져와 캐릭터에 서사를 부여했다. 현실 경마를 모바일 속에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친숙한 모습에 우리나라에서도 게임의 영상만을 즐기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고 한다. 만약 한국에서 이런 게임이 만들어진다면 어떤 경주마들이 출연할까? 다양한 이야기를 가져 경마팬들이 사랑한 암말 경주마들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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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속도'의 연승행진이 깨진 것은 1991년 10월 '한국마사회장배'였다. 이 때 경마팬들은 가속도에 대해 암말의 한계 등 혹평을 가했다. 그러나 가속도는 두 달 후 '그랑프리'에서 진가를 보여준다. 주무기인 순발력을 앞세워 선행경쟁을 압도한 후 여유 있게 결승선을 통과했다. 준우승마와의 차이는 9마신. '어나더클래스'를 보여준 가속도는 '그랑프리' 경주를 마지막으로 은퇴했다. 최고의 경주마들이 모이는 '그랑프리'에서 59㎏이라는 높은 부담중량으로도 압도적인 승리를 거뒀으니 그야말로 적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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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루나는 마지막 은퇴경주까지 '레전드'였다. 그녀는 8세 고령의 몸, 57㎏이라는 가장 무거운 부담중량으로 3세 강자들과 맞서야 했다. 경주 초반 후미권에서 달리다 마지막 직선주로에서 폭발적 뒷심을 발휘, 선두를 0.1초차로 따돌리고 짜릿한 역전우승을 차지했다. 주어진 조건을 극복하기 위해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달리는 루나의 모습은 그 자체로 많은 경마팬들에게 감동과 용기를 주었다. 2020년에는 경주마 이름을 딴 최초의 대상경주인 루나스테이크스로 부활하여 후배 암말들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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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등만 기억하는 세상에서 꼴찌는 '조연'일지 모른다. 그렇지만 세상에는 1등보다 더 아름다운 꼴찌도 존재하는 법. 태생적으로 체구와 폐활량이 작았던 '차밍걸'은 혈통도 그리 좋지 않아 경주마로서는 크게 기대를 받지 못했다. 성적도 101전 101패, 가장 좋은 성적은 8번의 '3등'. 그러나 '차밍걸'은 2008년 데뷔 후 월 2회 꼴로 성실하게 경주에 참가했다. 딱 한번 다리부상으로 경주를 포기한 것을 빼놓고는 항상 최선을 다해 열심히 뛰었다.
뒷심이 부족해 우승은 못하지만 마지막 결승주로에서 한 번은 꼭 전력으로 치고 나갔다. 차밍걸이 98연패로 연패 신기록을 세웠을 때 변영남 마주는 "연패 기록은 부끄러운 게 아니다. 98연패는 곧 98경주를 완주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하며 감동을 자아내기도 했다. 차밍걸은 지난 2014년 승용마로 데뷔하여 승마대회에 출전하기도 했다. 중요한 것은 숫자로 매길 수 없는 성실함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차밍걸. 그녀는 경마팬들에게 있어서 희망이자 자기 자신의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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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강 암말'로는 부경의 명마 '감동의바다'도 빼놓을 수 없다. '감동의바다'는 데뷔 후부터 암말 한정 대상경주에서 두각을 보이더니, 신예인 3세 때 이미 최고 경주 '그랑프리(GⅠ,2300m)'에서 당대 최고의 경주마들을 제치고 우승했다. 전성기 이후 6세 때에도 단거리에서 빼어난 경쟁력을 보였다. '부산일보배(L,1200m')를 우승했고, 'SBS스포츠배한일전(GⅢ,1200m)'에서도 유수의 일본 경주마들을 제치고 3위를 거머쥐었다.
지금까지 살펴봤던 경주마들은 모두 경주로를 떠난 '추억의 명마'들이다. 그렇지만 최근까지도 경주로를 누비고 있는 '실버울프'나 '다이아로드' 역시 인기라면 뒤지지 않는다. '실버울프'는 1회도 우승하기 힘들다는 대상경주를 무려 11번이나 우승하며 한국경마 대상경주 최다승을 갈아치웠다. 2019년, 7세라는 고령에도 퀸즈투어 시리즈 대상경주를 모두 석권하며 경마팬들에게 '역대급 경주마'로 불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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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한국경마에서도 당장 드라마나 게임으로 만들어져도 손색없을 이야기를 가진 경주마들이 많다. 각각의 경주마가 가진 사연과 그들이 경주로에서 펼치는 투혼이 경마를 스포츠로 완성시킨다. 그러나 코로나19로 인한 파행적 경마 시행으로 경주마들의 새로운 이야기 역시 '일시 멈춤' 상태이다. 경주마들의 이야기는 환호해주는 팬들이 있어야 비로소 빛을 발하기 때문이다.
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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