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광고 닫기

[율곡로] 바닷길 적신호에 예민해진 中

입력

[구글 지도 캡처. 재판매 및 DB 금지]
[구글 지도 캡처. 재판매 및 DB 금지]
[AP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AP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초크포인트(chokepoint)란 용어를 요즘 해외 언론이나 보고서에서 흔히 접하게 된다. 미국과 이란 전쟁 여파로 호르무즈 해협이 봉쇄되면서 노출 빈도가 잦아졌다. 호르무즈가 주요 초크포인트에 속해서다. 초크포인트는 직역하면 조임목, 즉 '숨통을 조이는 지점'이다. 이 용어를 자주 쓰는 지정학에선 '해상 병목 지점' 정도로 통상 의역한다. 물동량이 많아 전략적으로 중요하나 지리적 폭이 좁은 해협과 운하를 지칭하는 말이다. 막히면 타격이 크나 쉽게 막을 수 있으니 전략적 요충지가 된다. 세계 4대 해상 병목으로는 믈라카 해협, 호르무즈 해협, 수에즈 운하, 파나마 운하가 대체로 꼽힌다.

세계 해상 운송량의 3분의 2가량이 이들 4대 해상 병목 중 1곳을 통과한다. 가장 많이 이용하는 나라는 '세계의 굴뚝'으로 불리는 중국이다. 에너지를 수입해 제조한 공산품을 수출해 먹고사는 중국은 전체 해상 물동량의 70~80%가 4대 해상 병목을 지나야 한다. 특히 에너지 수입 운송 경로의 최대 90%가 4대 해상 병목 중 하나를 통과하게 돼 있다. 예컨대 중국이 전체 에너지의 절반가량을 수입하는 중동에서 원유와 천연가스를 배로 들여오려면 호르무즈와 믈라카를 잇달아 거쳐야만 한다. 중국이 지닌 한계는 4대 병목에 가장 큰 영향력을 지닌 나라가 미국이란 점이다. 미국의 호르무즈 봉쇄는 안 그래도 침체한 중국 경제에 악재로 불거졌다. 중동 원유 수입 길이 막히자 제조업이 직격탄을 맞았고 에너지 위기론까지 나온다.

최근엔 설상가상으로 중국에 더 민감한 소식이 전해졌다. 물동량 1위인 믈라카 해협에서 싱가포르를 거점으로 영향력을 키워온 미국의 통제권이 강화될 조짐이 포착된 것이다. 동남아 4개국이 공동 관리하는 믈라카에서 가장 넓은 영해를 보유한 인도네시아가 미국과 '주요국방협력동반자'(MDCP) 협약을 맺으면서다. MDCP는 미국이 군사동맹에 준하는 수준의 군사적 신뢰를 쌓은 나라에만 주는 지위로, 첨단 무기를 판매하고 군사 기술을 공유하며 훈련과 작전도 함께 하는 높은 수준의 협력 관계다. 미국의 주요 MDCP로는 인도가 꼽힌다. 미국이 중국의 일대일로(一帶一路: 육·해상 실크로드)에까지 참여한 인도네시아와 군사 협력을 격상한 이유는 분명하다. 믈라카의 실질적 통제권을 굳혀 중국을 견제하려는 것이다.

중국으로선 상당히 뼈아픈 사건이다. 남중국해 출구인 믈라카 해협에서의 주도권을 미국에 완전히 내줄 수도 있다는 위기감을 드러내고 있다. 믈라카는 중국에 생명줄 같은 바닷길이다. 만약 믈라카 해협이 유사시 봉쇄되면 중국은 현재 이란이 당하는 어려움을 그대로 겪을 수 있다. 원유 수입의 80%가 감소해 에너지난을 넘어 안보 위기에 처하고 유럽, 중동, 아프리카로 향하는 수출길이 막히게 된다. 실제로 중국 당국과 전문가들은 '믈라카 딜레마'라는 용어까지 만들어 에너지 수입 통로 대부분이 말라카에 집중된 상황을 경계해왔을 정도다. 심지어 인도네시아는 미국에 영공까지 열어주는 방안을 논의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인도네시아는 일대일로를 통해 중국의 경제 지원을 받았고 군사 훈련까지 함께한 적이 있는 나라다. 그랬던 인도네시아가 미국과 이 정도 수준의 협약을 맺는 동시에 영공 개방까지 검토하고 나섰다는 건 미국이 믈라카 해협을 사실상 봉쇄할 수 있는 국제법적 토대를 쌓기 시작했다는 신호일 수 있다. 중국 입장에선 총체적 안보 위기다. 중국은 미·중 사이에서 중립을 표방했던 인도네시아가 방향타를 틀어 미국의 안보 우산 속으로 다가가는 모습에 충격과 배신감을 드러내고 있다. 믈라카 관련국 가운데 인도네시아처럼 '안미경중'(安美經中 : 안보 지원은 미국에서 받고 경제 공조는 중국과 한다) 기조를 보여온 말레이시아, 태국 역시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없지 않다. 이들 나라가 미·중 사이에서 줄타기해온 데 대해 미국 트럼프 행정부는 출범 이후 강한 경고음을 내왔다.

미국이 믈라카 해협까지 장악할 경우 4대 해상 병목을 모두 통제하며 중국의 숨통을 틀어쥘 수 있게 된다. 수에즈와 파나마 운하는 이미 미국과 그 동맹국의 완전한 통제 아래 있고, 호르무즈 역시 미국이 언제든 막을 수 있다는 사실이 이번 전쟁에서 입증됐다. 만약 믈라카마저 미국에 넘어간다면 중국은 해상에서 미국의 포위망 속에 갇히게 된다. 국제안보 전문가들은 미국이 이처럼 4대 병목 봉쇄에 공을 들이는 것이 직접적 전쟁을 피해 중국의 항복을 받아낼 가장 강력한 카드로 보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중국도 이를 모를 리 없다. 믈라카 딜레마를 피하려고 러시아·중앙아시아 육로 확대, 태국 크라 운하 건설 검토, 에너지 비축량 확대 등 다각적 대책을 세우고 있다. 하지만 해상 물동량 규모를 육로 운송으로 대체하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게 중국의 고민이다. 대항해 시대부터 진리였던 '바다를 지배하는 자가 세계를 지배한다'는 명제는 여전히 유효하다.

leslie@yna.co.kr

Copyright (c) 스포츠조선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