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고 사는 게 중요했던 시절이 있었다. 질보다는 양이었고, 맛보다는 배를 채우는 게 먼저였다. 인삼은 그저 약재로나 여겼다. 몸이 허하거나, 특별한 날에나 식탁에서 볼 수 있던 게 인삼이다. 삼계탕은 초·중·말복에나 먹었고, 일부에선 인삼 대신 황기를 넣고 끓이기도 했다. 시대가 변했지만, 인삼은 아직도 귀한 식재료다. 수삼, 백삼, 홍삼 등 이름도 다양하다. 쌉싸름한 맛에 즐겨 찾지 않았을 뿐, 알게 모르게 인삼을 활용한 음식도 다양해졌다. 특정 회사의 마케팅 덕분이었을까. 언제부턴가 인삼을 시중에서 보긴 쉽지 않아졌고, 홍삼이 이 자리를 대체했다. 그럼에도 불구, 인삼은 K-미식의 중요한 한 축인 동시에 K-미식의 주인공으로서 존재감은 여전하다. 더욱이 미식과 관광을 결합한 미식 관광의 활성화라는 중요한 역할도 묵묵히 수행 중이다. 정부와 지자체, 한식진흥원의 협업이 있어 가능했다. 인삼 정원으로의 특별한 초대, 색다른 미식 관광. 인삼의 고장, '금산'의 이야기다.
▶3대 미식벨트 위엄, 미식 투어 매진 행렬
대중관광을 넘어 대안관광이 인기를 얻고 있는 요즘, 미식 관광은 여행객의 접근성이 쉬운 여행 법이다. 대안 관광이란 20세기부터 유행처럼 번진 대중관광의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하고, 지역사회와 자연환경을 보존하는 지속가능 한 관광 방식을 말한다. 미식 관광은 관광객이 별다른 노력 없이 여행 중 맛있는 것을 먹는 것만으로 지역 경제에 긍정적 영향을 주고 문화적 가치도 극대화하는 데 긍정적인 효과를 발휘한다. 정부 차원에서 미식 관광 발굴에 나서는 이유다.
농림축산식품부와 한식진흥원은 지난해부터 'K-미식벨트'를 바탕으로 국내 특색 있는 미식 관광 테마를 발굴·지원하는 사업을 시범 운영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전북 순창과 전남 담양군을 중심으로 펼친 장벨트 사업(코레일관광개발)을 진행했고, 올해는 인삼벨트(충남 금산군-충남문화관광재단), 전통주벨트(경북 안동시-코레일관광개발), 김치벨트(광주광역시-광주관광공사)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K-미식벨트 사업은 단순한 미식 체험을 넘어 지역 관광 활성화를 위한 미식투어 상품으로 확장되고 있다.
다양한 K-미식벨트 중 금산을 찾았다. 과거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던 인삼은 어느 순간 실물을 보기 어려워진 만큼 금산 K-미식벨트 사업은 특별함을 더한다. 게다가 일반인이 즐길 수 있도록 구성된 미식투어를 구성한 상품 하나하나가 매력적이다. 시골농부와 함께 직접 인삼을 캐고, 인삼주를 담그고, 다양한 인삼요리를 즐긴다. 무엇보다 지역 주민과 함께 인삼을 활용한 체험활동도 진행된다. 시범사업으로 진행된 K-미식벨트 충남 금산 상품은 지난 10월 25일 첫 상품을 선보인 금산 미식 관광 상품은 올해 말까지 매진됐다. 올해 말 시범사업이 종료되는 내년에도 상품이 판매될지는 미지수다. 금산군의 의지에 달렸다. 그렇다고 아쉬워할 필요는 없다. 당일치기로 구성된 K-미식벨트 충남 금산 상품의 명소와 금산의 숨은 명소를 함께 소개하니 말이다. 오히려 금산을 여유롭게 즐기고, 깊게 맛보고,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
▶전설 품은 개삼터, 시골 농부와 인삼 캐기
예로부터 금산은 인삼의 고장이다. 국내 인삼의 절반 이상이 금산에서 유통된다. 재배 면적이 넓진 않지만, 한반도의 배꼽에 있는 지리적 특성과 인삼이 잘 자리는 기후적 특성이 금산을 인삼의 고향으로 만들었다. 게다가 인삼의 역사를 담고 있는 개삼터도 있다.
개삼터는 금산 남이면 성곡리에 있다. 금산군청은 '강 처사'의 설화를 재현해 개삼터공원을 운영 중이다. 달랑 초가집 하나가 우뚝 선 곳이지만, 그 속에 담긴 내용은 흥미롭다. "지금부터 1500년 전 강씨 성을 가진 선비가 부친을 일찍 여의고, 모친이 병들어 눕자 진악산에 있는 관음굴에서 모친의 병을 낫게 해달라고 빌고 또 빌었다. 그의 효심에 감동했는지 어느 날 꿈속에 산신령이 나타나 "관음불봉 암벽에 가면 빨간 열매 세 개가 달린 풀이 있을 것이니 그 뿌리를 달여드려라"하고는 사라졌다. 강 처사가 암벽을 찾아가니 진짜 그런 풀이 있었다. 뿌리를 캐어 어머니께 달여드렸더니 모친의 병은 완쾌됐다.…(중략)… 그 씨앗을 남이면 성곡리 개안 마을에 심어 재배하기 시작했고, 뿌리의 모습이 사람 모습과 비슷하다고 해서 인삼이라고 불리게 됐다." 그렇게 재배되기 시작한 인삼, 특히 금산인삼의 재배법은 2018년 7월 4일 세계중요농업유산 GIAHS에 등재가 됐다.
인삼의 유래와 기본 지식이 입력됐으니, 체험 시간이다. 농부 형제가 운영하는 신안골모퉁이로 발길을 옮겨보자. 신안골모퉁이는 인삼을 캘 수 있는 체험을 할 수 있는 곳인 동시에 인삼을 활용한 음식을 맛볼 수 있는 식당이기도 하다.
신안골모퉁이에 들어서면 인상 좋은 이행준 대표가 방문객을 반긴다. 이름처럼 산과 강, 굽이진 길이 맞물린 위치는 모퉁이란 이름에 운치를 더한다. 신안골모퉁이는 약초작목반에서 약초를 이용한 농촌자원 수익사업 일환으로 인삼 캐기 체험을 지원한다. 건물을 중심으로 100여미터 떨어진 인삼밭에 들어가 인삼을 캐면 된다. 장갑부터 인삼을 캘 수 있는 도구를 모두 지원한다. 이곳에서 캔 인삼은 2뿌리가량 가저잘 수 있다. 이 대표의 수려한 말솜씨와 넉넉한 인심이 재미를 더하고, 말만 잘하면 몇뿌리를 더 덤으로 얻을 수 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다. 신안골모퉁이의 대표 메뉴인 토종닭을 이용한 백숙을 맛보는 것을 추천한다. 단, 토종닭 백숙의 경우 수시간 동안 가마솥에 끓이는 특성상 늦어도 반나절, 여유롭게는 3일전 예약하는 것을 추천한다. 인삼을 비롯해 다양한 약재가 함께 어우러져 맛이 뛰어나고, 안주인의 손맛 좋은 밑반찬은 밥상을 더욱 풍요롭게 만든다.
▶월영산 출렁다리에서 소화, 이색 인삼 체험
신안골모통이 근처에는 신안사가 있다. 절 규모는 아담하지만, 주지스님의 손길이 닿아 잘 꿔진 내부를 둘러보며 소화를 시키기 좋다. 특히 절의 마스코트인 고양이를 찾아보는 것도 즐거움을 더한다.
금산의 아름다운 풍경을 눈에 더 담고 싶다면 월영산 출렁다리가 좋다. 유유히 흐르는 금강 위로 산과 산을 잇는 출렁다리다. 높이 45m, 길이 275m의 무주탑 교량으로 스릴이 넘치고, 멀리서 보이는 인공폭포도 볼거리다.
금산 인삼을 제대로 알고 싶다면, 금산인삼관과 금산인삼약령시장으로 향하면 된다. 제대로 된 인삼을 볼 수 있는 곳으로, 인삼 튀김을 비롯해 인삼막걸리, 인삼 스무디 등 인삼을 활용한 먹거리가 다양하다. 금산인삼약령시장에선 저렴하게 인삼을 구매할 수 있고, 시장 인근엔 인삼을 세척해주는 곳도 있어 불편함 없이 집에서 인삼을 즐길 수 있다.
금산에선 인삼을 활용한 특별한 체험을 할 수 있다. 직접 인삼주를 담그고, 지역 주민과 함께하는 인삼 쿠킹클래스다. 국내 식품명인 2호인 김창수 명인이 운영하는 금산인삼주에선 인삼꽃주 만들기가 진행된다. 얇게 편으로 저민 인삼으로 꽃모양을 만들어 인삼주를 담근다. 다양한 종류의 인삼주 시연과 인삼주를 직접 구매할 수도 있다. 쿠킹클래스는 금산 다락원 여성의 집에서 진행된다. 인삼가루를 활용해 다식을 만들고, 튀김 요리인 인삼칩을 비롯한 인삼 디저트를 만든다. 다만 인삼 활용 체험 콘텐츠는 우선 K-미식벨트 관광상품에 포함, 내년부터 개인적으로 체험을 할 수 있는지는 개별 문의를 통해 확인해야 한다.
금산에는 인삼을 활용한 음식을 찾는 게 어렵지 않다. 지천에 있는 게 인삼으로, 예전부터 현지인들이 즐겨먹던 방식으로 거부감도 적다. 대표 식당으로는 조무락이 있다. 인삼 샐러드부터 떡갈비, 튀김 등 다양한 요리가 제공된다. 주인장의 손길이 많이 다는 음식이 대부분으로, 방문 전 예약을 해야만 맛 볼 수 있어 특별함을 더한다. 금산은 금강을 끼고 있어 민물고기를 활용한 어죽과 도리뱅뱅이도 대표 먹거리다. 월영산 출렁다리 인근의 남촌가든은 빠가사리(동자개)로만 만든 어죽을 판매한다. 어죽에도 인삼이 들어가 있고, 인삼막걸리와 민물새우 튀김도 별미다.
인삼의 고장, 인삼의 유통을 담당하던 금산. 농림축산부와 한식진흥원의 인삼 K-미식밸트는 대표 K-먹거리인 동시에 특유의 맛과 향으로 접근성이 떨어지던 인삼을 활용해 특별한 미식 관광 도시로 만들고 있다.
김세형 기자 fax123@sportschosun.com
2025-11-27 09:21: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