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은 못볼지도] 울산 특산물은 옛말…귀해진 '정자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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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울산 정자항에서 대게잡이 어선은 1척 밖에 남지 않았어요."
울산 앞바다는 한때 주목받는 대게 산지였다. 2000년대 초 울산 연근해도 대게 서식지로 공식 확인되면서 대게잡이가 활발히 이뤄졌고, 그 중심에 울산 북구 정자항이 있었다.
정자항 어선들이 잡아 온 대게는 '정자대게'라고 불리며 곧 가자미, 돌미역 등과 함께 지역 특산물이 됐다.
한 해의 첫 위판을 기념하는 초매식이 정자항에서 열렸고, 많을 때는 40여척의 어선이 조업에 나서기도 할 정도로 대게가 많이 잡혔다. 정자대게가 알려지면서 정자항에는 대게 음식점이 밀집한 거리도 생겨났다.
하지만 20여년이 지난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어느 순간부터 갑자기 대게가 잘 잡히지 않게 된 것이다.
20년 새 어획량이 10분의 1 수준으로 감소했다. 어민들은 해마다 잡히는 대게가 줄어들고 있다고 말한다. 이러다가 정자대게는 이름만 남을지도 모른다는 걱정도 나온다.
정확한 원인은 파악되지 않고 여러 추정만 할 뿐이지만, 기후 변화로 인한 수온 상승을 배제할 수 없으며 이를 포함한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했을 수도 있다는 의견이 제기된다.
◇ 정자항 대게잡이 어선 1척만 남아…명성은 옛말
"금어기 끝나면 정자대게도 들어옵니다. 그런데 예전만큼 잡히는 건 아니에요. 십수 년 전이랑은 비교가 안 되죠."
지난 11일 정자항에서 만난 상인 A씨는 러시아산 대게가 가득한 수조를 보여 주며 말했다.
정자대게와 같은 국내산 대게는 매년 6월부터 11월까지 금어기인 탓에 지금은 팔지 않지만 금어기가 풀리더라도 울산이 정자대게의 옛 명성을 되찾기는 어려워 보인다.
A씨는 "예전에는 이곳 정자항에서도 대게 위판을 했는데 몇 년 전부터 안 한다"며 "지금은 대게잡이 어선도 정자항에 1척밖에 남지 않았다"고 전했다.
정자항에서 대게잡이가 성행하게 된 것은 2003년께부터다.
국립수산과학원에서 동해 대게 자원량과 서식지를 조사했는데, 울산 주변 바다에도 대게가 서식한다는 사실이 확인됐기 때문이다.
당시 정자항에서만 30∼40척의 연안·근해어선이 대게 조업에 나선 것으로 알려진다.
통계청의 어업생산동향조사 자료에 따르면 울산 대게 생산량은 2003년 213t, 2004년 442t, 2005년 654t으로 해마다 늘었다. 2006년에도 570t이 잡혔다.
2007년부터 2014년까지는 다소 줄어들긴 했지만 116∼333t 수준을 유지하며 지역 특산물로 자리매김하고 있었다.
그런데 2015년 74t, 2016년 34t, 2017년 41t, 2018년 33t으로 눈에 띄게 감소했다. 2019년엔 23t으로 최저 생산량을 기록했다.
2020년대 들어서는 생산량이 조금 늘긴 했지만 여전히 두 자릿수에 그치고 있다. 2005년(654t)과 2024년(65t)을 비교하면 20년 새 약 90%가 줄어든 것이다.
윤병구 울산근해자망선주협회장은 "대게 어획량이 줄어들면서 조업해도 수익을 내지를 못하니 수년 새 많은 어선이 대게잡이를 포기하고 가자미를 잡고 있다"며 "아직 대게를 잡는 배도 수심이 깊은 먼바다까지 나가서 조업하는 실정"이라고 설명했다.
◇ 고수온 영향인가, 남획 탓인가…복합적 가능성도
울산 앞바다에서 대게가 사라진 이유에 대해 어민들은 수온의 영향을 꼽는다.
기후 변화로 바다가 뜨거워지면서 낮은 수온을 선호하는 대게에게 적합하지 않은 환경이 됐다는 것이다.
윤 회장은 "실제로 바다에 나가 보면 제주도 인근에서 서식하는 어종, 열대성 어종 등이 많이 보인다"며 "이렇게 바다가 점점 뜨거워지면 대게에게도 영향을 주지 않았겠나"라고 말했다.
올해 1월 국립수산과학원이 발표한 지난해 우리 바다 연평균 표층 수온은 18.74도로, 최근 57년간 관측된 수온 중 가장 높았다. 이전 최고 기록인 2023년의 18.09도보다 0.65도 오른 것이다.
동해는 18.84도였는데, 서해와 남해를 비롯해 모든 해역이 역대 최고 수온을 기록했다.
다만, 표층 수온이 뜨거워지는 것이 대게 급감과 실제로 어느 정도 관계가 있는지는 좀더 연구가 필요하다.
대게는 수심 150∼400m, 섭씨 2∼3도에서 서식한다. 일부 전문가는 표층 수온이 뜨거워져도 수심 150m 이상 깊은 곳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말한다. 표층이 아무리 뜨거워져도 저층의 온도 변화는 없었다는 뜻이다.
또 대게 종 자체도 울산이 아닌 국내 전체를 놓고 봤을 때 줄어들고 있거나 하는 어종은 아니라고 평가한다.
국립수산과학원 관계자는 "울산 앞바다의 경우 수심이 급격히 깊어지는 구간이 있어 대게 서식지가 그리 넓지는 않았다"며 "양적으로 많지 않았기 때문에 자원이 유지될 정도를 넘는 어획으로 고갈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다만 알래스카 베링해 사례를 보면 수온 상승이 대게 수 감소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며 "대게는 울산의 경우 국내 최남단에 위치한 서식지이기 때문에 대게가 다른 지역보다 좀 더 수온에 민감하게 반응해 적합한 환경으로 이동했을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알래스카 베링해에서는 2018년부터 2021년까지 대게 수십억마리가 사라져 어획이 금지되는 일이 있었다.
이후 수온 상승이 대게의 열량을 훨씬 많이 소모하게 한 반면, 먹이는 줄어들게 해 굶어 죽게 했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되기도 했다. 또 베링해보다 더 차가운 북극해로 이동한 대게들이 발견됐다.
이 관계자는 "현재 주요 수산 관리라고 하면 금어기, 금지 체장 등 단일 종을 대상으로 하는데 먹고 먹히는 관계까지 고려해 반영하지는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미국, 유럽 등은 생태계 기반 연구에 노력하고 있다"며 "기후 변화로 인한 먹이 환경 변화 등까지 고려하기 위해서는 장기적으로는 그 방향으로 가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yongtae@yna.co.kr
<연합뉴스>
2025-09-13 08:22: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