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포의 창] "종이접기가 한국어 배우는 즐거움 알려줬어요"
러시아 1호 종이접기 사범 노브고로드 한글학교 서향정 교감
"종이접기는 강력한 소통 도구…집중력 향상·언어 학습 '일석이조'"
(서울=연합뉴스) 박현수 기자 = "말 한마디 통하지 않던 고려인 아이들이 고사리손으로 한복을 접으며 '선생님, 예뻐요'라고 한국말로 속삭일 때 보람을 느껴요. 종이접기는 단순한 놀이가 아니라, 한국의 정신과 언어를 잇는 가장 강력한 소통 도구입니다."
러시아 노브고로드에서 16년째 한글학교를 운영 중인 서향정(58) 노브고로드 한글학교 교감은 22일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종이접기를 통해 아이들이 한국어를 자연스럽게 배우고, 한국 문화에 대한 자부심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이날 서울 중구 장충동 종이문화재단에서 러시아 1호 K-종이접기 사범 자격증을 취득했다.
서 교감은 모스크바에서 북쪽으로 530㎞ 떨어진 노브고로드에서 종이접기 교육으로 현지 한국어 교육의 새 장을 열고 있다.
서 교감은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총회에서 파송된 선교사 남편 김영호(61) 교장을 따라 낯선 타국 땅에서 2009년 7월 한글학교 문을 열었다. 1년 반의 준비 기간을 거쳐 2011년 1월 재외동포청 전신인 재외동포재단에 공식 등록했다.
학교는 초기 고려인 대학생 등 성인을 중심으로 시작했으나 K-컬처 바람이 불면서 러시아 현지 학생이 더 많아졌고, 중학생과 초등학생까지 확산했다.
전환점은 2013년에 찾아왔다. 노영혜 종이문화재단 이사장과 '종이접기 아저씨' 김영만 평생교육원장이 러시아를 찾아 한글학교 교사들을 대상으로 종이접기 교육을 통해 강사 자격증을 취득하면서다.
서 교감은 "설날이나 추석 행사 때 한복 접기를 해 왔는데, 아이들 반응이 매우 좋았다"며 "러시아인들이 한복 접기를 좋아해 행사 때마다 부스에 몰려든다"고 말했다.
그가 종이접기에 주목한 이유는 문화 체험을 넘어서는 교육 효과 때문이다. 그는 "종이접기 수업에서는 무조건 한국말로 가르친다"며 "한국말을 자연스럽게 사용하게 해 수업이 쉽고 매력적"이라고 강조했다.
서 교감은 러시아에도 일본식 종이접기인 오리가미가 유행하는 상황이지만, 아직 오리가미가 침투하지 않은 노브고로드 지역만큼은 한국 전통 종이접기가 시장을 선점한 상태라고 했다. 그는 "한국 색종이는 좋은 질과 화려한 색감이 특징"이라며 "러시아 종이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우수하다"고 말했다.
앞으로 복주머니, 청사초롱, 태극기 등 전통 한국 요소를 접기 활동에 집중적으로 활용계획이다. 학생들은 종이로 직접 열쇠고리 등 한국적 아이템을 만들며 만족감을 느낀다.
서 교감은 "종이접기는 창의력을 키워줄 뿐만 아니라 집중력을 향상해 산만한 아이들도 몇 시간씩 앉아서 활동할 수 있게 한다"며 "매일 주어지는 과제를 통해 이해가 점차 향상된다"고 설명했다.
종이접기와 동요, 동시를 결합한 수업도 진행한다. 나비접기 할 때는 나비 노래를, 개구리접기 할 때는 관련 동시를 함께 부른다.
서 교감은 학교 운영에 학생들의 한국 방문 연수를 적극 활용한다. 재외동포청이 주최하는 청소년·교사 연수 프로그램에 매년 학생과 교사를 보낸다.
"학생들이 한국에 가면 친구를 사귀고 학습 동기가 부여돼 엄청난 효과가 있어요. 한국을 다녀온 아이들은 한국어 공부를 더 열심히 하고, 러시아인이라고 하던 정체성을 한국 사람으로 바꿉니다."
연수 효과는 학교 홍보로도 이어진다. "한글학교에 열심히 다니면 한국 연수를 보내주는 인센티브가 대학생까지 효과적이에요."
학교는 매년 설날과 추석 행사를 통해 한국 전통문화를 체험하는 기회를 제공한다. 종이접기, 한복 입기, 제기차기, 캘리그라피, 윷놀이, 투호 놀이 등 다양한 부스를 운영한다.
작년 추석·한글날 행사에서는 강순예 동시 작가와 협업해 '훈민정음 서문가'와 함께 '범 내려온다' 등 전통 노래 공연을 진행했다. 학생들은 한복을 입고 노래를 불러 큰 호응을 얻었다.
그는 "러시아인들도 설날 한글학교 행사 참석 후 한국어와 문화에 관심을 보인다"며 이번 설날에도 K-팝 행사를 별도로 계획 중이라고 했다.
현재 노브고로드 한글학교는 교장·교감 외에 현지인 교사 2명과 고려인 교사 2명 등 총 4명이 있다. 학생 수는 100명을 넘었지만, 코로나19와 러-우크라이나 전쟁 상황으로 인해 43명으로 줄었다.
운영 16년 차를 맞은 노브고로드 한글학교는 지난해 지역적 한계를 넘어 프스코프 주까지 영역을 확장했다. 현재 에스토니아 국경 인근 초등학교를 빌려 수업을 진행 중이며, 내년 정식 등록을 앞두고 있다.
특히 서 교감은 종이접기를 통해 학생 모집의 어려움을 해결하고 있다. 그는 "한국어만으로는 어린 학생들의 흥미를 유지하기 어렵지만, 종이접기를 병행하면 학습 지속성이 몰라보게 높아진다"며 문화 콘텐츠와 언어 교육 결합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올해는 학생들의 종이접기 작품을 선별해 전시회도 열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phyeonsoo@yna.co.kr
<연합뉴스>
2026-01-23 11:10: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