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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복자의 삶을 살아보자, '아틸라'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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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역사광(狂)이 모인 개발사 크리에이티브 어셈블리. 이들의 대표작 '토탈워' 시리즈는 실제 역사를 바탕으로 한, 그리고 정치와 전투가 복합된 게임플레이로 인기를 모았다.

실시간으로 벌어지는 수천 명 대 수천 명, 그리고 상성끼리 물고 물리는 대규모 전투는 현실의 전쟁 느낌을 유사하게 재현할 수 있었다. 혈연이나 조직 구성원에 따라 내정 상황이 바뀌거나, 심한 경우 통제가 불가능한 내부 분열로까지 이어지는 정치와 외교 전개도 팬 층을 두텁게 하는데 일조했다.

매 시리즈마다 새로운 시대를 바탕으로 삼고, 이에 맞는 시스템과 국가별 특화를 선보이는 모습은 팬들에게 다음 편을 기다리도록 했다. 그렇기를 어느덧 10년, 이 시리즈에도 사춘기가 찾아온 것일까.

2013년 발매된 '로마: 토탈워 II'는 급박한 발매와 그에 따른 미흡한 뒷마무리로 많은 지적을 받았다. 발매 후 몇 달 동안 플레이가 불가능할 정도로 문제가 이어졌으며, 반 년 넘게 지나서야 안정된 모습을 보여 줬을 정도였다. 새로운 시스템과 같은 시도도 상당수가 버그로 이어졌고, 그만큼 유저들의 원성도 높았다. 그랬기에 후속작이자 프랜차이즈 15년 기념작 격인 '토탈워: 아틸라' 개발진의 부담은 컸을 것이다. 로마의 강적이었던 훈족의 수장 아틸라를 상대하는 느낌이 이런 것 아니었을까.



기본은 전작 그대로

이런 면을 반영하듯, 아틸라는 기본을 충실하게 잡는 것을 우선시 했다. 전략 파트와 전투 파트는 전작 로마: 토탈워 II에서 크게 달라지지 않았으며, 버그를 고치고 밸런싱 정도만 손 댄 모습이다. 여기에 필요하다 싶은 부분들만 구작의 장점을 가져와 개선했다. 예를 들자면 직관적이고 깔끔해진 기술(Technology) 연구 트리, 병사들의 실제 모습으로 회귀한 전투 메뉴 유닛 표시 창 등이 있으리라.

단순히 전작의 시스템을 그대로 들고 온 것만은 아니다. 도시별 특화를 돕는 칙령(Edict) 개념을 예로 들자면, 이제 총독(Governor)만 파견해도 충분하다. 구작에서 너무 조건이 복잡해 기피했던 부분을 간소화한 모습이다.

외교책이자 내부 정치싸움의 주된 발생처였던 가계도(Family Tree) 시스템도 돌아왔다. '군주가 죽고 그 아내가 섭정 자리에 올랐으니, 재혼시키고 암살해 권력을 잡자' 식의 정치극을 즐겼던 입장에서는 반가운 부분이 아닐 수 없다. UI는 미디블: 토탈 워 2를 위시한 구작보다 직관적이 돼 다가가기 쉬워졌다. '포로를 왜 회유하지 못하지?'라는 의문을 해결해 준 포로 등용 선택지 추가는 덤.



탄탄한 기반 위에 선 신규 시스템, 진입 장벽은 결점

그렇다고 신규 시스템이 아예 없지는 않다. 바로 '야만족의 침입으로 몰락해가는 로마'라는 시대 설정을 충실히 반영한 민족(Horde) 개념이다. 새롭게 등장한 야만족과 유목민 진영에서는 마을이 아니어도 임시로 정착이 가능하며, 여기서 전투에 쓰이는 부대 생산이 가능하다.

이런 시대상은 도시 초토화에도 반영됐다. 도시를 완전히 파괴한 후에는 거액을 투자해 개발(Colonize)을 해야 도시로써 다시금 기능할 수 있다. 이를 통해 넘겨주기는 싫으나 키우기는 어려운 도시를 일부러 초토화하거나, 상대의 외곽 지역부터 서서히 파괴해 수입과 보급을 끊어 나가는 등의 변수가 생겨났다. 이번 작품의 주인공인 훈족은 추가 혜택까지 있는 만큼, 위의 유목민 설정과 합쳐지면 마을을 약탈하고 유유히 떠나가는 역사 재현도 꿈만은 아니리라.

전투 역시 시스템이 개선되고 바뀐 세계관을 반영하며 더욱 단단히 다져진 모습이다. 전편에서 속공에 극히 취약했던 모습을 보인 수비전은 건물 배치의 자유가 늘었으며, 해상전은 시대상을 반영해 근거리 화염 방사 함선과 이에 맞서는 불 끄기 기능이 추가되며 전혀 다른 양상을 띄게 됐다.

안타깝게도, 이런 시스템을 모두 즐기기 위해서는 먼저 게임에 익숙해져야 한다. 튜토리얼은 친절하고 단계별로 차근차근 이어지는 편이지만, 시리즈를 처음 접하는 이에게는 여전히 단계가 많고 번잡하다. 더군다나 국가별로 특화된 부분과 운용 전략에 대해서는 안내가 부족해, 머리 속에 그리는 전략이 있어도 단번에 실행하긴 어렵다.

UI는 전 시리즈보다는 정리됐지만, 여전히 숙련자가 아니라면 모든 요소를 한 번에 설명할 명쾌한 안내가 부족하다. 결국 메뉴를 하나 하나 열어보며 시행착오를 거치게 되며, 본 재미에 도달하기까지 긴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상황과 상관없는 비합리적인 선택을 하는 정치 파트 인공지능, 그리고 컴퓨터가 턴을 맡았을 때의 오랜 기다림과 더불어 이는 답답함으로 다가온다.



새 방향으로 빛을 본 로마의 몰락

2년 동안의 기다림 끝에 만난 토탈워 차기작에 특별한 것은 없었다. 야만족의 특성을 반영한 신규 시스템을 제외하면 모두 전작 어딘가에서 볼 수 있던 요소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게임을 체험한 십여 시간 동안 로마: 토탈워 II처럼 눈에 띄는 버그나 튕김 현상은 찾아볼 수 없었다. 불편했던 부분들도 나아진 모습이 눈에 띈다. 그리고 이런 수정과 개선만으로도 체험하면서 느낀 만족도 차이는 컸다. 여전히 신규 유저에게 가혹한 진입장벽이 있음은 아쉬운 부분이지만, 전작의 가려운 부분을 긁어 주는 업그레이드 역할은 톡톡히 한 셈이다.

실수를 고치고, 기존 요소는 더욱 나아지도록 노력한다. 로마는 2천년 전에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며 결국 멸망했지만, 얻은 교훈은 현재까지 회자되며 '영원한 도시'로 기억되는 것과 같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