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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토크]최희섭 "다시 찾은 야구가 무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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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구단 시대, 팀당 144경기 체제가 가동한다. 34세 KBO(한국야구위원회) 리그가 2015년 시즌을 시작한다. 지금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길에 접어들었다. 한국 프로야구사에 오랫동안 의미있는 시즌으로 기억될 2015년이다.

두근두근 가슴을 두드리는 새 시즌. 그 누구보다 시즌 개막이 특별한 선수가 있다. 은퇴의 기로에 섰다가 다시 돌아온 KIA 타이거즈 최희섭(36)이다.

지난 2년 간 최희섭의 시계는 멈춰 있었다. 메이저리그에서 고향으로 돌아와 타이거즈 우승을 이끌더니, 잇따른 부상으로 추락을 거듭했다. 은퇴 위기까지 몰렸다. 그랬던 그가 지난 가을 마음을 다잡고 승부수를 던졌다. 물론, 타이거즈의 주력타자로 승승장구했던 시절과 완전히 다른 분위기다. 지난 가을부터 절치부심 절박하게 야구와 싸워 온 최희섭, 그가 개막을 앞두고 속마음을 털어놨다.



▶"처음이 아닌 마지막을 함께하고 싶다"

최희섭은 많은 걸 내려놓고, 비워두고 있었다. 말처럼 쉬운 게 아니지만 시간은 무척 힘이 세다.

"감독님과 코칭스태프, 팬들이 큰 기대를 하지 않고 있다는 걸 잘 알고 있다. 예전에는 다들 내게 '3할 타율, 30홈런, 100타점'을 기대했는데, 지금은 그런 상황이 아니다. 여러 사람이 '괜찮냐'고 묻는데, 그 말에 의구심이 담겨 있다는 걸 잘 알고 있다."

2013년 시즌 중간에 부상으로 전력에서 빠진 최희섭은 지난해 단 한 번도 타석에 서지 못했다. 할 수만 있다면 지우개로 말끔히 지워버리고 싶은 2014년이다. 타이거즈 간판 타자 최희섭은 희미한 이름으로 잊혀지고 있었다.

그런데 지난해 10월 말 김기태 감독이 부임하면서 최희섭의 심장이 다시 뛰기 시작했다. 마무리 훈련, 개인훈련을 거쳐 오키나와 1군 전지훈련, 시범경기까지 5개월을 숨가쁘게 달려왔다. 그리고 마침내 시즌 개막이다.

다시 출발선에 선 최희섭은 차분하게 지난 시간을 돌아보며 "구단에 빚진 게 너무 많다. 조금이라도 갚고 싶다"며 "개막전을 함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마지막을 함께 하고 싶다"고 했다. 1군에서 개막전을 맞는 것도 뜻깊은 일이지만, 꾸준하게 뛰면서 시즌 마지막까지 팀에 기여하고 싶다는 다짐이다.

최희섭은 "주위에서 '이번에는 얼마나 가는 지 보자'는 시선으로 바라본다는 걸 잘 알고 있다. 내가 그동안 해 온 걸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다. 나라도 그렇게 생각할 것 같다"고 했다. 그는 또 "사실 운동선수는 대부분 자기 중심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나 또한 그랬다. 하지만 (지난 몇 년 간 여러가지 일을 겪으면서) 그런 부분이 100% 사라졌다. 지금은 마음 편하게 야구를 할 수 있게 됐다"고 강조했다. 가혹한 자기비하처럼 들리기도 하지만, 새로운 출발을 알리는 철저한 자기반성이다.

보장된 건 없다. 당연히 경쟁에서 실력을 보여줘야 한다. 주전 1루수 브렛 필, 좌익수와 지명타자로 출전해 온 후배 나지완이 버티고 있다. 최희섭은 경쟁 얘기가 나오자 고개를 힘차게 가로저었다.

"필과 나지완은 굉장히 좋은 선수다. 경쟁을 한다는 생각은 안 한다. 나이도 있고, 내가 필과 나지완의 경쟁상대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은 안 한다. 두 선수가 잘 해야 우리 팀이 산다. 나는 대타도 좋다. 아무 상관없다. 지금 상황에서 목표를 말하기는, 어렵지만 목표를 세우지 않았다. 다만 선수 생활을 잘 마감하고 싶은 마음뿐이다."

▶"야구가 두려웠다"

고향 광주, 대한민국의 자랑이었던 메이저리그 최초의 한국인 타자. 그런데 고통스러운 재활훈련이 이어지고, 야구와 멀어지면서 거리가 생겼다. 어렵게 다시 찾은 야구인데 이전과는 많이 달랐다.

"지난 2년 간 제대로 야구를 못 하다가 다시 시작해서 그런지 야구가 두려웠다. 방망이를 잡아보지 못한 시간이 길었다. 새삼 야구가 정말 쉬운 게 아니라는 걸 알았다. 투수가 던진 시속 140km 공을 때린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지 선수가 아니면 모를 것이다."

초등학생 때부터 줄곧 야구만 해 왔는데, 최고의 타자로 이름을 날렸는데도 그렇다.

심지어 최희섭은 "솔직히 경기에 나갔을 때 순식간에 끝났다는 기분이 들었다. 나도 모르게 시간이 '휙' 지나가버렸다. 굉장히 당황스러웠다"고 말했다.

시범경기 중후반까지 최희섭은 중심타선에서 매서운 타격을 했다. 11게임에서 타율 2할9푼(31타수 9안타), 3볼넷, 4타점. 마지막 2경기에서 6타수 무안타를 기록했지만 이전 9경기 중 7게임에서 안타를 때렸다.

물론 여러가지를 생각하고 있다. 최희섭은 "그동안 내 페이스를 유지하면서 여러가지를 준비했다. 잘 안됐을 때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를 많이 생각하고 있다"고 했다.

김기태 감독의 최희섭에게 굳게 닫혀 있던 문을 열어준 지도자다. 최희섭은 "지난해 11월 마무리 훈련에 참가했을 때, 1군에서 시즌 개막을 맞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기회를 주신 김기태 감독님, 구단에 꼭 보답을 하고 싶다. 실력과 상관없이 감독님과 코칭스태프, 구단이 참 많은 배려를 해 주셨다"며 고개를 숙였다.

타이거즈 선수 최희섭이 가장 빛났던 시즌은 2009년이다. 그해에 타율 3할8리, 33홈런-100타점을 기록하며 타이거즈의 11번째 우승에 기여했다. 이제 최희섭은 팬들의 기억속의 그 최희섭이 아니라 36세 도전자다.

민창기 기자 huelva@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