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5(3.24)
서울패션위크도 이제 저물어간다. 반환점을 돌아 주말까지 보내고 난 DDP는 제법 한산해졌다. 물론 서울패션위크의 마지막 불씨까지 만끽하려는 패피들은 여전히 남아 있지만 말이다.
서울패션위크의 상징적 존재, 이영진은? 물론 예외없이 이날도 DDP를 찾았다. 오후 1시30분, Cres.e.dim 컬렉션으로 Day5를 시작한다. 이날은 특별한 인물도 동행했다. 바로 '떡국열차'로 인연을 맺은 봉만대 감독이다. 이영진은 "컬렉션이 처음이라는 우리 봉만대 감독님"이라며 다정한 셀카도 공개했다. 그런데 이날 이영진의 의상이 여성여성하다. 파스텔톤 크롭셔츠에 롱 스커트를 매치했더니, 지금껏 시크했던 이영진이 러블리해 보인다.
얼굴은 화사한데, 빡빡한 패션위크 일정에 이어 26일 쟈뎅드슈에뜨 런웨이에 설 준비로 요즘 거의 잠을 자지 못했다는 이영진. 이날 봉만대 감독과의 반가운 만남을 뒤로하고 밴으로 향해 잠깐 쪽잠을 청하기로 한다. 다음 일정까지 시간이 많이 남았다.
오후 4시30분 KYE 컬렉션 포토월에 서기 위해 이영진은 잠에서 깼다. 홍삼절편을 건넸다. 예상보다 더 반가워한다. 밴 안에서 홍삼을 먹으며 다시 옷을 갈아입는다. 이번 쇼를 준비한 계한희 디자이너와는 친분이 두텁다. 그래서였을까. 그녀의 옷이 이영진에게 더더욱 잘 어울린다. 독특한 패턴이 재미있는 화이트 셔츠에 블랙 와이드 팬츠. 쇼장으로 이동하는 이영진에게 쏟아지는 카메라 플래쉬 세례. 기자도 이제 제법 익숙해졌다. KYE쇼를 이영진은 꽤 즐겁게 본 듯 하다. "KYE는 늘 과감하고 유니크하다"며 "너무 재미있지 않았나?"라고 기자에게 말했다.
Day6(3.25)
마침내 찾아온 서울패션위크의 마지막 하루. 하지만 긴장을 늦춰서는 안된다. 이날 이영진이 참여해야 하는 쇼는 총 3개. 4시30분, 5시30분, 6시30분. 시간 간격이 빡빡해 그를 쫓아야 했던 기자에게도 가장 암담했던 일정이었다. 그래도 마지막 서울패션위크라고 기자는 8cm 굽을 신었다. 그동안 필사적으로 이영진의 캣워크를 쫓아다녔으니, 적응도 됐겠지하는 자신감이 생겼다.
DDP에서 이영진과 만난 것은 오후 4시. 첫 쇼인 맥앤로건(MAG&LOGAN) 포토월에 서기 직전이었다. 이영진은 보자마자 "너무 오스칼같지 않냐"며 블링블링한 재킷에 대해 물어봤는데, 속으로 생각했다. '그거, 아무나 소화하지 못하는 옷이라고요...' 한국에서 매니쉬한 룩부터 여성스러운 라인까지 두루두루 잘 소화해낼 수 있는 모델이 이영진 외에 또 누가 있을까 싶다는 생각이 다시 든다.
오후 5시 맥앤로건 쇼가 끝나자마자, 이영진은 재빨리 걸음을 옮긴다. 주차장으로 가서 로우 클래식(LOW CLASSIC) 의상으로 갈아입자마자, 숨 돌릴 틈 없이 다시 쇼장으로 이동한다. 맥앤로건 외에는 웨어러블한 옷이라며 그나마 다행이라고 말하던 이영진. 하지만 의상 단추가 복잡하다. 그나마 모델이라 갈아입는 시간이 1분도 채 안걸리지만, 다른 사람이었다면 그 복잡한 단추 잠그다 하루를 다 보냈을 것이다. 로우 클래식 쇼를 마치고 이동하는 와중, 이영진은 "옷 너무 예쁘지 않았나. 정말 다 입고 싶은 옷 밖에 없더라"고 말했다. 실제 로우 클래식 의상은 요즘 2030 여성들이 좋아하는 모던하고 시크한 스타일이었다. 여담으로, 이명신 디자이너의 외모 역시 대단했다. 그 말을 전하니, 이영진은 "정말 예쁘지 않나. 사실 내 친구"라며 자신이 더 기분 좋아했다.
자, 이제 정말 마지막! 앤디&뎁(ANDY&DEBB)만이 남았다. 파자마 분위기의 편안한 의상이었다. 특별히 이영진의 몸에 꼭 맞게 제작된 이 의상에서 모델을 향한 디자이너의 애정을 느낄 수 있었다. 마지막 쇼라 그런지 긴장을 늦추고 편안하게 즐기자는 마음이 생긴다. 이영진과 DDP 광장을 함께 질주하는 것도 마지막이다.
앤디&뎁은 'We Never Hit the Moon'을 주제로 위트 있는 상상력이 가미된 SF 분위기의 쇼로 연출됐다. 미래적인 무드의 쇼를 보고 있자니, 이영진과 함께 한 지난 서울패션위크가 파노라마처럼 스쳐지나간다.
지금 기자가 있는 이 곳, 패션위크와 런웨이. DDP를 꽉 채운 패피들이 동경하는 패션종사자들의 화려하고 찬란한 무대다. 그러나 이들의 숨겨진 일상은 당연히 화려함 만으로 설명될 수 없다. 이영진은 모델로 활동하던 시절, 신발에 압정이 박혀도 런웨이에 올랐던 적은 부지기수고 신발 사이즈도 230mm부터 260mm까지 다 소화해야했다고 말한 적이 있다. 아직 미완성된 의상 속 옷핀이 온 몸을 찔러대는 아픔 속에서도 런웨이를 걸어나간 일도 많았다고 한다. 그런 직업적 고충을 지나 여기까지 온 이영진. 그녀의 2015 F/W 서울패션위크에 동행해보며 느낀 것은 패션업계에 대한 애정이 상당하다는 것이었다.
모든 번거로움과 수고를 마다하고 이토록 열심히 서울컬렉션을 완성한 이영진. 그녀의 분주한 발걸음은 그녀를 사랑하는 디자이너를 향한 열럴한 지지의 러브레터였다. =배선영기자 sypova@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