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김유리는 MBC 드라마 '킬미 힐미'를 마친 뒤 살짝 들뜬 나날을 보내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사랑해준 작품에 작은 힘이나마 보탤 수 있었다는 것에 대한 보람과 감사함 때문이다. 드라마의 여운에 젖은 듯 얼굴엔 뿌듯함과 작별의 서운함이 서려 있었다.
종영 소감을 묻자 "요나를 방송으로만 보고 연기할 때 직접 만나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며 특별한 애정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목소리에선 애틋함이 묻어났다. 지성이 연기한 7개의 인격들 중 하나인 말괄량이 여고생 요나. 한번은 지성과 촬영하던 도중 그리움을 가득 담아 "요나에게 안부 전해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단다. 그가 얼마나 이 드라마를 즐겼는지 알 수 있는 에피소드다.
지성의 연기에 대한 감탄사도 이어졌다. 김유리는 "나는 무임승차 한 것"이라고 겸손해하며 "옆에서 지켜보는 것도 안쓰러울 정도로 지성 선배가 고생을 많이 했다"고 진심을 꾹꾹 눌러 담아 말했다.
하지만 7개의 다중 인격 캐릭터만으로 '킬미 힐미'가 완성된 건 아니다. 버릴 캐릭터가 하나도 없다. 김유리가 연기한 한채연도 마찬가지. 주인격 차도현의 첫 사랑 한채연은 도도하고 이지적인 '차도녀'의 매력으로 드라마에 다채로운 색깔을 입혔다. 김유리의 중저음 목소리와 빼어난 미모가 캐릭터의 고혹적인 분위기와 잘 어울렸다. 하지만 그는 좀 억울해했다. "입을 다물고 가만히 있으면 차가워 보이나 봐요. 저 그런 사람 아닌데…. 친한 사람들은 드라마에서 포커페이스를 하고 있는 제 모습을 보면서 무척 재밌어해요."
실제로 김유리는 밝고 온화한 기운이 가득한 '따도녀'였다. 이렇게 명랑한데 왜 '차도녀' 이미지가 생겼는지 의아할 정도다. "서른이 넘어서 성격이 더 털털해졌나 봐요. 여유도 좀 생기고, 긴장도 덜하고…. 아줌마스러워진 느낌이랄까요." '푸흡' 쾌활한 웃음이 터졌다. "차도녀 이미지로 고정되지 않고 다양한 역할을 하고 싶은 생각은 늘 갖고 있어요. 하지만 비슷한 캐릭터라도 제가 그 작품에 필요하다면 언제든 할 수 있어요. 저에겐 아직 작품이 더 중요한 것 같아요. 감사한 마음으로 열심히 연기해야죠."
배우는 작품 안에서는 자신을 감추고 캐릭터의 삶을 살아야 한다. '따도녀'가 '차도녀'로 보여야 하듯이 말이다. 그러고 보면 배우는 또 다른 의미의 다중 인격을 갖고 있는 것 같다. 김유리도 "내가 아닌 다른 존재가 되는 카타르시스"가 연기의 매력이라고 했다. "대본에는 에너지가 담겨 있어요. 그 에너지를 눈에 보이도록 연기로 표현하는 게 배우의 몫이에요. 새로운 인격을 만들어내는 거죠. 그 과정이 정말 흥미롭고 재미있어요."
혹시 자기 안에 다른 인격이 있다고 느낀 적 없는지 장난스러운 질문을 던지자 살짝 흥분하면서 눈이 동그랗게 커진다. "제가 화를 잘 안 내는 편인데, 얼마 전에 아동학대에 대한 뉴스를 보고는 얼굴이 시뻘개질 정도로 화가 났어요. 너무나 작고 여린 아이들에게 어떻게 그럴 수가 있죠? 남일 같지가 않더군요. 그래서 아동학대의 상처를 다룬 '킬미 힐미'의 메시지에 더 깊이 공감했던 것 같아요."
김유리가 아동학대 문제에 특별히 더 관심을 쏟는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국제구호단체를 통해 아이들과 결연을 맺어 도울 뿐만 아니라 시간이 날 때마다 보육시설을 찾아가 장애아를 돌보고 있다. "이제 시간이 좀 생기니까 봉사활동도 열심히 할 생각"이라면서 표정이 진지해진다.
앞으로 김유리는 무척 바빠질 것 같다. 벌써 차기작이 정해졌다. 6월 방송되는 JTBC 새 금토드라마 '사랑하는 은동아'에 출연할 계획이다. '청담동 앨리스'(2012), '주군의 태양'(2013), '태양은 가득히'(2014), 그리고 '킬미 힐미'까지 네 작품에서 모두 단발머리를 했던 김유리는 요즘 열심히 머리를 기르고 있다고 한다. 신작 '사랑하는 은동아'에선 그의 새로운 모습을 기대해도 좋을 것 같다. 김표향 기자 suzak@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