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가에 '어벤져스' 바람이 심상치 않다. 돌풍으로 변할 조짐이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어벤져스-에이지 오브 울트론'(이하 '어벤져스2') 개봉이 1주일 앞으로 다가오면서 극장가가 들썩거리고 있다. 16일 오전 8시30분 현재 영화진흥위원회 박스오피스에 따르면 '어벤져스2'의 예매점유율은 무려 75.6%에 달하고 있다. 예매 매출액은 22억6165만원이다. 현재 박스오피스 1위를 달리고 있는 '분노의 질주:더 세븐'의 예매율이 6.9%로 2위, 강제규 감독의 '장수상회'가 4.4%로 3위인 점을 감안하면 압도적인 수치다.
개봉일인 오는 23일까지는 7일이나 남은 상황. '어벤져스2'의 사전 열기는 이례적이다. 개봉이 확정된 상영관이 아직 일부에 불과하고 같은 시기에 개봉할 경쟁작의 예매가 시작되지 않았다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상당한 수치. 블랙홀 처럼 관객을 빨아들일 조짐이다. 일찌감치 과열되고 있는 시장의 열기를 감지한 CGV, 롯데시네마, 메가박스 등 대형 멀티플렉스는 이례적으로 일찌감치 개봉관을 확보해 예매창구를 열었다. 현재 CJ CGV는 150개관, 롯데시네마는 180개관에 대한 예매를 열었고,아이맥스(IMAX)나 4D관 등에서도 조만간 예매를 시작할 예정이다. 메가박스는 이날부터 3D 돌비 애트모스 상영관 예매를 시작했다.
'어벤져스' 돌풍은 두가지 측면에서 예견됐던 일. 올 상반기 최고 기대작으로 일찌감치 꼽히며 꾸준한 화제를 모았다. 전편의 인기에 이번에는 강남대로, 상암동, 마포대교 등 한국 촬영분까지 겹쳐 궁금증이 증폭됐다. 주연배우들의 17일 방한 일정도 기대감을 끌어올리는 요소.
관객을 분산시킬만한 경쟁 대작의 '피해가기'도 '어벤져스2' 입장에서는 호재다. 한국영화는 물론 외화까지 흥행요소를 갖춘 영화들이 알아서 맞대결을 피했다. 다양성 영화나 애니메이션을 빼면 같은 날 개봉할 영화는 김인권 박철민 주연의 '약장수' 정도 뿐이다. 어벤져스의 '독주'가 예상되는 이유.
'어벤져스2'의 무혈입성을 보는 한국영화계의 시선은 복잡하다. 올 들어 빅히트한 작품을 내지 못하고 있는 부진 흐름 속에서 외화 대작의 기세를 꺾을만한 작품이 없기 때문이다. 지난해 말 개봉한 '국제시장'의 메가히트 이후 한국 영화는 주춤하며 큰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 올 초 예상에 비해 선전한 중박 영화들을 꾸준히 배출했지만 외화 대작과 맞설만한 대표주자를 만들어내는데 실패하며 존재감이 약해진 상황. 유행처럼 극장가를 장악하던 복고 열풍이 시들해지면서 폭넓은 대중성을 담보할만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어벤져스2' 개봉 이후에도 이렇다 할 강력한 대항마를 찾아보기 힘들다. 1주일 후인 29일 개봉 예정인 '차이나타운'이 그나마 기대감을 높이는 작품. 차이나타운을 지배하는 냉혈한으로 파격 변신한 김혜수와 충무로의 신성으로 자리매김한 김고은이 호흡을 맞춘다. 모처럼 기대를 모으는 여배우 주연의 영화인데다 '어벤져스2'의 열풍 속에서 한국영화의 자존심을 건 작품이라 어깨가 무겁다.
'어벤져스2'의 모래바람을 피해 납작 엎드린 한국영화는 다음달 14일 개봉할 손현주 주연의 '악의 연대기'를 시작으로 뒤늦은 반격에 나설 전망. 이어 전도연 김남길 주연의 '무뢰한'과 황정민 유아인이 호흡을 맞춘 류승완 감독의 신작 '베테랑' 등이 한국 영화 자존심 회복을 걸고 영화팬들을 만날 예정이다.
정현석 기자 hschung@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