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년 째 '여배우 기근'이라는 말이 우리 영화계를 뒤덮었다. '여배우가 할만한 영화가 없다'는 말도 많았다. 하지만 적어도 2015년 상반기만큼은 그런 말이 통하지 않는 상황이다. 한국을 대표하는 여배우들이 대거 스크린으로 복귀해 이미 티켓파워를 자랑했거나 자랑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카리스마 넘치는 한국의 대표 여배우 김혜수는 2013년 '관상' 이후 2년만에 '차이나타운'으로 스크린에 컴백해 다시 한번 넘치는 카리스마를 과시했다. 그는 이 작품을 위해 여배우라면 포기하기 힘든 미모까지 가리며 열정적인 연기를 선보였다. 영화가 개봉하자 김혜수는 "관객마저 주눅들게 하는 연기"라는 극찬을 받으며 '차이나타운'을 흥행 대열에 들어서게 했다. '차이나타운'은 모두 피해가기를 바랐던 '어벤져스:에이지 오브 울트론'과 유일하게 정면대결을 펼쳐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다. 13일까지 '차이나타운'은 133만 8049명의 관객을 기록하며 손익분기점을 가뿐히 넘겼다. 상업영화치곤 저예산으로 제작된 '차이나타운'이 이같이 좋은 성적을 거둔 것은 다른 요소들도 많지만 김혜수의 힘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것이 중론이다. 게다가 '차이나타운'은 지난 13일 개막한 칸국제영화제의 '비평가주간'에 초청받기도 했다.
김혜수의 바톤은 전도연이 이어받는다. 지난 2007년 칸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며 명실공히 세계적인 톱배우 자리에 선 전도연은 신작 '무뢰한'을 들고 14일 칸으로 떠났다. 오는 27일 개봉하는 '무뢰한'에서도 전도연은 '명불허전'의 연기력으로 관객들을 매료시킨다. 룸살롱 출신으로 인생의 밑바닥까지 떨어진 여자 김혜경을 연기하는 전도연은 얼굴에 드러나는 그 섬세한 감정의 떨림까지 관객들에게 전달하는 연기력을 선보였다. 또 자연스러우면서도 핵심을 찌르는 대사 처리는 그가 왜 '칸의 여왕'이 됐는지를 증명하고 있다.
이어 다음 달 4일에는 임수정이 주연을 맡은 영화 '은밀한 유혹'이 개봉을 기다리고 있다. 범죄멜로를 표방한 '은밀한 유혹'에서 임수정은 천문학적인 재산을 소유한 마카오 카지노그룹의 비서 성열(유연석)에게 위험하지만 매력적인 제안을 받는 여자 지연 역을 맡았다. 지연은 믿었던 친구에게 배신 당하고 사채업자들에게 쫓기며 돈도, 미래도 모든 것이 절박한 여자로 '내아내의 모든 것' '미안하다 사랑한다' 등 멜로 장르물에 유난히 강점을 보였던 임수정의 연기가 기대를 모으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하다.
이외에도 전지현은 '암살'에서 이정재 하정우와 호흡을 맞춰 암살작전을 이끄는 대장이자 독립군 저격수 '안옥윤' 역을 맡았다. 그는 전작의 발랄한 이미지를 벗고, 흔들림 없이 단호한 눈빛과 표정을 통해 굳은 신념의 캐릭터를 완벽히 표현했다. 또 박보영과 엄지원은 공포물 '경성학교:사라진 소녀들'을 통해 컴백한다. 1938년 경성의 요양기숙학교를 배경으로 박보영은 기숙학교의 숨겨진 비밀을 파헤치는 전학생 주란 역을, 엄지원은 교장 역을 맡았다.
이같은 여배우들의 활약에 충무로도 '흥'이 살아나고 있다. 임수정은 '은밀한 유혹' 제작보고회에서 "선배님들이 최근에 좋은 작품으로 나온다. 장르도 더 다양한 것 같은데 그런 분위기에 나도 여배우로서 일조를 할 수 있으면 좋겠다"며 "나도 여배우로서 다양하게 도전할 수 있는 마음은 여전하다. 현재 좋은 영화가 많이 만들어지는 것도 사실이고 관객도 호응을 해줘서 요즘 현상에 대해 기분이 좋다"고 전하기도 했다. 임수정의 말처럼 여배우 '기근'이 아니라 '풍년'이 지속되길 바라는 것은 비단 영화인들만의 마음은 아니다.
고재완 기자 star77@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