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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의 직구, 이제 안통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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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력적으로 상대를 쓰러트리던 '전가의 보도'가 무뎌졌다.

시즌 막바지 5위 확보를 위해 총력전을 펼치고 있는 한화 이글스가 귀중한 1승을 거져 놓치고 말았다. 30일 잠실구장에서 두산 베어스를 상대해 7회초까지 4-1로 앞서다가 순식간에 홈런 2방으로 4-4를 허용하더니 결국 연장 10회에 끝내기 폭투에 힘입어 승리했다. 한화로서는 다 잡은 물고기를 그냥 물에 놔줘버린 셈. 그나마 같은 5위 경쟁팀인 KIA 타이거즈와 SK와이번스가 이날 나랑히 진 덕분에 순위 역전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런데 이날의 패배 과정 중에서 특히나 눈여겨 볼 장면이 있다. 바로 모든 사건의 발단이 된 8회말 김현수의 2점 홈런이 터진 순간이다. 단순히 '상대 4번 타자에게 공략당했다'는 정도로 넘길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이야말로 한화의 향후 행보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문제가 모습을 드러낸 장면이다. 결론적으로 이제 필승조 권 혁은 더 이상 시즌 초반 때처럼 타자를 잡아내지 못한다는 것이다. 또 그 이유는 '직구 구위 저하'로 볼 수 있다.

사실 권 혁은 다양한 구종을 지닌 투수가 아니다. 150㎞에 달하는 강력한 직구와 슬라이더, 가끔 커브도 섞어 던지는 데 비중은 10% 미만으로 매우 적다. 그래서 실제로는 '직구-슬라이더'의 투 피치형 투수다. 그 가운데에서도 가장 강력한 무기, 즉 권 혁의 '전가의 보도'는 바로 직구다. 좌완 투수임에도 최고 150㎞ 초반까지 나오는 강력한 직구를 앞세워 올해 권 혁은 한화의 '승리 수호신' 역할을 해냈다.

그런데 그 '전가의 보도'같던 권 혁의 직구가 최근 자주 얻어맞는다. 게다가 빠른 공의 어쩔 수 없는 숙명인 '반발력' 때문에 장타로 쉽게 이어지고 만다. 당장 30일에 허용한 김현수의 동점 2점 홈런만 해도 그렇다. 김현수는 이미 타석에 나올 때부터 권 혁의 '직구'를 노렸다. 투구 패턴상 가장 들어올 확률이 높은 구종을 먹잇감으로 삼은 건 당연하다. 그래서 초구에 들어온 144㎞짜리 가운데 약간 낮은 직구를 약간 어퍼스윙 식으로 맞혀 중앙 펜스를 넘겼다.

지난 28일 창원 NC전에서 9회말에 1실점(비자책) 했을 때도 비슷하다. 선두타자 손시헌과 1사 후 최재원에게 전부 직구를 던지다 안타를 맞았다. 더 뒤로 가보자. 23일 광주 KIA전. 권 혁은 4-5로 뒤진 7회말 무사 1루 때 등판했다가 볼넷과 몸 맞는 볼 등으로 1사 만루 위기를 맞이한다. 그리고 무명의 황대인에게 볼카운트 1B2S의 유리한 상황에서 146㎞짜리 직구를 던졌다가 2타점 적시타를 맞았다. KIA의 승기를 굳혀주는 쐐기타였다.

권 혁은 6월까지는 평균자책점 3.62에 이닝당 출루허용률(WHIP) 1.42로 팀의 확실한 필승조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7월 이후 현재까지 2개월간은 무척 부진했다. 7~8월의 평균자책점은 무려 5.89나 된다. WHIP도 1.61로 치솟았다. 무엇보다 이 시기에 블론세이브가 무려 4개나 됐다. 시즌 중반 이후의 중요한 시기에 흔들린 것이다.

이같은 후반기 부진의 원인은 결국 최근 실점 사례에서 찾을 수 있다. 권 혁의 최고 무기인 직구의 힘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구속은 나오지만, 전반기만큼의 공끝이 아니다. 그래서 범타가 아닌 장타로 쉽게 연결되는 것이다. 직구 위주의 단조로운 투구 패턴을 지닌 유형의 투수는 직구의 구위가 떨어지면 무너지게 돼 있다. 최근의 권 혁이 바로 이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다. 불펜 투수임에도 압도적인 누적 이닝과 누적 투구수의 여파가 지금의 직구 구위 저하로 이어지고 있는 게 아닌지 우려된다.

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