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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 수밖에 없었던 서울, 이길 수밖에 없었던 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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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연승의 가파른 상승세, 그리고 일주일이란 '긴 시간'이 있었다.

'축구공은 둥글다'는 말을 새삼 실감케 했다. '10년 징크스'는 오히려 독이었다. 자만과 방심의 덫에 걸린 FC서울은 일주일 전과는 완전히 다른 팀이었다.

제주는 눈빛부터 달랐다. 살기가 느껴질 정도로 독이 오를대로 올랐다. 서울전을 앞둔 이틀 전 고참 선수들을 중심으로 하나둘씩 숙소로 모였다. 자발적 합숙이었다. 일주일은 피가 말랐다. 기필코 이기겠다는 절규가 한라산을 깨웠다. 제주는 이미 무서운 팀으로 변해 있었다.

마침내 징크스의 벽이 허물어졌다. 제주의 굴욕은 환희, 서울의 미소는 눈물로 변색됐다. 제주가 29일 제주월드컵경기장에서 벌어진 2015년 현대오일뱅크 K리그 클래식 28라운드 서울과의 홈경기에서 2대1로 승리했다.

2008년 8월 27일 이후 7년간 이어진 서울의 제주전 23경기 연속 무패(15승8무)가 깨졌다. 더 치욕적인 것은 제주의 서울전 홈 무승이었다. 2006년 3월 25일 이후 14경기 연속 무승(7무7패)이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 안방에서 10년 동안 단 한 차례도 웃지 못했다. 10년의 아픔이 치유됐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 두 팀 모두 '결국'을 토해냈다. 그러나 마침표는 극과 극이었다. 서울은 승점 44점에 머물며 선두권 경쟁 진입에 실패했다. 제주는 2연승으로 승점 36점을 기록, 스플릿 6강 전쟁에 본격 가세했다.

▶실수 연발 서울, 이길 수가 없었다

승승장구하던 서울은 굳이 변화가 필요치 않았다. 22일 친정팀 대전과의 홈경기에 결장한 아드리아노가 투톱에 복귀, 박주영과 짝을 이뤘다. 중원에는 몰리나, 다카하기, 오스마르, 좌우측 윙백에는 심상민과 차두리가 출격했다. 스리백에는 김남춘 김진규 이웅희, 골문은 유상훈이 지켰다.

그러나 경기 초반부터 선수들의 몸은 천근만근이었다. 스리백 카드를 꺼내든 제주의 강력한 압박에 패스미스가 속출했고, 볼컨트롤도 수준이하였다. 슈팅 찬스에선 슛 대신 패스를 선택하면서 좀처럼 탈출구를 찾지 못했다. 패스도 아드리아노에게 집중되면서 상대 수비라인의 분산 효과도 미미했다. 수비도 흔들렸다. 특히 왼쪽 라인인 심상민과 김남춘이 실수를 연발하면서 발걸음을 무겁게 했다.

전반 초반 제주 공격수 정영총에게 한 차례 골대를 유린당한 서울은 전반 39분 선제골을 허용했다. 윤빛가람이 페널티에어리어 왼쪽에서 차두리를 따돌리고 그림같은 중거리포로 골네트를 갈랐다.

최용수 서울 감독은 후반 시작과 함께 심상민을 빼고 고광민을 투입했다. 후반 10분 아드리아노가 자신이 얻은 페널티킥을 골로 연결하며 승부를 원점으로 돌렸다. 분위기가 바뀌었다. 제주에는 또 다시 먹구름이 드리워지는 듯 했다.

그러나 그 순간 서울의 결정적인 실수가 나왔다. 후반 18분이었다. 오프사이드의 경계선에서 김진규와 유상훈이 교차했고, 김진규가 볼을 걷어낸 것이 송진형의 몸을 맞고 서울 골문쪽으로 흘렀다. 볼은 송진형의 발끝에 걸렸고, 빈골문을 향해 침착하게 오른발 슈팅으로 연결해 골네트를 갈랐다.

최 감독은 후반 26분 고요한, 29분 윤주태를 투입하며 변화를 꾀했지만 제주의 수비벽은 높았다. 집중력도 떨어지면서 1대1 싸움에선 속수무책이었다. 오스마르의 슈팅은 크로스바를 강타했고, 경기 종료 직전 박주영의 슈팅도 골문이 아닌 허공을 갈랐다. 교체카드 또한 반전이 되지 못했다. 그라운드에선 물론 벤치에서도 중심을 잡지 못했다.

서울은 8월을 전승으로 마무리한 뒤 9월을 기분좋게 여는 시나리오였지만 애초에 '집안단속'부터 실패했다. 최 감독은 "연승 분위기를 이어가고자 했던 바람이 컸다. 그러나 집중력의 차이가 승패를 결정지었다. 제주에는 기분 좋은 징크스였지만 오늘은 징크스가 우리의 발목을 잡은 것 같다. 다시 팀 분위기를 재정비하도록 하겠다"며 고개를 숙였다.

▶결국은 정신력, 제주는 이길 수밖에 없었다

서울만 만나면 제주는 아팠다. 올 시즌을 앞두고 지휘봉을 내려놓은 박경훈 전 감독은 "서울을 상대로 이겨보지 못한 것이 가장 아쉽다"고 했다. 조성환 현 감독 역시 취임일성으로 서울전 승리를 강조했다. 하지만 4월 4일 원정에서 열린 첫 만남에서 0대1로 패한 데 이어 7월 1일 홈에서도 2대4로 완패했다. 조 감독은 첫 일전 후 "다음 경기에서 반드시 빚을 갚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하지만 두 번째 경기에서도 징크스를 깨지 못하자 "죄송스럽다"며 고개를 숙였다.

결국은 정신력이었다. 조 감독은 "이번에 서울전을 준비하면서 확실히 분위기가 달랐다. 이기겠다는 의지가 훈련부터 느껴졌다"고 했다. 자발합숙을 통해 선수들이 하나가 됐다. 고심 끝에 꺼내든 3-5-2 카드도 적중했다. 송진형-윤빛가람-양준아로 이어지는 트라이앵글이 중원을 장악하면서 주도권을 잡았다. 송진형에게 서울 공격의 시발점인 오스마르 마크를 주문했다. 윤빛가람과 양준아에게는 몰리나와 다카하기 봉쇄를 맡겼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아드리아노에게 페널티킥을 허용했지만 수비라인의 투혼도 대단했다.

조 감독은 "역시 간절함을 이길 수 있는 것은 없다. 간절함을 담은 정신력이 승리의 원동력"이라며 "이런 날도 있어야 쌓였던 스트레스도 풀 수 있는 것 아니냐. 끝나고는 우승한 것 같은 기분이더라. 감독 부임했을 때보다 더 많은 축하 전화를 받았다"고 말한 후 활짝 웃었다.

승부의 세계는 냉정하다. 모든 것을 쏟아부은 제주가 이길 수밖에 없었다. 김성원 기자 newsme@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