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 와이번스의 '선발 야구'가 살아났다.
선발 야구란 말 그대로 '선발투수의 호투를 원동력 삼아 불펜진의 부담을 줄이고 타자들이 공수에서 집중력을 발휘하게 하는 야구'를 뜻한다. 지난 6월 초 '지옥의 길'로 들어섰던 SK가 기나긴 3개월여간의 암흑기를 끝내고 마침내 포스트시즌 희망을 품게 된 원동력이 바로 선발 야구의 부활이다.
SK는 지난 20일 인천에서 열린 KIA 타이거즈와의 경기에서 선발 크리스 세든의 호투를 앞세워 9대2로 승리하며 43일만에 5위 자리를 탈환했다. 9월 들어서도 고통 속에서 꾸준히 벌인 선발 야구 덕분이다. 지난달 28일부터 9월 3일까지 5연패에 빠졌을 때만 해도 SK는 포스트시즌 진출이 어려워 보였다. 승률 5할에서 10경기가 부족했고, 5위 한화 이글스와는 2.5경기차로 멀어져 있었다. 타선의 부진과 불펜진 난조, 들쭉날쭉한 로테이션 등 팀의 밸런스가 모두 무너진 상황이었다.
이때 SK를 살린 것은 에이스 김광현이었다. 지난 4일 삼성 라이온즈와의 인천 경기에서 8이닝 5안타 1실점의 역투를 하며 9대1 대승을 이끌었다. 5연패의 종료가 에이스의 어깨로 이뤄졌다. 그때부터 이날 KIA전까지 15경기에서 SK는 10승5패로 뚜렷한 상승세를 이어갔다. 10승 가운데 9승이 선발투수의 몫이었다. 김광현과 세든이 똑같이 3승을 따냈고, 박종훈과 켈리에게 각각 2승, 1승이 돌아갔다. 이들이 일궈낸 9승 모두 퀄리티스타트가 동반됐다. 선발진이 안정을 찾으니 불펜투수들의 역할 분담이 원활해졌고, 수비 시간이 짧아진 야수들도 타석에서 집중력을 발휘했다. 최근 15경기서 SK 불펜진은 12개의 홀드와 4세이브를 따냈고, 타선은 경기당 6.06득점을 올렸다. 선발 야구의 정착이 전체 팀 분위기를 바꿔놓은 게 수치로도 뚜렷하게 나타난다.
왜 진작 선발 야구를 하지 못했을가. 여러가지 이유가 있다. 올해 SK 선발진은 우여곡절이 많았다. 특히 트래비스 밴와트가 부상을 입고 이탈한 것이 뼈아팠다. SK에서 두 번째 시즌을 맞은 밴와트는 4월과 7월 두 차례 부상을 당했다. 4월 16일 넥센 히어로즈전에서 박병호의 강습타구에 발목을 맞아 한 달여간 전력에서 빠졌다. 시즌 초였기 때문에 SK는 그럭저럭 로테이션을 끌고 갈 수 있었다. 그런데 7월 1일 kt 위즈전에서 오정복의 타구에 오른쪽 팔을 맞았을 때는 상태가 심각했다. 뼈에 금이 가 재활에 2~3개월이 걸린다는 진단이 나왔다. 복귀 시점은 9월. 시즌 막판까지 밴와트의 복귀를 기다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눈물을 머금고 밴와트와 작별 인사를 한 SK는 대만에서 와신상담하던 '2013년 에이스' 크리스 세든을 다시 영입했다. 7월 15일 합류한 세든은 그러나 8월 7일까지 첫 5경기에서 1승만 거뒀을 뿐 3패를 당했고, 평균자책점은 11.78에 달했다. 2년전의 세든이 아니었다. 코칭스태프는 "공끝의 묵직함이 무뎌졌다. 제구도 안된다"며 실망감을 나타냈다.
하지만 복귀 후 '적응기'로 보는 이들도 많았다. 세든이 자신감을 얻은 것은 지난 8월 28일 LG 트윈스를 상대로 완봉승을 거두면서다. 그리고 9월 9일 롯데 자이언츠전부터 20일 KIA전까지 3경기 연속 퀄리티스타트를 올리며 3연승을 달렸다. 지금의 세든은 2013년과 다르지 않다는 평가. 세든이 살아나면서 SK는 비로소 로테이션이 자리를 잡게 됐다.
요즘 김용희 감독은 승리 후 인터뷰에서 선발투수가 제 역할을 잘 해줬다는 코멘트를 빼놓지 않는다. 김 감독은 이날 경기를 앞두고는 "이제야 자리를 잡은 붙박이 선발 4명을 가지고 남은 시즌 총력을 기울이겠다"고 했다. 시즌 내내 답답하리만치 투수들의 체력 안배에 신경쓰던 김 감독이 시즌 막판 4인 로테이션의 선발 야구로 승부수를 띄운 셈이다. 노재형 기자 jhno@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