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아주 좀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삼성 라이온즈 소속 일부 선수들의 '불법 해외원정도박' 혐의 사건은 현재 프로야구 선수들의 도덕적 해이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건이다. 삼성은 '명문구단'답게 혐의가 확정되지 않았지만, 이들을 한국시리즈 엔트리에서 제외하겠다며 지난 20일 공식 입장을 밝혔다. 김 인 사장이 직접 대국민 사과문까지 발표했다. 이처럼 명확한 사후 처리에 대해서는 박수를 보낼 만하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선수들의 생각이 바뀌지 않는다면, 이런 사건은 얼마든지 반복될 수 있다. 당장 지난 20일 저녁에 발표한 삼성의 대국민 사과만 봐도 알 수 있다. 이날 김 사장이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한 뒤 약 40여분 뒤에 삼성 구단은 입장 발표전문을 보도 자료로 만들어 언론사에 보냈다. 여기에는 김 사장의 발표문과 간단한 질의·응답 내용이 들어있다. 그런데 이 가운데 납득하기 어려운 대목이 들어있다.
세 번째 질문이다. '의혹 내용에 대해서 본인들은 어떤 입장입니까? 했다 그럽니까? 아니면 안했다 그럽니까?' 여기에 이어진 답변은 '본인들은 그냥 아주 좀 억울하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습니다.'였다.
질문은 하나지만, 내용적으로 두 가지다. 하나는 '혐의 의혹 선수들의 입장은 무엇인가'이고, 다른 하나는 '(도박을) 했는가, 아닌가'이다. 전자는 사안에 관한 선수들의 생각을, 후자는 '네/아니오'를 각각 묻고 있다. 그런데 답은 한 가지 뿐이다. 그냥 '억울하다'고만 했다. 이 답변에서 해당 선수들의 크나큰 도덕적 해이가 드러난다.
일반적인 대화 논리 구조에서 '억울하다'는 말은 '나는 안했다'와 서로 이어진다. 예를 들어, 상대의 의심이 잘못된 것일 때 '나는 그러지 않았다. (당신의 의심에 대해) 억울하다'고 말하는 게 정상적이다. 하지만 정작 선수들은 '억울하다'고만 했지, '나는 안했다'고는 말하지 않았다.
경찰 조사 중이기 때문에 답변을 자제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사회적인 지탄이 쏟아지고, 한국시리즈 엔트리 제외라는 극단적인 처분을 받았는데도 불구하고 '안했다'는 말은 끝내 하지 않은 것도 이상하다. 정말 '억울'했다면, 당당하게 '나는 아니다. 안했다'고 했어야 한다. 만약 구단에 명확하게 이런 입장을 밝혔다면, 삼성은 억울한 누명을 쓰고 있는 해당 선수를 어떻게든 감싸 안았을 것이다. 선수들은 끝까지 '안했다'고는 못했다.
그렇다면 이들이 말한 '억울함'은 과연 어디서 기인한 것일까.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논리다. 정황상 '안했다'고 말하진 못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억울하다'는 건 자신들이 받고 있는 혐의에 대해 매우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는 뜻으로 밖에 생각할 수 없다.
이들의 관념에서 '해외 카지노 출입'과 조직폭력배가 배경에 있는 '불법 환전' 그리고 수천만 원에서 수억 원에 달하는 도박 규모는 별로 큰 문제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여러 항목에서 법의 테두리를 벗어났음에도 그걸 '죄'라고 인식하지 못한다는 건 도덕적으로 큰 문제가 있다는 뜻으로 밖에 해석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별로 대단한 일도 아닌데, 이런 처분을 받는 게 억울하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보인다.
만약 해당 선수들이 정말로 '억울'하다면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해명했어야 한다. 진짜 억울한 누명을 쓴 사람들은 그렇게 한다. 하지만 삼성의 대국민 사과 발표 후 사흘이 지나는 동안 전혀 그런 움직임이 없다. 그러면서 도대체 뭐가 '아주 좀 억울하다'는 것인가.
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