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년전의 '작두 탄 투수교체'가 다시 눈앞에 펼쳐지고 있다.
한국 프로야구 대부흥의 출발점은 바로 9년전에 열린 제1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이었다. 당시 김인식 감독이 지휘봉을 잡은 한국은 최정예로 구성된 일본과 미국 등을 짜릿하게 격파하며 '4강 기적'을 이뤄내 온 국민에게 큰 기쁨을 안겨줬었다.
당시 한국의 놀라운 선전 이유 중 큰 비중을 차지한 것이 바로 최적의 타이밍에 이뤄진 투수교체였다. 경기 흐름과 상대 타자들의 특성을 정확히 읽어내고 한 박자 빠르게 투수를 교체해 최적의 효과를 냈다. 귀신같은 교체 타이밍 때문에 '작두 탄 교체'라고 까지 불렸다. 원래 감독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일이 바로 투수 교체인데, 한국 대표팀은 이 힘든 작업을 오히려 팀의 강점으로 만들었다.
당시 이런 빼어난 투수교체를 해낸 주역은 바로 김인식 대표팀 감독과 선동열 대표팀 투수코치였다. 각각 한화 이글스와 삼성 라이온즈의 지휘봉을 잡고 있던 두 사람은 대표팀에서는 '감독'-'투수코치'로 만났다. 원래부터 투수 교체에 관해서는 서로 일가견이 있는 인물들이지만, 대표팀의 틀 안에서는 업무 분담을 했다. 김 감독이 전체적으로 팀을 이끌고 선 코치는 투수파트를 전담했다. 그래서 당시 대회 이후 김 감독은 "투수교체는 전부 선 코치가 하자는 대로 따랐다"며 공을 돌렸다. 그러나 교체의 최종 승인은 늘 감독의 몫이다. 만약 김 감독이 선 코치가 정확하게 교체 타이밍을 공감하지 않았다면 한 박자 빠른 투수교체는 이뤄지기 어렵다. 그래서 당시의 '작두 교체'는 김인식 감독과 선동열 코치의 합작품이라고 봐야 한다.
이 명품 콤비가 9년만에 다시 '명작'을 만들어내고 있다. 2006년 이후 9년 만에 프리미어12 대표팀에서 다시 뭉쳤다. 당시와는 달리 모두 잠시 현역 감독에서 물러나 있는 두 사람은 일찌감치 대표팀의 감독과 투수코치 파트를 맡아 최상의 결과를 이뤄내기 위해 고심했다.
9년전과는 상황이 많이 달랐다. 2015 프리미어 대표팀 투수진은 여러가지 악재로 인해 '역대 대표팀 최약체'라고까지 평가절하됐기 때문. 대표팀에 소속된 투수들은 무척 자존심 상하는 일이겠지만, 객관적인 평가는 어쩔 수 없다. 때문에 김 감독과 선 코치는 부족한 자원으로 최상의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는 방법에 대해 머리를 맞댔다. 역시 결론은 '물량 공세'와 '빠른 교체'다.
결과는 성공적이다. 한국은 14일까지 치른 예선 4경기에서 11실점(10자책점)을 기록하며 무려 2.73의 좋은 평균자책점을 기록 중이다. 이는 프리미어12 참가국 중 전체 3위에 해당한다. A조 캐나다와 B조 일본이 2.25로 공동 1위다. 한국 대표팀 투수진은 일본전만 제외하고는 막강한 모습이었다. 일본에는 5점을 허용했지만, 대만에서 치른 3경기에서는 총 25이닝 동안 5자책점만 내줬다. 이 기간의 평균자책점은 1.80이다.
이런 결과의 핵심적인 원동력은 역시 적절한 투수교체로 최상의 투수들을 마운드에 올렸기 때문이다. 압권은 14일 멕시코전었다. 깜짝 선발 이태양이 3이닝 동안 2실점한 이후 임창민(1⅓이닝 24구, 2안타 비자책 1실점)-차우찬(3이닝 54구, 1안타 무실점)-정대현(1⅓이닝 17구, 1볼넷 무실점)-이현승(⅓이닝 3구, 무실점)으로 이어지는 완벽한 계투 조합은 마치 9년전 WBC의 '작두 교체'를 연상케했다.
우완 정통파-좌완 정통파-우완 언더핸드-좌완 정통파로 이어지는 스타일의 변화와 칼같은 교체 타이밍 덕분에 한국은 멕시코 타선의 추격을 잠재우고 1점차의 살얼음판 리드를 지킬 수 있었다. 게다가 투구수 관리도 상당히 효율적으로 이뤄져 본격적으로 진행되는 8강 이후의 토너먼트 싸움에도 이들을 활용할 수 있을 전망이다. 9년 만에 부활한 김인식 감독-선동열 투수코치의 '명불허전' 투수교체가 대표팀을 어디까지 이끌 지 기대된다.
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