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피엔딩이었다.
슈틸리케호가 마침내 마침표를 찍었다.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176위인 라오스(한국 48위)는 2015년의 대미를 위한 제물이었다. 올해 마지막 A매치도 대승으로 막을 내렸다.
적수가 아니었다. 한국은 17일(한국시각) 비엔티엔국립경기장에서 벌어진 2018년 러시아월드컵 아시아지역 2차예선 G조 6차전 라오스와의 원정경기에서 5대0으로 완승했다. 촘촘하게 늘어 선 밀집수비, 울퉁불퉁한 그라운드 컨디션, 고온다습한 날씨 등 열악한 환경은 변수가 되지 못했다. 한국은 전반 3분과 32분 기성용(스완지시티)의 멀티골을 필두로 전반 34분 손흥민(토트넘), 전반 43분 석현준(비토리아FC)에 이어 후반 22분 손흥민이 또 다시 골망을 흔들었다.
6전 전승(승점 18점), 무결점의 연승 행진을 벌인 슈틸리케호는 사실상 최종예선 진출을 확정지었다. 2차예선에선 각 조 1위가 본선에 직행한다. 2위 쿠웨이트(승점 10·3승1무1패·골득실 +11)가 있지만 대세에는 지장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정부의 체육 정책 개입으로 FIFA로부터 자격정지를 받은 쿠웨이트는 이날 미얀마와의 원정경기를 소화하지 못했다. 징계가 풀리지 않으면 쿠웨이트의 월드컵 운명은 끝이다. 3위 레바논도 승점 10점(3승1무2패·골득실 +7)이다. 하지만 2경기 밖에 남지 않아 전승을 하더라도 한국을 넘어설 수 없다. A매치는 내년 3월 재개된다. 한국은 3월 24일과 29일 레바논, 쿠웨이트와의 홈경기를 끝으로 2차예선을 마감한다. 9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에 도전하는 슈틸리케호의 러시아행 마지막 관문인 최종예선은 8월 시작된다.
▶한국 축구 새 장 열다
대단한 한 해였다. 슈틸리케호의 2015년 여정은 호주아시안컵이 출발점이었다. 7년 만의 우승컵을 품에 안은 동아시안컵을 거쳐 러시아월드컵 아시아지역 2차예선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A매치 20경기를 소화했다. 16승3무1패를 기록했다. 유일한 1패는 연장 접전 끝에 1대2로 패한 개최국 호주와의 아시안컵 결승전이었다. 승률이 무려 80%다. 1980년대 이후 최초다. 한국 축구는 1950년 100%(2전승), 1978년 90%(20전18승), 1962년 86%(7전6승), 1979년 83%(6전5승), 1956년 80%(10전8승)의 승률을 기록했다. 80% 이상의 승률은 1979년 이후 36년 만이다.
한국 축구사도 새롭게 작성했다. 무실점 기록은 일찌감치 경신했다. 라오스전에서 한 경기를 더 추가해 17경기 무실점을 자랑했다. 무실점 경기 2위는 1970년과 1975년, 1977년, 1978년 기록한 13경기였다.
지구촌 축구에도 한 획을 그었다. 올 한 해 44득점-4실점은 세계가 놀랄 대기록이다. 경기당 평균 실점률은 0.20골이다. 실점률은 FIFA 가맹 209개국 가운데 루마니아(0.17골)에 이어 2위에 해당하는 기록이다.
연속 무실점 경기는 7경기로 늘어났다. 역대 공동 2위다. 한 경기 만 더 추가하면 1970년 8경기와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된다. 또 월드컵 예선 6연승 무실점 승리도 1990년 이탈리아월드컵 예선(6연승 25득점-무실점)과 함께 공동 1위에 위치했다. 연간 최다 승리(16승)는 1975년과 1978년 18승에 이어 역대 2위로 피날레를 장식했다.
▶내년이 더 기대되는 이유
슈틸리케 감독은 상대에 따라 4-2-3-1과 4-1-4-1 시스템을 번갈아 꺼내들었다. 그는 8월 동아시안컵에서 우승한 후 대표팀의 골격이 완성됐다고 선언했다.
기성용 손흥민 이청용(크리스탈팰리스) 곽태휘(알 힐랄) 구자철(아우크스부르크) 박주호(도르트문트) 김영권(광저우 헝다) 등 기존의 해외파가 건재했다. 슈틸리케 감독의 매직이 함께했다. 찍은 선수는 어김없이 뭔가를 해냈다. 첫 작품이 이정협(부산)이었다. '신데렐라'의 대명사였다. 후속 작품들도 '대박'이었다. 이재성(수원) 권창훈(수원) 정우영(빗셀 고베)에 이어 석현준(비토리아FC) 황의조(성남) 등도 슈틸리케호에 뿌리를 내렸다.
'신데렐라' 열풍은 팀 분위기를 바꿔놓았다. 기존 선수들이 위기를 느꼈다. 생존을 위해서는 모든 것을 쏟아부을 수밖에 없는 환경이 조성됐다. 플랜A와 B의 경계도 없다. 기회가 찾아오면 누구든 전력을 다할 수밖에 없다. 작은 틀의 실험도 계속되고 있다.
슈틸리케호의 문화는 고정관념의 탈피였다. 내년에는 차원이 다른 무대인 최종예선의 막이 오른다. 올해보다 내년이 더 기대되는 이유는 유연성이다.
올해의 흐름을 유지한다면 아시아 무대에선 적수가 없어 보인다. 김성원 기자 newsme@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