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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명보 감독에게 미래 맡긴 항저우 그리고 뚝심 계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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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7월 10일, 그의 축구 시계가 멈췄다.

"내 명예는 축구에서 얻었다. 축구에서 떨어져도 아무렇지 않다. 다만 축구 인생에서 항상 성실하게 임했고 최선을 다했다." 살아있는 한국 축구 전설의 퇴장은 쓸쓸했다.

그도 사람이다. 지쳤다. 세상에 나오는 것이 두려웠다. 지도자 생활을 그만둘까도 고민했다. 지난해 K리그와 J리그의 몇몇 팀에서 러브콜이 있었다. 하지만 용기가 나지 않았다. 올해 스토브리그에서 그의 이름은 다시 한번 세상과 마주했다. 중국과 일본에서 러브콜이 쇄도했다. 그의 가치는 해외에서 먼저 인정했다.

지도자 인생의 2막이 열렸다. 홍명보 전 A대표팀 감독(46)이 축구와 다시 호흡을 시작했다. 1년 5개월 만에 그라운드로 돌아왔다. 홍 감독은 17일 중국 슈퍼리그 항저우 뤼청(그린타운)의 사령탑에 선임됐다. 계약기간은 2년이다.

협상테이블은 지난달 열렸다. 몇 가지 문제가 있어 결론이 쉽게 나지 않았다. 가장 큰 걸림돌은 중국 시장 특유의 불안정 요소인 옵션이다. 8위 아래로 떨어질 경우 1년 후 경질할 수 있다는 '독소 조항'이 삽입됐다. 홍 감독은 거부했고, 줄다리기 끝에 옵션이 빠졌다. 홍 감독의 연봉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20억원선인 것으로 알려졌다.

프로구단 감독으로는 첫 발을 내디뎠다. 2005년 지도자로 변신한 홍 감독은 무대는 대표팀이었다. A대표팀과 올림픽대표팀 코치를 거쳐 2009년 20세 이하 대표팀 감독에 선임된 그는 그 해 사령탑 데뷔 무대인 이집트 국제축구연맹 청소년월드컵에서 18년 만의 8강 진출을 이끌었다. 2010년 광저우아시안게임 동메달에 이어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는 한국 축구의 새 역사를 썼다. 사상 첫 올림픽 동메달을 수확했다. 지도자로서 꽃이 만개했다.

독보적인 존재였다. 주변에서 그를 가만두지 않았다. 쉼표는 잠깐이었다. 2013년 6월 24일 A대표팀 사령탑으로 발탁됐다. 그러나 월드컵의 벽은 높았다. 2014년 브라질월드컵에서 1무2패로 16강 진출에 실패하며 첫 시련을 맞았다. 악재가 겹치면서 382일 만에 도중하차했다.

홍 감독은 명예회복의 무대로 항저우를 선택했다. 항저우 축구 철학과 강한 러브콜이 그의 마음을 움직였다. 홍 감독이 이끌 항저우는 일본의 오카다 다케시 감독이 지휘했던 팀이다. 1998년 창단됐고, 1부에서 최고 성적은 2010년의 4위다. 2012년부터는 10위권 밖으로 밀려났다. 2015년에는 11위에 머물렀다.

항저우는 타 구단에 비해 재정이 넉넉하거나 리그에서 경쟁력이 있는 선수들로 구성된 팀은 아니다. 하지만 어느 구단보다도 각 연령별 중국대표팀 선수들을 많이 배출할 정도로 선진국형 유스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현재도 젊고 가능성이 높은 선수들로 구성돼 있고, 홍 감독에게 팀의 미래를 맡기고 싶다는 열망을 보여줬다.

홍 감독은 "중국에서는 처음으로 하게 되는 도전인 만큼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역량을 최대한 발휘하여 구단의 미래가 밝은 팀으로 만들고 싶다. 당장의 성적도 중요하겠지만 항저우가 원하는 부분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인지했기 때문에 감독으로 책임감을 가지고 항저우 구단 선수들의 성장에 기여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긴 터널을 빠져나온 홍 감독의 임기는 내년 1월 1일부터 시작된다. 걸어온 길과는 또 다른 출발선이다. 홍 감독의 새로운 도전이 화사한 봄이 되기를 기대한다. 김성원 기자 newsme@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