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성원 보내줬는데 아쉽게 됐습니다. 고마웠습니다."
30일 천안종합운동장에서 열린 포르투갈과의 2017년 국제축구연맹(FIFA) 20세 이하(U-20) 월드컵 16강전 1대3 패배 후 믹스트존을 빠져나가던 신태용 감독이 남긴 말이다. 평소와 다를 것 없는 말투였다. 표정도 미소였다. 그런데 걸음이 빨랐다. 순식간에 나갔다. 쓰린 상처를 보이고 싶지 않았다. 괴롭지만 내색할 수 없는 것. 속이 타들어가는 고통 속에서도 웃는 것. '난 놈'은 헤어질 때도 다른 모양이다.
'신태용의 아이들'은 8강, 그 이상을 노래했다. 한데 주어진 시간은 짧았다. 선수들의 소속팀 출전도 적었다. 그야말로 맨땅에 헤딩했다. 그래도 여유를 가졌다. 여유있는 '척'이라도 해야 했다. 타고난 '난 놈' 기질은 어디 안 갔다.
우려가 많았다. 국내에서 열리는 대회라 더 걱정이 많았다. '과연 될까?' 신 감독은 웃었다. "하는 데까지 해봐야지. 그러라고 나를 여기 앉힌 건데."
내색하진 않았지만 지난해 11월 U-20 대표팀 지휘봉을 잡을 때 신 감독의 마음은 복잡했다. "다들 위로 올라가는데 나는 왜 자꾸 아래로 내려가나 싶다." 선임 당시 신 감독이 했던 말이다. 신 감독은 A대표팀 코치를 하던 중 올림픽 대표팀을 이끌고 리우올림픽에 나섰다. 그리고 불과 3개월 뒤엔 U-20 대표팀을 맡았다.
항상 많은 패를 쥐고 다니는 신 감독. 그래서 '여우'라고 불리는 난 놈. 모든 경우의 수를 호주머니에 넣어두기로 했다. 오기가 생겼다. 결과로 보여주고 싶었다.
분위기는 좋았다. 지난 3월 4개국 초청대회에서 우승을 했다. 그리고 월드컵을 앞두고 치른 우루과이(2대0 승), 세네갈(2대2 무) 평가전에서도 지지 않았다. '신태용의 시대'가 막이 오르는 듯 했다.
조별리그에서 기니, 아르헨티나를 차례로 격파하고 16강 진출을 조기에 확정했다. 웃음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내심 결승 진출도 꿈꿔봤다. 적어도 그 땐 그럴만 했다.
그런데 먹구름이 끼기 시작했다. 26일 잉글랜드와의 조별리그 3차전에서 0대1로 졌다. 그래도 위안 삼았다. 이승우 백승호를 아꼈다.
하지만 4일 뒤 미소는 눈물로 바뀌었다. 포르투갈에 패하며 항해를 마쳤다. '막내' 조영욱이 울었다. 백승호도 고개를 떨궜다.
얼마나 아쉬울까. 또 얼마나 괴롭고 아플까. 쓰라린 정도를 가늠할 수 조차 없다. 그래도 신 감독은 웃는다. 감독이니까. 선수들의 '아빠뻘'되는 난 놈이니까. 더 어깨 폈다. "이런 말 하면 욕먹겠지만 우리 홈경기이고 우리 축구팬들을 위해서 꼭 이기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수비조직에서 실수한 것은 아쉽다. 그렇지만 세계대회에서 성적을 위해 수비 위주로 슈팅수를 적게 가져가고 점유율만 높이면서 1대0으로 이기는 것보다 세계적인 팀과 대등하게 경기하면서 이기는 것이 한국축구가 한걸음 더 나아가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제2의 난 놈' 이승우도 그렇다. 당당하다. 이승우는 "아쉽고 후회되는 게 많다. 우리를 이긴 포르투갈이 좋은 성적 거두길 바란다"며 "졌지만 꿈이 있다. 넘어져도 일어서는 게 남자"라며 힘주어 말했다. 끝까지 이승우다웠다.
'져놓고 당당해?' 범인은 이해하기 어렵다. 그런데 이들의 웃음은 다른 의미다. 그만큼 괴롭다는 뜻이다. 아픔을 감추고 끝까지 떳떳하고 싶은 자존심이다. 최선을 다 했기에 지을 수 있는 표정이다. 그게 '난 놈들이 이별하는 방식'이다. 임정택 기자 lim1st@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