넥센 히어로즈의 이정후는 사실상 신인왕을 예약해 놓은 상태다.
지금까지 신인왕 자격을 갖춘 선수 중 이정후와 대적할만한 상대가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정후는 22일 현재 91경기 전 경기에 출전하며 타율 3할3푼4리, 2홈런, 31타점, 71득점을 기록 중이다. 타격 11위, 득점 3위, 최다안타 8위(112개) 등의 굵직한 성적을 내고 있다. 이정후가 신인왕을 수상한다면 2007년 임태훈(두산) 이후 10년만에 탄생하는 순수 신인왕이 된다. 게다가 2001년 김태균(한화) 이후 16년만에 만나는 순수 고졸 타자 신인왕이다.
지난해 이정후를 1차 지명으로 뽑으며 가능성이 크다고 얘기를 했고, 이후 스프링캠프 등을 통해 이정후를 테스트하며 1군에 기용하는 등 넥센이 이정후를 키우려는 노력을 할 때만해도 이 정도까지 좋은 성적을 낼 줄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프로의 위력적인 직구와 변화구를 대처하기가 쉽지 않은데다 장기 레이스를 할 수 있는 체력을 갖추는 것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정후가 이렇게 입단 첫 해부터 잘할 수 있었던 것은 물론 그의 타고난 자질 덕분이다. 넥센 장정석 감독은 "타고난 것 같다"라고 이정후가 될성 부른 떡잎이었다고 했다. "아무래도 아버지를 닮아서인지 집중력도 좋고, 멘탈도 좋아 강단이 있다"라며 야구를 잘할 수 있는 끼가 있었다고 했다.
물론 넥센의 사려깊은 배려도 있었다. 입단 때는 내야수, 아버지와 같은 유격수였으나 넥센은 곧바로 그를 외야수로 전업시켰다. 타격 자질은 좋은데 수비가 약했던 이정후가 타격에만 매진할 수 있도록 했다. 못하는 것을 잘하도록 보완하기 보다 잘하는 것에 더 집중하도록, 이정후의 장점을 더 키우게 했다.
이정후는 6월에만 타율이 2할9푼8리였을뿐, 월별 타율이 모두 3할을 넘겼다. 특히 모두가 지치는 시기인 무더운 7월에 3할6푼5리로 고타율을 보여주고 있다.
넥센의 체력관리가 얼마나 뛰어난 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라 할 수 있다. 신인이지만 주전들과 다름없이 충분한 휴식을 줬다. 보통 젊은 선수들은 1군에 있어도 훈련을 좀 더 시키기도 한다. 아무래도 기존 프로 선수들보다는 모자라는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넥센은 그에게 다른 선수들과 다름없는 휴식을 줬다. 체력이 떨어지지 않도록 2∼3일 동안 선발에서 제외하기도 했고, 3연전 중에서도 하루는 훈련을 쉬게 해주면서 체력 관리를 했다.
넥센의 홈구장이 고척 스카이돔인 것은 자연스럽게 이정후가 더운 여름에도 지치지 않도록 도움이 됐다.
아버지 이종범은 입단 첫 해 한국시리즈 MVP에 올랐지만 당시 경쟁자였던 양준혁(삼성)에게 신인왕을 내줬다. 아버지의 한을 아들이 풀 수 있을 것 같다. 고척=권인하 기자 indyk@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