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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이너도 없는 수영대표팀 '이게 국대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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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악한 지원에 대해 신경을 쓰면 제게 마이너스가 될 뿐이에요. 제가 할 일을 다하는 것이 중요해요. 그래도 아쉬움은 있어요. 그들과 비슷한 지원을 받는다면 기대에 부응하지 않았을까라는 아쉬움."

지난 27일 헝가리 부다페스트 세계수영선수권 여자평영 200m 준결선 경기 후 믹스트존, '여자수영 에이스' 백수연(26·광주시체육회)은 눈물을 펑펑 쏟았다. 어쩌면 마지막일 지 모를 세계선수권 무대, 결선행 꿈을 이루지 못한 아쉬움은 그 어느 때보다 컸다.

조심스럽게 대표팀 지원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대한민국 수영 대표팀에는 물리치료 트레이너가 없다. 수영은 종목 특성상 경기 전후 회복을 위해 근육을 풀어주는 것이 절대적이다. 경기력에 큰 영향을 미친다. 예선, 준결선, 결선까지 살인 스케줄, 극심한 경쟁 속에 매경기 풀스퍼트해야 하고, 0.01초에 승부가 갈리는 세계선수권 무대는 더욱 그렇다.

결국 비용 문제였다. '대한체육회 관리단체'인 대한수영연맹은 "트레이너를 파견할 돈이 없었다"고 털어놨다. 백수연은 "훈련을 하다가 정말 힘들 때, 조심스럽게 다른 선수, 전담팀 선생님께 마사지를 부탁하곤 했어요. 흔쾌히 해주셨어요. 그래도 제 입장에서는 눈치를 볼 수밖에 없죠." 2년 후 광주세계수영선수권을 개최한다는 대한민국 국가대표 수영 대표팀의 현실은 참담했다.

▶두 종류의 수영 국가대표

부다페스트 세계선수권 현장의 수영 국가대표는 두 부류로 구분된다. 전담팀이 함께 온 경우, 그리고 그렇지 않은 경우다. 지원은 하늘과 땅 차이다. 박태환(28·인천시청), 안세현(22·SK텔레콤) 김서영(23·경북도청) 등은 코치진, 체력 트레이너, 물리치료 트레이너가 동행했다. 박태환은 자비로, 안세현과 김서영은 소속팀에서 모든 자금을 지원했다.

17명의 대표선수 중 전담팀 지원을 받는 선수는 이들 3명뿐이다. 14명의 대표선수(남자 6명, 여자 8명)들은 트레이너도 없이 감독 1명, 코치 3명과 함께 대회에 나섰다. 대표팀 선수들의 상황은 열악했다. 싱크로나이즈드 스위밍, 다이빙 종목도 사정은 다르지 않았다. 지난해 대한수영연맹이 관리단체로 지정된 이후 모든 의사결정이 늦어졌다. 경영 대표팀 선발전 자체가 늦었다. 대표팀 코칭스태프는 5월 말 확정됐고, 진천선수촌 선수 소집은 6월 19일에야 이뤄졌다. 각 팀에서 막바지 훈련중이던 선수들 중 3명만이 입촌했다. 전담팀 선수들은 6월 초 일찌감치 유럽 현지에서 적응훈련을 시작했지만, 대표팀 선수들은 역시 돈 문제로 경기 사흘 전에야 현지에 도착해 몸을 풀었다. 팔다리가 너무 아프고 힘들면 전담팀 트레이너에게 조심스럽게 마사지를 부탁했다. 흔쾌히 도움을 자청했지만, 받는 선수 입장에서는 마음이 편할 리 없었다.

수영 대표팀에서는 단 1명의 선수도 결승에 오르지 못했다. 전담팀의 적극적인 후원속에 박태환, 안세현, 김서영 3명의 선수는 모두 결승에 올랐고 뜨거운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트레이너도 없는 '이게 국대냐'

전종목을 통틀어 태극마크는 선수들의 로망이자 최고의 영예다. 국가대표팀은 나라를 대표하는 만큼, 최고의 지원을 받는다. 대한민국 수영 대표팀은 다르다. '진천선수촌에 들어가면 기록이 퇴보한다'는 설이 진실로 통한다. 대부분의 선수들은 개인 코치와 클럽팀 훈련을 고집한다. 박태환, 안세현처럼 전담팀의 전폭적인 지원 속에 호주, 미국 등에서 촌외 훈련을 희망한다.

부다페스트 현장에서도 한국 대표팀의 분위기는 가라앉아 있었다. 그저 자신의 경기에만 참가할 뿐, '원팀'의 분위기는 찾아볼 수 없었다. 차기 광주세계선수권을 유치하는 국가대표의 자부심도 없었다. 선수들을 독려하는 코칭스태프의 모습도 좀처럼 눈에 띄지 않았다. 단 1개의 메달도 따지 못했다.

2020년 도쿄올림픽, 2021년 후쿠오카세계선수권을 준비하는 일본 선수단의 분위기는 확연히 달랐다. 일장기 아래 대표팀 감독, 코치, 트레이너들이 매경기 후 한자리에 모여들었다. 함께 몸을 풀고, 대화를 나누고, 함께 파이팅을 다짐했다. 30일 오후까지 은메달 3개, 동메달 4개 총 7개의 메달을 목에 걸었다.

▶연맹과 체육회는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대한수영연맹은 집행부의 불법 비리 행위, 재정 악화 등의 이유로 지난해 3월 대한체육회 관리단체로 지정됐다. 10년 넘게 연맹을 이끌어온 임원들의 불법 비리 혐의가 불거졌고, 일부는 유죄를 선고받아 복역중이다. 어른들의 잘못이 고스란히 현장 선수, 지도자들의 피해로 이어지고 있다.

관리단체에 대한 '국고' 지원이 끊기면서 가뜩이나 열악했던 현장은 더욱 힘들어졌다. 대한양궁협회 회장사인 현대자동차는 연간 20억 원 이상을 후원한다. 대한펜싱연맹 회장사인 SK텔레콤은 연간 12억~20억원을 출연해 선수들을 지원한다. 대한탁구연맹은 회장사 대한항공이 연간 10~12억원을 투자한다. 관리단체로 지정된 후 후원이 끊긴 수영 현장은 표류하고 있다. 회장을 맡겠다는 이도 선뜻 나서지 않는다. 연맹은 관리단체라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하고, 수영 현장을 모르는 체육회는 선수들의 고충을 세심하게 챙기지 못하고 있다.

결국 관리단체인 연맹 운영의 관리 책임은 대한체육회에 있다. 심지어 이기흥 체육회장은 대한수영연맹 회장 출신이다. 지난 19일 헝가리 세계선수권 현장도 직접 방문했다. 관리위원회 구성에도 직접 관여했다. 지난 3월 16일 대한체육회 제4차 이사회에서 "관리위원회 위원장, 부위원장, 위원은 '회장이 추천한 사람'으로 이사회에 동의를 받아 위촉한다"고 결의했다. 트레이너도 없는 대표팀, 수영 국가대표 선수들의 가슴 아픈 눈물은 어른들의 책임이다. 대한수영연맹의 관리단체 해제, 정상화가 시급하다.

수영 대표팀의 혁신이 필요하다. 이미 클럽, 소속팀 중심의 선수 양성 시스템이 굳어진 만큼 '대표팀 무용론'도 불거진다. 미국, 호주처럼 각 클럽에서 훈련하고 국제대회 스케줄에 맞춰 2주 정도 소집해 한시적으로 대표팀을 운영하자는 것이다. 진천선수촌은 오히려 국가대표 상비군 유소년, 꿈나무들의 훈련 공간으로 활용하자는 주장도 나온다. 종목 특징에 맞춰 제도적 정비와 개혁이 필요한 부분이다.

"열악한 지원에 대해 신경을 쓰면 제게 마이너스가 될 뿐이에요. 제가 할 일을 다하는 것이 중요해요." 선수들은 여전히 씩씩하다. 세상의 모든 연맹과 체육회는 이 선수들을 위해 존재한다. 선수를 격려한다는 것은 윗사람이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몇 마디 인사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소리없이 부족한 곳을 채워주고, 실질적으로 후원하고, 행동으로 지지하는 것이어야 한다. 물 맑은 수영장에서 행복한 수영선수들을 보고 싶다. 부다페스트=이건 기자 bbadagun@sportschosun.com 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