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강한 팀은 특정 선수의 활약도에 좌우되지 않는다. 이번 시즌 남자 프로농구에서 전주 KCC 이지스가 그런 모습을 보여줬다.
KCC는 지난 12일 전주 실내체육관에서 열린 2017~2018 정관장 프로농구 서울 삼성 썬더스와의 경기에서 84대75로 이겼다. 전반까지는 42-41로 간신히 앞섰지만, 후반에 삼성의 끈질긴 추격을 물리치고 9점차 승리를 완성했다.
이날 승리는 의미가 크다. 홈 7연승과 더불어 지난 2015~2016시즌 최종전 이후 무려 659일 만에 리그 단독 1위로 올라섰기 때문. 전날까지 1위였던 서울 SK 나이츠와 3위 원주 DB 프로미가 같은 날 서울 잠실 학생체육관에서 연장 접전을 펼친 끝에 DB가 승리하며 선두권 순위에 지각 변동이 일어났다. KCC가 0.5경기차 단독 1위, SK와 DB가 공동 2위가 됐다.
그런데 이날 KCC의 승리에서 주목할 만한 점이 하나 있다. 팀의 핵심 선수인 이정현이 고작 1득점에 그쳤는데도 이겼다는 것. 이날 이정현은 24분12초 동안 코트에 나섰지만, 자유투 2개 중 1개만 성공했다. 그 밖에는 리바운드 1개와 어시스트 4개, 스틸 1개를 기록했을 뿐. 2점슛은 2개를 던져 모두 실패했고, 3점슛 역시 4차례의 시도가 모두 빗나갔다.
이날의 이정현은 평소에 비해 눈에 띄게 부진했다. 기본적으로 경기 초반부터 몸이 무거워보였고, 더구나 삼성 수비진의 집중 마크도 받았다. 그 결과 이번 시즌 한 경기 최소 득점에 그쳤다. 이전 경기까지 그의 경기당 평균 득점은 13.1점이었다. 바로 직전 경기인 지난 10일 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전에서는 이날과 비슷한 26분30초를 뛰었지만, 16득점(7리바운드, 2어시스트)을 기록했다.이정현의 부진은 팩트다.
하지만 분명히 해둘 게 있다. 이정현의 부진을 지적하자는 게 아니다. 아무리 뛰어난 선수라도 때에 따라 경기가 잘 안 풀릴 수 있다. 이정현이 비록 이번 시즌 남자 프로농구 최고 연봉자(9억원)이긴 해도 만날 좋은 활약을 펼치리라는 보장은 없다. 컨디션이 좋지 않거나 상대 수비와의 상성이 맞지 않을 경우, 이날 삼성전처럼 기록이 저조한 경기도 얼마든지 나올 수 있다.
핵심은 다른 데 있다. 팀의 주요 전력인 이정현이 부진했음에도 KCC가 승리를 거뒀다는 점이다. 이정현의 부진을 동료들이 메워준 덕분이다. 모처럼 하승진이 13득점-9리바운드로 맹활약을 했고, 식스맨 송교창은 1쿼터에 7득점을 했다. 리바운드도 6개를 따낸데다 경기 막판 귀중한 슛 블록까지 기록했다. 또 백업 가드 이현민은 7분을 뛰며 어시스트 4개를 했고, 신인 가드 유현준은 3쿼터에 귀중한 3점슛 1개를 포함해 1리바운드, 2어시스트를 기록했다. 찰스 로드(24득점, 7리바운드)와 안드레 에밋(19득점, 7리바운드, 3어시스트)은 기본적으로 제 몫을 했다.
어차피 농구는 팀 스포츠다. 특정 개인이 잘 한다고 해서 이길 순 없다. 반대로 한 선수가 부진해도 팀 플레이가 잘 이뤄지면 이길 수 있다. 그리고 이런 식으로 팀워크가 원활히 이뤄지는 팀이야말로 진짜 강팀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KCC는 지금 그런 모습으로 진화하고 있다. 이정현이 1점을 넣어도 이기는 방법을 삼성전에서 보여줬다. 이런 기조가 유지된다면 KCC의 순항은 계속 이어질 듯 하다.
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