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야구위원회(KBO)는 지난해 국가대표팀 전임감독 체제로 도입했다. 한국 프로야구 역사상 최고 투수이자, 감독으로 한국시리즈 2회 우승을 이끌었던 선동열 전 KIA 타이거즈 감독에게 대표팀 지휘봉을 맡겼다. 그는 지난해 11월 아시아프로야구챔피언십(APBC) 대회를 통해 '제1기 선동열호'를 선보였다.
스포츠조선은 한국야구의 새 부흥기를 이끌기 위해 고민하고 있는 선 감독을 만났다. 그에게 야구 대표팀의 미래, 그리고 한국 야구가 더 내실있게 성장하기 위한 길을 물었다.
▶다시는 일본에 지지 않겠다
선 감독은 지난 11월 열린 APBC 대회를 통해 국가대표팀 감독 데뷔전을 치렀다. 대표팀 엔트리를 구성할 때부터 그는 이 대회를 '새 대표팀의 가능성을 시험하는 무대'라고 했다. 3년 임기를 보장받은 전임감독으로서 '큰 그림'을 그린 것이다. 그래서 와일드카드도 뽑지 않았다.
하지만 결과 자체로만 보면 좋지 못했다. 3경기에서 1승2패. 2패 모두 숙적 일본에게 당했다. 젊은 패기를 보여준 '제1기 선동열호'에게 격려와 더불어 비판이 쏟아진 이유다. 선 감독 역시 이런 점을 잘 알고 있었다.
선 감독은 "친선경기 성격이 강했고, 만 24세 이하 젊은 선수들을 주축으로 한 첫 대회였다. 젊은 선수들에게 미래를 위해 많은 경험을 주고 싶었다"면서 "하지만 일본에 두 번이나 진 건 확실히 잘못된 일이다. 다음에 만나면 지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후배들이여, 도전의식을 가져라
선 감독이 대표팀 전임 감독을 맡으며 강조한 게 '새 인물의 발굴을 통한 세대 교체'다. 말로 하기는 쉽지만 실제로는 지극히 어려운 일이다. 선 감독은 "야구팬이나 언론 모두 세대교체의 중요성에 관해 이야기한다. 전임 감독으로 그 점을 신경쓰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그게 무척 어려운 일이다"고 어렵게 말문을 열었다.
선 감독은 "세대교체가 어려운 건 젊은 선수들이 기존 선수의 기량을 뛰어넘지 못하기 때문이다. 특히 투수 쪽을 보면 더욱 그렇다. 류현진, 김광현, 양현종 이후 새로운 에이스급 선수가 안 나오지 않나. 새 인물들이 계속 나오면 세대교체는 자연스럽게 된다. 결국 여기서 자꾸 정체가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선 감독은 "후배 선수들이 '선배를 이기겠다'는 도전의식을 보여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큰 집을 지으려면 기초를 잘 다져라
젊은 선수들, 특히 투수들의 경쟁력 약화가 세대교체를 가로막는 주 요인이라는 선 감독의 지적은 특히나 음미해 볼만 하다. 이는 대표팀 뿐만 아니라 프로야구 전체 수준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극심한 타고투저의 근본 원인도 여기서 찾을 수 있다는 게 선 감독의 생각이다.
선 감독은 아마추어 시절부터의 잘못된 훈련 방법을 지적했다. 그는 "내가 이런 얘기를 하면 아마추어 지도자들이 싫어하겠지만, 할말은 하겠다"고 이야기를 이어갔다.
'집 짓기'를 예로 들었다. "큰 집이나 높은 빌딩을 만들려면 기초 공사부터 해야 한다. 야구로 치면 하체 위주의 기초 체력과 기본기 훈련이 필수"라고 했다. 이어 "요즘 아마야구에서는 이런 훈련을 잘 시키지 않고 있다. 사실 이런 훈련이 힘들고 재미도 없어서 선수들은 기피하고, 지도자도 잘 안 시킨다. 그러다 보니 나중으로 갈수록 부상 위험도 커지고 실력도 정체된다. 어린 시기에는 기술보다는 체력과 기본기를 다져 하체와 중심근육을 단단히 잡아놔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에서도 '오타니'가 나올 수 있다
선 감독이 지적한 아마야구의 문제점은 '내실'보다는 '외적성장'에만 매몰되어 온 한국 사회의 악습이 투영된 결과라고 볼 수도 있다. 아마추어 시절 각광받던 선수가 혹사로 인해 프로에서 활약하지 못하는 무수히 많은 케이스가 이에 따른 병폐 중 하나다.
선 감독은 한국야구가 진정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이런 모습부터 바뀌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그는 "류현진이 메이저리그로 간 이후 그를 뛰어넘는 신인들이 안 나오는 건 정말 문제다. 일본은 다르빗슈나 마에다, 오타니 같은 대형 투수가 꾸준히 나오지 않나. 유능한 어린 선수들이 체계적으로 성장하지 못하고 금세 시드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한국에서도 오타니 같은 투수가 나올 수 있을까. 선 감독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인프라 차이가 크지만 어릴 때부터 기초를 확실히 다지면, 대형 투수가 나오지 말란 법도 없다. 스텝 스로를 활용한 캐치볼이나 하체 및 중심근육을 강화하는 훈련을 어릴 때부터 단단히 해오면 나중에 몸이 커졌을 때 확실히 실력이 늘어난다"고 했다.
오타니는 어린 시절부터 미래의 성공을 목표로 체계적인 훈련 스케줄을 만들어 실행해 왔다. 선 감독은 "오타니가 성공한 가장 중요한 요인이 그런 기본적인 것에 세심하게 공을 들였기 때문이다. 우리 유망주 투수들이 어릴 때 잘하다가 성인이 되면 정체되거나 퇴보하는 경우가 많다. 어릴 때 기초를 잘 다지지 못한 탓이다. 아마추어 지도자들이 이런 면에 신경을 더 써주면 좋겠다"고 했다.
▶아시안게임과 올림픽, 한국에 영광 안긴다
올해 8월에는 자카르타-팔렘방아시안게임이 있고, 2020년에는 도쿄올림픽이 열린다. 모두 선 감독의 임기에 치러지는 국제대회들이다.
그는 "올해는 일단 현장에 많이 보러 다닐 생각이다. 프로 감독님들께 부탁해 스프링캠프부터 해서 시즌 중에도 경기장에 계속 찾아가겠다"고 말했다. 그렇게 모은 자료를 토대로 아시안게임 대표팀을 구성할 생각이다. 기준점은 명확하다. 선 감독은 "기본적으로 최고의 실력을 지닌 선수를 뽑는 건 당연하다. 여기에 팀 융화력도 중요한 기준이다. 단기간에 치르는 단체 경기에서 가장 중요한 건 팀워크다. 또 태극마크에 대한 자부심도 있어야 한다. 그래서 인성도 많이 볼 생각"이라고 밝혔다.
선 감독은 5월 초 1차 엔트리(약 45명)를 결정하고, 여기에서 아시안게임 최종 엔트리를 추릴 예정이다. 또 현지의 기후 환경 등을 고려해 트레이너 파트를 기존 2명에서 6명으로 강화하는 계획도 갖고 있다. 정운찬 KBO 신임총재의 지원이 필요하다.
선 감독은 "워낙에 야구에 대한 애정이 큰 분이시니까 여러 모로 잘 이끌어주시지 않을까 기대한다. 한국 야구가 위기라지만, 이는 또 다른 기회일 수 있다. 800만 시대를 넘어 1000만 시대를 열 수 있는 시기다. 총재님께서 프로야구 뿐만 아니라 아니라 대표팀과 음지에 있는 유소년 야구나 프로야구 저액 연봉자 등 잘 드러나지 않는 면에 관심을 가져주셨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