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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항공 우승]③가스파리니, 14% 확률로 만나 8%-0%의 기적을 뚫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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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5월16일, 사상 처음으로 V리그 남자부 외국인선수 드래프트가 열린 인천 하버파크호텔.

모두가 숨을 죽였다. 관계자들의 시선은 추첨기에서 떨어지는 구슬로 향했다. 전력의 50% 이상이라는 외국인선수, 이를 선택할 수 있는 구슬 하나에 각 팀의 운명이 좌우됐다. 녹색이었다. 대한항공 코칭스태프와 사무국 관계자가 환호를 질렀다. 140개의 구슬 중 20개를 넣은 대한항공의 확률은 불과 14%. 기적 같은 1순위 픽을 거머쥔 박기원 대한항공 감독은 주저함이 없었다. "가스파리니를 지명합니다."

운명 같은 만남이었다. 이미 수준급의 선수로 꽉 짜여진 대한항공의 마지막 퍼즐은 승부처에서 마무리할 수 있는 확실한 거포였다. 2012년 현대캐피탈에서 활약하며 V리그 경험이 있는데다 강력한 서브를 지닌 가스파리니는 모두가 원한 1순위였다. 박 감독은 내심 가스파리니를 원했지만, 기회가 올 것이라 생각치 않았다. 그러나 행운의 여신은 대한항공에 미소를 지었다. 가스파리니를 손에 넣은 대한항공은 고공행진을 이어갔다. 대한항공은 안정된 경기력을 바탕으로 2016~2017시즌 정규리그 1위를 거머쥐었다. 가스파리니는 공격 5위에 올랐고, 세트당 평균 0.626개로 서브 1위에 올랐다. 가스파리니는 고비마다 해결사 역할을 톡톡히 하며 대한항공의 마지막 퍼즐을 채웠다.

하지만 마지막까지 웃지는 못했다. 모두가 대한항공의 챔피언결정전 승리를 점쳤지만, 마지막 고비를 넘지 못했다. 3차전까지 2승1패로 앞서나갔지만, 4, 5차전에서 거짓말 같은 연패를 당하며 다잡았던 우승을 놓쳤다. 가스파리니는 제 몫을 했지만, 정규리그만큼의 파괴력을 보이지는 못했다. 그렇게 가스파리니와 대한항공의 첫 시즌은 절반의 성공으로 마무리됐다.

절치부심한 2017~2018시즌. 대한항공의 선택은 당연히 재계약이었다. 가스파리니는 대한항공의 우승을 위해 변화를 택했다. 포스트시즌에서의 부진을 만회하기 위해 체력훈련에 많은 공을 들였다. 몸을 가볍게 하기 위해 식단까지 바꿨다. 육류 섭취를 자제하고 생선과 채식 위주로 먹었다. 부족한 단백질은 파우더로 보충했다. 하지만 가스파리니는 시즌 중반 체력 저하 우려를 낳는 등 지난 시즌 보다는 떨어진 모습을 보였다. 대한항공은 가까스로 봄배구에 합류했다. 이번에도 대한항공의 우승은 쉽지 않아 보였다.

가스파리니의 노력은 포스트시즌 빛을 발했다. 모두가 지친 그때 가스파리니가 펄펄 날기 시작했다. 14%의 확률을 뚫고 대한항공 유니폼을 입은 가스파리니는 또 한번 희박한 확률을 뒤엎었다. 삼성화재와의 플레이오프 1차전에서 18득점으로 부진했던 가스파리니는 2차전부터 에이스 본색을 드러냈다. 2차전에서 25득점, 3차전에서 39득점을 올리며 8%의 기적을 썼다. 1차전 패배팀이 챔피언결정전에 오른 것은 대한항공이 두번째였다.

대망의 챔피언결정전, 이번에는 0%의 확률을 넘어야 했다. 단 한번도 우승하지 못했던 대한항공이었다. 이번에도 상대는 친정팀 현대캐피탈이었다. 박 감독은 가스파리니에 무한 신뢰를 보냈다. 가스파리니의 인성, 훈련태도 등을 2년간 지켜본 박 감독은 가스파리니에 절대 믿음을 보였다. 가스파리니는 우직한 대각 공격으로 현대캐피탈의 높이를 넘었다. 시즌 중반만 하더라도 한선수의 빠른 토스에 고전했지만, 챔피언결정전에서는 오픈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고비마다 득점을 올리며 주포 노릇을 톡톡히 했다. 기복이 있었던 서브는 챔피언결정전 들어 더욱 위력을 발휘했다. 가스파리니의 활약 속 대한항공은 마침내 첫 우승을 거머쥐었다.

14%에서 8%, 그리고 0%를 넘은 가스파리니와 대한항공의 운명 같은 동행은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됐다.

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