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dium App

Experience a richer experience on our mobile app!

[위크엔드스토리] KBSA 아마야구 보호 정책? 현장의 생각은 다르다

by

"누구세요?" 한 야구 관계자는 최근 열린 고교야구 경기의 경기감독관실을 찾았다가 그곳에 앉아있는 낯선 사람을 만났다. 누구냐고 물으니 "경기 감독을 하러 왔다"는 답이 돌아왔다. 아무리 봐도 낯선 얼굴이고, 사복 차림의 앳된 남성이 '경기 감독'을 하러 왔다는 설명이 모호해서 "혹시 어디에서 오셨냐"고 다시 물었다. 상대는 "XX병원 소속"이라고 답했다. 그때 최근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KBSA)가 아마야구에 트레이너를 지원한다는 기사를 읽은 것이 떠올랐다. "트레이너로 오셨어요?"라고 묻자 낯선 남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야구협회는 최근 대한선수트레이너협회와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 지난 7일부터 시작된 고교 주말리그에 트레이너 지원을 실시한다는 내용이다. 김응용 회장 부임 이후 야구협회는 선수 보호 차원에서의 트레이너 파견에 많은 관심을 보였고, 올 시즌부터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트레이너들은 야구협회의 직접 고용, 파견이 아니라 트레이너협회에서 자체적으로 파견을 한다. 경기가 열리는 가장 가까운 곳에서 근무하거나, 거주하고 있는 트레이너 자격증을 지닌 사람이 파견 대상이다.

하지만 현재까지는 제대로 된 가이드라인도 없고, 현장에서의 활용도 전혀 안되고 있다. 서울권에 재정 지원이나 전력이 '빵빵한' 팀들은 자체 트레이너코치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추가 지원이 필요없다. 트레이너를 고용하지 못하는 대부분의 학교들이 대상인데, 충분한 설명이 이뤄지지 않았다.

보통 경기전 선수들의 몸을 풀어주거나, 투구를 마친 투수의 어깨에 아이싱을 해주고, 마사지로 뭉친 곳을 풀어주는 것 등이 트레이너의 역할이다. 하지만 아마야구 감독이나 코치들은 트레이너가 무엇을, 어떻게 해주는지 전혀 알지 못하고 있었고, 트레이너 역시 자신들이 먼저 적극적으로 나서기 '뻘쭘한'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가이드라인이 제시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현장에 트레이너가 파견되기는 하는데, 정작 트레이너로써의 역할은 아무것도 못하고 있는 셈이다.

이에 대해 문의하자 KBSA 관계자는 "아직 시행 초기 단계라 부족한 부분이 있었던 것 같다. 갈 수록 나아질 부분이라 본다. 지금은 서로 어색하고, 활용하는 법을 몰라 그럴 수 있다. 일단 전반기에 시행을 해보고 부족한 부분을 후반기에 보완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현재는 트레이너협회가 알아서 파견하면, KBSA가 해당 트레이너에게 일당을 주는 형식으로 고용이 이뤄지고 있다. KBSA 관계자는 "올 시즌을 치뤄보고, 다음 시즌을 앞두고 문화체육관광부의 재정 지원을 신청해 다음부터는 더 현실성 있는 고용과 급여가 지급될 것"이라고 했다.

트레이너 파견은 최근 KBSA가 가장 신경쓰고 있는 학생선수들의 부상 방지를 위한 프로그램 중 하나다. 협회는 '2018년 12월부터 동계 기간(12~1월) 해외 전지 훈련, 국제 교류/친선 대회 및 국내외 연습경기 전면 금지' 지침을 의결했다. 뿐만 아니라 올해부터 변화가 많아졌다. 이미 주말리그 개막일을 3월에서 4월로 미뤘고, 고교야구 주말리그 1경기 최다 한계투구수를 130개에서 105개로 줄였다. 또 투구수별 의무 휴식일 세분화[1~30개(의무휴식일 없음), 31~45개(1일), 46~60개(2일), 61~75개(3일), 76개 이상(4일)], 자동 고의 4구 등 투수들의 혹사를 방지하기 위한 대책을 세웠다.

전국 대회, 국제 대회에서 오래전부터 아마야구 선수들의 혹사 논란이 뜨거웠고, 프로에 오자마자 수술대에 눕는 선수들이 워낙 많아 세워진 대책이다. 의도는 훌륭하다. 협회는 이번 변화를 위해 공청회, 지도자간담회 등 숱한 분야별 전문가들의 목소리를 들었다. 현장의 목소리도 포함됐다.

하지만 모든 일이 그렇듯 아직 초기 단계이다보니 시행착오도 분명히 있다. 투구수 제한 같은 경우는, 대학 수시 지원 기준부터 바뀌어야 한다. A급 선수들은 고교 졸업 후 곧바로 프로에 지명되지만, 대학에 가야하는 선수들도 분명히 있다. 문제는 기준이다. 대부분의 학교들이 투수들을 뽑을 때 '이닝, 평균자책점'을 기준으로 한다. 학교별로 그 기준은 다르다.

그런데 투구수 제한이 생기면, 웬만한 선수들은 해당 이닝을 채우기가 쉽지 않다. '에이스'들이야 프로에 가거나, 소위 명문 학교를 골라갈 수 있지만, 그 외의 선수들은 지원 자격조차 채울 수 없어진다.

또 현장에서는 투구수 제한이 학교별 불균형을 더욱 심화시킬거라 이야기하기도 한다. 요즘은 야구도 '강남'이 더 잘한다. 학생 야구선수들이 모두 서울 시내의 학교로 몰리고, 지방은 선수가 없어 엔트리를 겨우겨우 채운다. 휘문고, 서울고, 덕수고 같은 곳들은 학생들을 골라 뽑는 정도인데, 지방의 학교들은 '제발 남아달라'며 전학을 만류해야 하는 상황이다.

한 아마야구 관계자는 "투구수 제한의 의도는 좋은데, 전력 차이가 더 심해질 것이다. 서울이나 부산고, 경북고 같은 지역의 오래된 명문학교 몇몇을 제외한 대부분의 학교들은 '에이스'급 선수들을 빼면 전체 전력 차이가 크게 난다. 투구수와 휴식일 제한에 묶이면, 전력이 약한 선수들이 전국 대회에서 4강 이상의 성적을 내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해진다. 잘하는 학교들만 더더욱 잘나가고, 그렇지 못한 학교 야구부들은 주목받을 기회가 더욱 없어질 것"이라며 우려했다. 단순히 대회 성적뿐만 아니라, 선수들이 대학이나 프로에 스카웃 대상이 될 기회 자체가 줄어드는 셈이다.

동계 훈련 금지도 현장에서는 마냥 달갑지만은 않다. 훈련이 금지된다고 해서 선수들이 놀 수는 없다. 어린 선수들이 홀로 체계적인 체력 훈련 해오길 기대하기도 힘들다. 결국 단체 훈련이 필요한데, 그러기 위해서는 국내에 장소가 부족하다.

선수들에게도 혹한의 추위는 두려운 존재다. 결국 따뜻한 곳을 찾아가게 되는데, 제주도나 부산처럼 남쪽 지방으로 훈련 장소를 찾아 떠나는 것도 시설 확보가 쉽지가 않다. 그나마 과거 아마야구 선수들의 훈련 장소로 인기가 많았던 경남 남해의 훈련장이 폐업하면서 갈 곳은 더더욱 줄었다.

물론 해외 전지 훈련을 떠날 때 학생 1인당 학부모가 부담해야 하는 비용이 450만원 정도 드는 것은 사실이다. 어떤 선수들에게는 큰 부담일 것이다. 과거에는 모인 동창회 기금만으로 충분했지만, 최근에는 그런 외부 지원이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하지만 국내에서 단체 합숙 훈련을 한다고 해도 40일 기준 300만원 정도가 필요하다. 미국이나 일본에서는 더 따뜻한 기후 속에 국내보다 나은 훈련 시설을 사용하게 된다. 또 훈련 기간이 40~50일이고, 왕복 비행기 비용까지 고려하면 450만원이 지나치게 많은 금액이라 보기는 힘들다.

아마야구 선수들을 보호하고, 나아가 프로야구와 한국야구 전체를 건강하게 만들기 위한 KBSA의 노력은 분명 가치있는 일이다. 그러나 여전히 아마야구 그 자체가 아니라 프로야구가 기준점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아직 시작 단계라 보완의 기회는 얼마든지 있다. 현실과 이상의 충돌 부위를 다듬어나가야 한다.

나유리 기자 youll@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