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발 투수로 살아남으려면 대체 몇 가지의 구종을 던져야 할까.
일반적으로 선발 투수는 다양한 구종을 갖춰야 한다고 믿는다. 감독과 투수 코치들은 선발 투수가 최소 5이닝 이상을 버텨줘야 하기 때문에 다양한 타자와 상황에 맞추려면 적어도 3가지 이상의 구종을 던질 줄 알아야 원활하게 상황에 대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기본적인 포심(혹은 투심) 패스트볼을 기반으로 횡변화 계열(슬라이더나 커터) 1~2종류, 종변화 계열(커브, 포크, 체인지업 등) 1~2종류 정도는 던져야 선발로 살아남을 수 있다고 흔히 얘기한다. 야구계의 일반론이다.
그러나 이게 늘 정답은 아니다. 선동열 야구대표팀 전임감독은 과거 삼성 라이온즈 감독 재임시절부터 꾸준히 이런 말을 해왔다. "투수는 일단 직구(패스트볼)를 제대로 던질 줄 알아야 한다. 구속이 빠르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정확하게 코너워크만 잘 해도 선발 10승은 한다." 좋은 투수에 대한 두 가지 진리가 이 발언 안에 담겨 있다. ①직구(패스트볼)은 투수의 가장 강력한 무기다. ②구속보다 중요한 건 제구력(코너워크)이다.
결국 다양한 구종은 옵션일 뿐이다. 구종이 많지 않더라도 제구만 잘 된다면 충분히 성공적인 선발 경기를 치를 수 있다. 최근 6경기 연속 선발투수 퀄리티스타트 기록을 이어가고 있는 넥센 히어로즈의 신재영과 한현희가 바로 좋은 본보기다.
두 선수는 최근 좋은 모습을 이어가고 있다. 신재영은 최근 선발 2연승 중이다. 지난 14일 고척 두산전때는 5이닝 6실점 했지만, 타선의 도움을 받아 약간 쑥스런 승리를 따냈지만 20일 대전 한화전 때는 6이닝 1실점으로 퀄리티스타트를 하며 선발승을 거뒀다. 한현희는 반대로 최근 선발승은 없다. 지난 4일 KT전 이후 승수를 추가하지 못하고있다. 그러나 15일 고척 두산전(6이닝 2실점)에 이어 21일 대전 한화전(6⅔이닝 3실점)까지 연속으로 퀄리티스타트를 달성했다. 이런 활약에 힘입어 넥센은 올해 리그 처음으로 6경기 연속 퀄리티 스타트를 달성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 두 명의 투수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하나는 그리 많지 않은 우완 사이드암 선발이라는 점. 그리고 정말 중요한 다른 하나의 공통점은 바로 직구-슬라이더의 투 피치로 성공하고 있다는 점이다. 선발투수의 기본 요건이라 할 수 있는 '다양한 구종'은 없다. 하지만 움직임이 좋은 직구와 제구가 잘 되는 변화구 하나 만으로도 타자들을 제압하는 '단순함의 미학'을 보여준다.
신재영의 20일 대전 한화전 투구 분석표와 한현희의 21일 대전 한화전 투구분석표는 무척이나 흡사하다. 신재영은 86개의 공을 던졌는데, 직구가 48개, 슬라이더가 35개였다. 여기에 체인지업 3개가 있다. 한현희는 총 111구 중 직구 57개, 슬라이더 49개 그리고 체인지업 5개가 있다. 두 선수 모두 체인지업은 타자들을 한참 상대하다가 한 두개 보여주는 용도로 살짝 곁들였을 뿐 직구-슬라이더의 투 피치 패턴을 보여줬다.
이 단순함이 성공한 건 정확한 제구력과 과감한 승부 덕분이다. 신재영은 20일 경기에서 사구만 하나 허용했을 뿐 볼넷을 내주지 않았다. 한현희도 1회 5연속 안타를 맞으며 3실점 했으나 2회부터 7회 2사까지는 1안타 2볼넷 무실점으로 상대 타선을 꽁꽁 틀어막았다. 얻어맞더라도 스트라이크존을 찌르는 공격적인 투구야말로 이들이 단조로운 구종을 지녔음에도 선발로 경쟁력을 갖추게 된 비결이다.
대전=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