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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김원섭의 못전한 작별 인사 "KIA팬 과분한 사랑 감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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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여름이었다.

고척돔에서 우연히 김원섭(40)을 만났다. 소속팀 KIA 타이거즈의 경기도 없는 날이었는데, 야구장 안에 들어온 사복 차림의 그는 큼지막한 가방을 메고 있었다. 깜짝 놀라 "여긴 어쩐 일이시냐"고 물으니 쑥스러운 웃음과 "저 은퇴했어요"라는 답이 돌아왔다.

김원섭을 결코 오래 봤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는 퍽 인상깊은 장면을 남겼던 선수였다. 야구 인생의 목표를 물으면 늘 "1000경기 출전과 40살까지 현역으로 뛰는 것"이라고 했다. 만성 간염을 앓고 있어 남들보다 체력이 쉽게 떨어지기 때문에 어찌보면 그 어떤 선수의 대기록보다 달성하기 어려워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2015년 7월 28일. 자신의 1000번째 경기에서 그는 9회말 끝내기 3점 홈런을 터뜨리며 자축했다. 2009년 여름 군산에서와 똑같이, 정우람(당시 SK)을 상대로 또 한번의 끝내기 홈런을 자신에게, 가족들에게, 동료들에게, 그리고 팬들에게 선물했다.

그날의 환호성을 정점으로 김원섭의 선수 인생이 저물었다. KIA 구단이 김원섭의 은퇴를 공식 발표한 적은 없다. 지난해 팀의 순위 싸움이 끝나면, 1경기 정도 1군에 등록돼 마지막 경기를 치르고자 했지만 팀 사정상 그렇게 하지도 못했다. 그래서 아직까지 팬들에게 제대로 된 작별 인사를 못건넸다. KIA에서만 14년을 뛰었기에 아쉬움이 없었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작년 여름 구단으로부터 원정기록원을 해볼 것을 제안받았던 그는 올해에는 2군 전력분석원으로 후배들을 돕고있다. 지도자의 길을 걷고싶었던 바람대로 새로운 인생을 구상 중이다.

-언제 은퇴가 결정됐나.

▶작년 7월 중순쯤 구단으로부터 원정 기록원을 제안 받았다. 주위에 물어보니 야구장 안에서 보는 것보다 다른 걸 배울 수도 있고, 나중에 도움이 굉장히 많이 된다고 하더라. 어차피 나는 40살까지만 하고 그만둔다고 얘기를 해왔으니까, 시즌 끝나면 그만하는 게 맞는 거 아닌가. 그래서 바로 결정했다. 곧바로 일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쉽지 않았다. 컴퓨터를 쓰는 것도, 기록을 입력하는 것도 익숙지 않았다.

-쉬지 않고 운동을 하다가, 운동을 안하는 일상에 익숙해졌는지.

▶사실 선수때는 운동을 그만 두면 하루가 너무 허무하고, 아쉬울 줄 알았다. 그런데 전혀 아니다.(웃음) 지금은 후배들이 힘든 훈련 하는 것을 보면 '내가 저걸 어떻게 했지?' 싶다. 배팅볼을 몇 시간씩 치고는 했었는데 지금은 못할 것 같다. 그만큼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다 소진하고 유니폼을 벗은 것 같아 홀가분하기도 하다.

-마지막 시즌에 1군에서 한 경기도 못뛰었다. 아쉽기도 할 것 같은데.

▶솔직히 말해서 2017시즌을 앞두고 내가 먼저 그만뒀어야 하는 게 맞는 것 같다. 그때 구단이 여러 선수들을 영입했고, 내가 그만두는 게 맞는데 1년을 더 하게 됐다. 그건 김기태 감독님 덕분이다. 감독님이 내가 40살까지는 뛰고싶다는 이야기를 들으시고, "네 꿈을 지켜주겠다"는 말씀을 하셨다. 그리고 그 약속을 지켜주셨다. 그게 아니었다면 나는 더 빨리 유니폼을 벗었을 것이다. 내가 1군에서 뛰기 어려울 거라는 것은 현실적으로 알고 있었다. 2군에 있었던 게 전혀 불만은 없었는데, 그래도 내가 대타라도, 마지막 한 타석이라도 가족들이 보는 앞에서 정말 뛰고 싶었는데 그걸 못하게 된 것은 조금 아쉽다.

-김기태 감독이 선수로서 함께 한 마지막 감독이 됐는데, 늘 고마운 마음을 표현했다.

▶영광이었다. 도움받은 것이 너무 많았다. 힘이 됐다. 감독님 덕분에 내가 마지막 3년을 더 뛸 수 있었고, 1000경기 달성 못할 수도 있었는데 감독님이 이뤄준 거나 마찬가지라 생각한다.

-원래 작년 순위가 결정되면, 마지막 경기를 치를 수도 있었다.

▶원정기록원 제안을 받았을때, 내가 서슴없이 하겠다고 이야기하면서 마지막 한 경기를 조건으로 내걸었다. 한번이라도 경기를 뛸 수 있게 해주신다면 하겠다고 말씀드렸고, 구단에서 조율이 됐다. 하지만 팀 상황이 안좋아지고, 막판에 순위 싸움을 하게 된다면 그것마저도 포기하겠다고 말했다. 그런데 정말 팀이 마지막에 마지막까지 순위 싸움을 하고, 상황이 안좋아지면서 그런 이야기를 꺼낼 수 있는 분위기가 전혀 아니었다. 그거 하나만은 조금 아쉽다. 그래도 개인적인 일 하나 때문에 팀 전체가 손해볼 수는 없지 않나. 그렇게 생각했다.

-지난해 KIA의 우승을 한발짝 물러나 지켜보니 어떻던가.

▶내가 뛰어서 우승할 때가 확실히 좋다.(웃음) 사실 시즌 전에는 우리가 우승을 할 수 있는 전력까지는 아니라고 봤는데, 1위를 계속 이어가면서 선수들이 자신감이 붙고 시너지 효과가 난 것 같다. 후배들이 우승하는 모습을 보니 기뻤지만, 솔직히 '나도 저기서 같이 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을 많이 했다. 원정 기록 할 때는 어쩔 수 없이 야구를 매일 봤지만, 한국시리즈는 찾아서 보지는 않았다. 모르겠다. 뭔지 모르는 감정이 들었다. 나는 이제 야구를 그만두고 다른 걸 해야하는데…. 복잡한 감정이 있었던 것 같다.(웃음)

-그래도 목표는 모두 이뤘다. 1000번째 경기때 스타팅 멤버에서 빠졌었는데, 그건 서운하지 않았나.

▶감독이라는 자리에 있으면 사사로운 것을 따져서는 안된다. 전혀 서운하지 않았다. 감독님 덕분에 3년이나 더 야구를 했는데 뭐가 서운하겠나. 고마우신 분인데. 나는 5년간 2군에서 생활하다 겨우 1군에서 기회를 받았다. 다른 사람들보다 늦은 편이었다. 그래서 일부러 말이 씨가 되라고 마흔살까지 야구하겠다는 말을 하고 다녔다. 절대 안될 줄 알았다. 그냥 억울해서, 실력이 모자라 2군에 있었던 시간이 너무 억울해서 그렇게 말했었다. 김기태 감독님 덕분에 2개를 다 이뤘다.

-야구 지도자의 길을 걷게 됐는데.

▶나는 지금 함평에서 연수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남들은 미국, 일본에서 연수를 받지만 나는 함평에서 애들과 부딪히면서 이야기도 하고, 코치님들과 어떻게 소통하는지 보고 배우고 있다. 덕아웃이 아닌 곳에서 경기를 보는 것은 아직 낯설지만, 선수들의 폼이나 밸런스를 보고 곧바로 이야기도 해주고 여러가지 보람도 느낀다.

-제 2의 야구 인생을 시작하는 기분이 어떤가.

▶예전에는 오직 중심이 나였는데, 이제 나는 없다. 투수, 야수들의 폼이 어떤지, 밸런스가 어떤지 찾아보고 상대팀에 괜찮은 선수가 있는지 파악하느라 정신이 없다. 저 선수가 2~3년 후면 어떻게 변할까, 어떻게 가르치면 될까. 이런 걸 공부한다. 예전엔 몸으로, 지금은 머리로 하고 있다. 그래도 다행인건 내가 우투좌타였는데, 지금 우리 2군 타자들이 대부분 우투좌타다. 라인업이 1~9번까지 다 좌타자다. 내가 우투좌타로서 느꼈던 점들을 말해주기 편하다. 예를들어 우리가 원래는 오른손잡이다보니까 자꾸 오른쪽 눈을 써서 보려고 한다. 타석에서 오른쪽눈으로 공을 보려고 하면, 어깨가 말려들어가는 단점이 있다. 그러면 스윙이 더 돌아나와야 한다. 이런 부분들을 이야기 해준다. 나는 그래서 연습할때 오른쪽눈을 감고, 왼쪽눈으로만 보려고 했었다. 선수들에게도 어깨를 닫지 말고, 얼굴을 정면으로 보고 치라고 조언을 해주면 되니까 나도 편하다.

-자신의 신인 시절을 돌아보기도 할 것 같다.

▶내가 간염이 있었으니 연습양으로만 치면 다른 사람들보다 많이 했다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항상 온 정신을 야구에 쏟았다. 동료들이 술먹으러 나간다고 하면, 나가서 혼자 스윙 한번 더 하고 돌아와서 '나는 더 발전할 수 있어'라고 되뇌었던 것 같다. 2군 시절에는 대학 야구장 옆 길에 앉아 햄버거에 우유 먹으면서 그만두고 싶었던 적도 많다. 사람들이 '야구선수는 부자일텐데 왜 이런 집에 살아요?'라는 말을 하면, 성공하고 싶다는 생각이 너무 간절하게 들었다. 창피하고, 자존심이 상했다. 그래서 더 간절하게 야구를 생각했다.

-지금 2군 선수들을 보면 어떤가.

▶환경이 예전에 비해서는 엄청나게 좋아졌다. 내가 그 시절에 이런 환경이었다면 미친듯이 야구를 했던 것 같다. 그때는 겨울이면 타격폼 잃어버릴까봐 혼자 만원, 2만원 들고 동네 오락실 가서 실내야구장에서 공을 쳤다. 지금은 웨이트장, 배팅볼 기계 등 다양한 시설이 있으니까. 근데 선수들이 생각보다 많이 활용하지 않는 게 아쉽다. 야구를 그만두고 나가면 정말 할 게 없다는 걸 알아야 한다. 나는 할만큼 하고 나가는데도, 내가 코치가 안되면 무슨 일을 하고 살아야할지 막막했다.

-광주에 오래 살았다.

▶두산에 있다 KIA에 와서 성공을 했고, 살다보니까 서울보다 좋은 점이 너무 많다. 나는 원래 대대로 서울 토박이지만, 광주에서 사는 게 정말 좋다. 이번에 KIA에서 계약을 안한다고 했어도 광주를 떠날 생각은 없었다. 아이들이 이곳에서 태어나고 자랐고, 가족들 모두 앞으로도 광주에 살 생각이다.

-앞으로의 야구 인생을 어떻게 그려갈 예정인가.

▶2군에 있는 동안은 함평에서 연수받는다고 생각하겠다. 박흥식 2군 감독님이 "선수들을 아들이라 생각하고 대하라"고 하셨다. 맞는 말이다. 한명, 한명을 아들이라 생각하면 말 한마디가 얼마나 귀하고, 더 알려주고 싶겠는가. 초등학생인 내 아들도 이제 야구를 시작하려고 한다. 진짜 내 아들이나 마찬가지다. 선수들이 아직은 나를 선배라고 생각해서 그런지 어려워할 때도 있는데, 코치님들과 감독님이 어떻게 선수들을 가르치는지, 어떻게 이야기를 주고받는지 열심히 배우려고 한다.

-은퇴식을 하게 될지 아직 모르지만, 팬들에게 인사를 전한다면.

▶사실 나는 광주 지역 출신 선수도 아니고, 야구를 잘했던 선수도 아니다. 내가 가진 것보다 늘 과분하게 좋아해주셨다. KIA팬들 응원 덕분에 행복한 선수 생활을 했다. 정말 감사하다.

나유리 기자 youll@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