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만의 소리는 이내 분노의 함성으로 돌변했다. 전에는 기쁨을 주던 야구가 지금은 짜증을 주고 있었다. 뜻이 맞는 사람들끼리 삼삼오오 모여 온라인 상에서 토론을 벌였다. '어떻게 하면 내가 사랑하는 우리의 팀을 제자리로 돌려놓을 수 있을까' 토론이 계속되니 아예 카페도 만들었다.
'우리의 팀'을 이 지경으로 몰고 온 보기 싫은 감독을 바꾸는 것 뿐이라는 결론이 나왔다. '그래, 맞아. 저 무능력한 감독만 아니었다면 우리 팀이 이 지경까지는 안됐을거야.' 누군가는 '이대로 있으면 안된다'는 의견을 냈다. '맞아! 맞아! 팀을 진짜 사랑 하는 팬이라면 가만히 있으면 안돼.' '모입시다! 플래카드도 만들고, 피켓도 만들어서 우리의 힘을 보여줍시다. 야구장으로, 회사 앞으로!'
씁쓸하고 서글픈 데자부다. 비난의 대상만 바뀌었을 뿐 이미 2011년과 2014년에도 목격했던 광경이다. KIA 타이거즈의 그 많은 팬들이 다 같은 뜻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이 중에서도 좀 더 열정적이고 적극적으로 나서는 사람들이 있다. '팀에 대한 애정'과 '팬심'을 앞세워 지금 구단과 김기태 감독에게 압력을 행사하고 있다. 그룹 본사에까지 몰려가 시위를 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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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KIA 타이거즈에 한국시리즈 우승을 안긴 조범현 감독은 2010년 주전들의 대거 부상 사태로 팀 성적이 급격히 떨어지자 팬들의 원색적인 비난을 받았다. 16연패 때는 구단 버스를 가로막으며 시위를 했다. 글로 옮기기도 민망한 원색적이고 흉악한, 협박과 저주의 말들이 퍼져나왔다. 무던한 조 감독은 "다 내 탓이지 뭐"하며 쓴웃음으로 버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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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과 2014년, 그리고 2018년 가을의 씁쓸한 풍경이다. 김 감독의 퇴진을 요구하는 팬들은 그것만이 팀을 살리는 길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김 감독은 한국시리즈 우승을 포함해 재임 기간에 팀을 3번이나 포스트시즌으로 이끌었다. 작년 우승 후 올해 5위가 충격일수는 있겠지만, 그런 일도 벌어질 수 있는 게 야구다. 정규리그 5위의 성적을 비난한다면 그 자리에 오르기 위해 시즌 내내 사투를 벌인 선수들 또한 비난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임창용의 퇴출도 그렇다. 감정보다는 이성적으로 냉정히 판단해야 한다. '팀보다 위대한 선수는 없다'는 말의 의미를 새겨봐야 한다.
새 감독이 필연적으로 겪는 혼선과 시행착오를 극복하고 어느 정도 성적을 낼 때가 되면 또 '일부 팬'들은 '팀을 살려야 한다'며 퇴진을 요구할지도 모른다. 이런 것이야말로 오래된 폐단이자 악습이다. 따지고 보면 2007년 서정환 전 감독 시절부터 시작된 행동이다. 당시에도 구단 버스를 막아선 채 감독에게 사과와 퇴진을 요구한 적이 있다. 과연 행동들을 '팬심'으로 부를 수 있을 지 의문이다. 진정 팀을 흔드는 건 과연 누구의 손일까. 차분하게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