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타계한 중국 무협소설의 대가 김 용 선생의 작품들에는 기연을 통해 엄청난 내공과 무공비급을 얻은 주인공들이 그것을 스스로의 진짜 힘으로 체득하기 위한 과정들이 상세히 묘사되곤 한다. 무릇 '고수'는 하루 아침의 행운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행운에 필적하는 엄청난 경험을 한 뒤에는 반드시 거기서 얻은 깨달음을 진짜 실력으로 몸에 새겨놔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올해 포스트시즌을 통해 큰 돌풍을 일으킨 넥센 히어로즈 선수단에게 이번 겨울은 매우 중요한 시기다. 곧 시작될 마무리 캠프와 그 이후의 개인 훈련, 그리고 내년 2월의 스프링캠프에서 이번 포스트시즌에 쌓은 귀중한 경험들을 '진짜 실력'으로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20대 젊은 선수들에게 중요한 시기다. 자칫 이 기간을 헛되이 보낸다면 포스트시즌을 통해 얻은 커다란 경험을 그냥 '추억'으로 날려버릴 수도 있다.
넥센은 정규시즌을 4위로 마감했지만, 와일드카드 결정전과 준플레이오프를 거침없이 통과한 뒤 정규리그 SK 와이번스와의 플레이오프에서도 눈부신 선전을 이어갔다. 이미 앞서 10여일간 포스트시즌을 치르느라 체력이 소진돼 1, 2차전을 허무하게 내줬지만, 3차전과 4차전을 연이어 따내며 '리버스 스윕'의 기대감을 높였다.
비록 최종 패배로 귀결됐지만, 지난 2일 펼쳐진 플레이오프 5차전은 포스트시즌 역사에 기록될 명승부였다. 4-9로 뒤진 채 맞이한 9회초에서 끈질긴 투혼과 박병호의 드라마같은 동점 2점 홈런으로 대거 5점을 뽑아내는 저력을 보여줘 많은 야구팬들의 감동을 자아냈다. 선수들은 경기가 끝난 뒤 뜨거운 눈물을 쏟아냈지만, 동시에 승자에 필적하는 박수를 받았다. 10월 16일부터 11월 2일까지, 총 18일간 10경기에서 넥센은 '젊음의 패기'가 무엇인가를 확실히 보여줬다.
그러나 야구는 거기서 끝난 게 아니다. 넥센은 플레이오프에서 탈락한 그 시점부터 다시 2019시즌을 준비하는 입장이 됐다. 장정석 감독은 패배 후 "이 10경기가 내년, 내후년 선수들의 야구 인생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너무 값진 시간 보낸 게 아닌가 생각한다"면서 "(감독으로서도) 너무 소중한 시간이었다. 그리고 부족한 부분들을 알 수 있었다. 순간순간 어떤 부분을 준비해야 하나 (머리 속에) 들어온 것이 많았다. 앞으로 잘 채워나가겠다"는 말을 했다.
장 감독 또한 이번 포스트시즌의 경험을 바탕으로 또 다른 진화를 이뤄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뜻이다. 선수들도 마찬가지다. 무엇보다 첫 포스트시즌에서 기대 이상의 활약을 한 김혜성과 송성문 주효상 김규민 임병욱 안우진 이승호 등 20대 초중반의 어린 선수들은 마음을 더욱 독하게 먹을 필요가 있다. 휴식을 통해 그간 쌓인 피로와 잔부상들을 털어낸 뒤에는 곧바로 포스트시즌에서 얻은 경험치를 온전히 자기 실력으로 변환하는 '땀의 시간'을 보내야 한다. 시작은 마무리캠프부터다. 넥센 관계자는 "아직 세부 일정은 확정되지 않았지만, 11월 중순까지 휴가를 보낸 뒤에 18일쯤부터 화성과 고척 등 국내에서 마무리 캠프를 치를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 기간을 통해 넥센의 젊은 영웅들이 또 어떤 진보를 이뤄낼 지 기대된다.
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